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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Mar 31. 2018

[인도] 라마유르-라다크에 갔다. 2

이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의식 흐르는 대로, 사진 찍히는 대로
흘러흘러 인도로


라마유르에 오게 된 동기가 든 간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레로 돌아갈 순 없지. 라마유르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침은 계란 오믈렛과 토스트 8조각이었다. 이걸 어떻게 다먹지...아주머니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어제 저녁을 많이 먹기는 했는데, 접시위에 탑처람 쌓인 토스트를 보니 한숨이 나온다.


토스트를 한장 집어 짜이에 찍으면홈스테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 근방에 방문할 만한 장소가 어디 있어요?”

“문랜드를 가야지. 그리고 곰파도 가고”

“곰파는 마을 꼭대기에 있는 하얀 건물 맞죠? 문랜드는 어디 있어요?”

“문랜드는 어제 오는 길에 버스에서 봤지? 어제 온 길 따라서 내려가면 돼

“??”

어제 버스에서 ‘달’을 연상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아니요. 못 봤어요.”

“그럼 가봐. 맘에 들 거야. 그리고 곰파로 가려면 차도를 따라 가지 말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는게 좋을 거야.”  



 먹을것 같았는데 아주머니와 이야기를하며 한 조각 한 조각 짜이에 찍어 먹다보니 8조각의 토스트를 다 먹어버렸다. 추가로 2조각을 더 먹었다. 식빵 반통을 다먹게 만들다니...역시 짜이는 위대하다.



정오의 라다크의 태양에 이길 수 있는 외국인은 없기에 아침을 먹자마자 아직 땅이 끓어오르기 전에 서둘러 모자를 쓰고 홈스테이를 나섰다.


아주머니의 말대로 라마유르 하면 문랜드가 유명하다. 라마유르에 대해 말하는 온갖 칼럼에는 문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는 문랜드 보다는 라마유르 곰파가 더 유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랜드가 가장 유명하니까 우선 문랜드를 가기로 결정했다.


마을에서 20분쯤 걸어 내려가니 ‘달이라고 우기면 달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형’이 나왔다.


그런데 ‘달’ 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아니다 싶다. 라다크가 그렇듯 흔한 지구의 풍경과는 결이 다른 풍경이다. 종유석과 석순을 보러 동굴에 들어갔는데, 크기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석순들 사이로 종유석의 숲이 바닥에서 솟아난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침이 고이는 것 같기도 하다. 달을 치즈라고 믿었던 사람들 이라면 이곳을, 달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불현 듯 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클레이 애니매이션인 ‘월레스와 그로밋’의 ‘화려한 외출’이라는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크래커에 올려 먹을 치즈를 구하기 위해 달에 간 월레스와 그로밋이 달 표면 원뿔처럼 튀어나온 부분을 치즈나이프로 쓰윽 잘라서 비스켓에 올려 먹는장면이 나오는데, 딱 그 느낌이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이프로 달을 자르는 그 느낌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는데...      

내 팔이 한 20m정도로 자라나던지 아니면 다리가 30m정도로 길어진다면 나와 문랜드 사이를 막고 있는 협곡을 지나 항상 지니고 있는 나이프로 한 덩어리  잘라보고 싶었다. 문랜드는 직접 만질 수 없었기에, 도로 옆 문랜드와 비슷해 보이는 땅을 만져보았다. 진흙이라고 하기에는 건조하고, 흙이라고 하기에는 촉촉했다. 단단한 치즈케이크 같은 느낌? 레에 돌아가면 케이크를 사먹어야겠다.
          

문랜드는 아니지만 거대한 ‘치즈랜드’를 구경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즐겁고 재미있는 나들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말하지만, 달은 아니다. 치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문랜드 아니 치즈랜드가 맘에 들었는지 3시간이나 그 자리에서 치즈와 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한 것 같다. 내려가는 길은 가뿐 했지만 올라오는 길은 멀게 느껴진다.
        



그럼 이제 라마유르의 하이라이트에 라마유르 곰파다. 곰파는 라마유르 마을에서 15분정도 위로 올라가면 되는데, 마을을 그대로 가로질러 올라가면 된다.


라마유르 곰파는 라다크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중요한 티베트 불교 사원 중 하나로 건립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아주 오래전 라마유르 일대는 호수 아래 땅 이었다. 성스러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한 스님이 라마유르에 도착했고, 이 장소의 성스러움을 느낀 스님은 동굴에 들어가서 명상을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몇년이 지났을까? 어느날 대지는 하늘로 솟구치고, 바닥이 갈라지며 비밀에 가려 있던 성스러운 땅이 강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갈라진 땅 아래에 뭍혀있던 죽은 사자가 발견됐다고 한다. 스님은 사자유해가 있던 곳에 곰파를 만들었다.


전설처럼 성스러운 땅 이기 때문일까? 곰파에는 150여명의 스님이 거주하면서 수행을 하고 있다. 곰파 뒤로 이어진 ‘명상 구역’에는 스님들이 일주일, 한 달씩 밖에 나오지 않고 명상만을 하며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말로 땅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기 때문인지, 전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곰파는 이 협곡 꼭대기에 하늘에 매달린 듯 위태롭게 걸려 있다. 곰파에 걸터앉아 라마유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꼭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풍경인데 쓸쓸하거나 외롭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곳이 성스러운 장소이기 때문일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라마유르 곰파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라다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지만 라마유르 곰파의 하이라이트는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협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라마들의 불경소리를 듣는 것 이다. 운이 좋다면 라마들이 범문을 외우는 소리, 동자승들이 불경공부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불경공부를 할 때는 제법 반듯하게 앉아,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열심히 오물조물 입을 움직이며 낭낭한 목소리를 내는 어린 라마들인데, 저녁시간이 되면 라마유르 동네 아이들과 함께 곰파 안을 두 볼이 빨개지도록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한다.           



1박2일로 잠시 라마유르라는 동네를 확인하러 가자! 라는 목표는 어느새 2박 3일이 됐다.


3일째 아침, 카르길에서 레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물론 자리는 없다. 입석이다. 로컬버스로 올 때 천천히 기어가듯 달리는 속도 덕분에 멀미걱정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잡아탄 버스는 투어리스트 버스였다. 이 말은 커브에서 감속 따위란 사치란 의미고, 투어리스트 버스의  인도인들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할 것이라는 거다.

휴게소를 겸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 버스가 섰다. 지옥 같은 냄새에서 겨우겨우 탈출했다.

왠지 미식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상큼한 사과와 살구를 사기위해 마을을 헤메고 있으니, 저기 멀리 익숙한 모자가 과일가게를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어??'

그랬다. 아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라마유르로 가는 중 이었다.

나는 당장 버스로 뛰어가 라마유르에서 이곳까지의 차비를 계산했다.

차장은 내가 다시 라마유르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며 가방을 꺼내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거길 다시 가는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요.'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라마유르행 버스로 갈아탔다.

이 풍경을 다시 보기위해서 말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라마유르에서 5일을 지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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