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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29. 2018

[인도] 라마유르-라다크에 갔다.1

경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낯선 장소에 찾아가는 사람들은 2가지 유형이 있다.

1. 정보를 얻고 가는 준비된 사람.

2.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가는 사람.

나는 1에서 2로 전향한 사람이다.          


모르는 장소에 첫 발을 내딪는 다는 것은 두렵고 걱정된다. 아무리 낮은 가능성의 불안감도 반드시 발생할 일로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고 가려고 노력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정보를 읽고,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실제로 내가 그 장소에서 맞딱드렸을 때 받는 느낌은 미리 글과 말을 통해 전달 받은 것들과 비교 할 때 전혀 다른 느낌일 때가 대부분이다. 라마유르를 방문한 이후 나는 더 이상 가이드북을 보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여행지에 대한 평가를 묻지 않았다.

 

경험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          


나에게는 ‘라마유르(Lamayouro)- 문랜드(Moon Land)의 마을’이 그렇다.

처음에는 라마유르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16년 당시 내가 레를 얼마나 좋아했냐면, 인도여행을 레에서 시작해서 레에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레가 좋았다. 하루라도 더 레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레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버스표를 사 놓고 3번이나 가지 않아서, 나중에는 레를 떠난다는 말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은 일상이 된 표찢(‘표는 찢는 맛’이라고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기차, 버스, 심지어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서 돌연 마음이 변해 그대로 표를 찢어버리는 행위)이 이때부터 시작 된 것 인가 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라마유르를 가게 되었느냐.

라마유르에 가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했다.

라마유르에 대한 미묘한 칭찬을 너무나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라마유르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이랬다.

1.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가지만, 일부로 시간 내서 갈 정도는 아니다.

2.두 번 가고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은 가볼만 하다.

3.문랜드는 문랜드가 아닌것 같지만 문랜드라고 하면 문랜드 같다.     

당최 이 애매모호한 평가는 뭐란  말인가?

라다크의 다른 지역들 예를 들면 판공초, 누르라 벨리, 초모리리 등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가!!! or 가지마!!!’ 이렇게 확실한 평가를 해주는데, 라마유르는 평가가 맘에 들지 않는다. 왠지 짜증이 났다. 그래서 결심했다. 라마유르에 가야지.

라마유르 행 버스를 알아보러 6번째로 버스 터미널로 내려갔다. 이제 레 바자르에서 버스터미널로 가는 지름길도 알고 있다.     




오후 2시쯤 라마유르로 가는 버스가 출발했다. 앉을 자리 하나 없이 만석인 버스에 간신히 서 있으니 곧 자리가 생겼다. '퍽' 찰진소리가 들렸다. 내 옆에서 나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다짜고짜 앞자리에 앉아있던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의 뒤통수에 손바닥을 날린 것이다. 그리고 나를 손으로 가리켰다. 소년은 나를 한번 바라보더니 헤벌쭉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한사코 거절하는 나를 억지로 자신의 자리에 앉게 했다. 할아버지를 한번 쳐다보니 할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는다. 주위를 한번 둘러봐도 다들 ‘안녕하니?’라는 얼굴로 미소 지을 뿐이다. 나만 이 상황이 평범하지 않고 이상하고 민망한가 보다.


내 기분이 평범하지 않아도 버스는 평범하게 좋은 길을 평범하게 달렸다.     

하지만 태양은 평범하지 않았고, 라다키(라다크 사람)의 태양에 대한 내성은 비정상적이었다.     

레에서 떠나고 30분쯤 달렸을까? 잘빠진 길 한복판에 버스가 멈췄다. 그리고 한 무더기의 십대 소년소녀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갑자기 위아래 양옆으로 흔들리는 버스. ‘쿵쿵쿵’ ‘쾅쾅쾅’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머리를 창밖으로 빼 꼼 내밀어 하늘을 바라보니 방금 전 버스에서 내린 소년소녀들이 버스 지붕에 앉아 있었다.     

‘위에서 뭐하는 거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도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 아저씨는 자연의 부름을 받았는지 버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버스를 등지고 서있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나도 버스 뒤편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위로 올라갔다. 십대 친구들은 이제 그곳에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소년소녀들은 그냥 웃기만 한다.     

기사 아저씨가 버스로 돌아왔다. 나도 이제 차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 밖으로 나온다.

‘아...버스가 고장 났구나.’

인도에서 로컬버스가 고장 나는 일은 인도에서 물갈이를 하는 만큼이나 흔하다. 이럴 때는 버스를 고치러 엔지니어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음 버스를 기다리거나, 히치하이킹을 하거나, 아니면 새 버스를 보내줄 때까지 그냥 기다리면 된다. 버스 지붕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신선했기에 버스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잠시 미뤄두고 버스 지붕에 조금 더 누워 있기로 했다.      


오후 2시 구름 한 점 없는 라다크의 하늘아래 누워 있는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달걀 하나가 자신의 운명이 어찌될 지도 모른 채 서서히 익어가는 바로 그 feeling. 현대인들은 다른 생물의 감정에 무감각하다. 이참에 한 번 달걀의 기분이 되어보는 것 도 좋을 것 이다.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내 몸을 식혀줄 것임이 분명하지만, 오후 3시의 태양은 내 몸 안의 단 1밀리리터의 수분도 용납 할 수 없다는 기세로 수분을 가져가고 뜨겁게 달구어진 철판 때문에 몸 안 에서부터 천천히 익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 옆에 앉아있는 어린 라다키들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 없다.)     

개구리를  차가운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올려가면서 끓이면 개구리는 온도 상승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삶아 죽는다는데, 흥미롭게도 라다크 에서는 사람도 가능할 것 같다. 20분 정도 누워있으니 몸 속에서부터 열기가 몸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버스에서 내려가려는데, 어린 라다키 친구들은 빨갛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을 보더니 웃기 시작한다. 음... 한 대 때려 줄 수 도 없고... 그냥 영혼 없이 웃으면서 버스 옥상에서 내려왔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버스 옆으로 기울어진 그늘에 쭈구려 앉아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버스가 멈춘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라탔다. 나도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서 버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버스는 언제 이상이 있었냐는 듯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승객 중 누군가가 버스를 고친 걸까? 아니면 저절로 고쳐진건가? 애초에 고장이 나긴 했던 걸까? 운전기사님이 그냥 운전을 하기 싫었던 걸까? 왜 버스가 길 한복판에 한 시간이나 멈춰 있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 시간 만에 버스가 다시 움직인다는 사실에 마냥 좋았다.


 



라마유르에는 7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라마유르의 첫인상? 시끄러운 큰길가에 있는 작은 마을. 도로 공사로 반 토막이 나버린 마을.     

주위를 둘러봐도  문랜드-달을 연상시키는 지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의 유일한 외국인인 나에게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어리둥절하고 한 것도 잠시, 낯선 손에 이끌려 간곳은  홈스테이였다.

홈스테이는 큰 길 바로 옆에 있었다. 고요하고 적막할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밤새도록 라다크 제2의 도시인 카르길과 제1의 도시인 레를 연결하는 도로를 달리는 덤프트럭의 헤드라이트와 경적소리, 그리고 집까지 흔들리는 오감만족 스릴 넘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집이다. 그럼에도 호스트 아줌마의 이해하기 힘든 개그 센스와, 라다크에서 가장 맛있는 라다크 가정식에 반해, 첫 방문 3일 그리고 두 번째 방문 2일 역시 이집에 있었다.

(그렇다. 왠지 짜증이 나서 방문한 라마유르에 나는 한번 같은 두 번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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