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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Apr 07. 2018

[인도] 판공초-라다크에 갔다.1

잃어버리는 것은 내 목숨인데 이건 심각한 프러블럼이다.

-라다크에 오는 많은 사람들의 1순위 목표는 판공초다.

레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 어깨위에서 내내 잠들어 있던 아르준과 친구들도 오로지 판공초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주일 있는 방학을 모두 투자해서 델리부터 올라왔다.     


그런데 나는 판공초에 가고 싶지 않았다.

 판공초와 라다크가 본격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된 계기는 아마도 이 영화 일 것이다.

<세 얼간이, 3 Idiots>

세 얼간이가 인도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라다크를 찾는 인도인의 수가 급증 했다고 들었다. 물론 나도 세 얼간이라는 인도 영화를 봤고, 판공초와 라다크의 아름다움을 그 영화를 통해서 알았다. (아르준과 친구들도 나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갑자기 겁이 난거다. 내가  생각했던 판공초가, 세 얼간이에서 본 그 아름다운 판공초가, 더 이상 그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현실도피라는 것에 남부럽지 않은 재능이 있다.          


이와 더불어 가끔 여행객들 사이에서 초모리리가 좋은가, 판공초가 좋은가하는 의미 없는 경쟁이 벌어지곤 하는데 두 군데 모두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초모리리가 약간 우위를 차지한다.



이것 들을 종합 할 때 나는 굳이, 레에서 머무를 시간을 낭비하면서 까지 판공초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기적 같은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레에 도착한지  2일 만에 이미 초모리리를 다녀오고, 초모리리에서 인생 최고의 감동을 받은 터라 아무래도 판공초에 대한 기대감은 날이 갈 수록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판공초에 가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나 다웠다.

방안에 누워 머리카락만 만지작거리면서 무기력함에 시들어 바스라 질 무렵 갑자기 판공초에 가야 한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왜 갑자기 판공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절대 2주가 넘도록 아무것도 안하고 레 바자르를 방황하고 다니던 나에게 쏟아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이것은 본능에서 나온 탁월한 전략이었다. 기대감이 최저로 떨어졌을 때 판공초를 방문해서 판공초에 대한 이미지를 확 끌어 올리자는 그런 판타스틱한 전략? 그런 것 이었다.     



 그런데 막상 판공초에 가려고 생각하니 판공초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요망한 나의 대뇌는 간다고 마음먹으니 판공초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판공초에 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판공초에 간다면, 메락에 간다면, 그것도 처음이라면 절대 혼자 가서는 안 된다.


판공초에 가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바베큐다.
혼자서는 바베큐를  할 수 없다. 물론 간절하다면야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냐만, 해발4200m 고산의 호수에서 홀로 캠프파이어를 하며 바베큐를 굽고 싶지는 않았다. 판공초 물보다 내 존재가 더 차가워 질 것이다. 영혼마저 얼어붙어 버릴거다.      

그런데 마침 내가 판공초에 가려고 마음먹은 그 다음날 같이 버스를 타고 판공초에 갈 사람도 생겼다. 정말 내 인생에 이렇게 타이밍이 좋았던 적이 몇 번 없는데 라다크 너란 장소 정말 나랑 잘 맞나보다. 라다크에 도착하고 한 달이 채워질 무렵 드디어 판공초를 가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진정한 재미는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고. 판공초로 떠나기 전날 판공초에서 만들 바베큐 준비를 하러 바자르로 나갔다.     

바베큐하면 무엇인가? 바로 감자 그리고 치킨이다.

라다크는 닭이 살게 된지 불과 20년도 안 됐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레에서 가장 흔한 고기

가 양고기와 함께 닭고기다. 골목을 잘 찾으면 내 키보다 크고 내 몸통보다 넓은 닭장에 닭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한사람은 열심히 닭을 잡고, 한사람은 껍질을 벗기고 있다. 원하는 닭을 고르면 닭장에서 꺼내서 바로 잡아주기도 한다. 진동하는 피 냄새와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닭의 모습을 보니 20년 전 시골 할머니 댁 시장에서 닭 잡던 모습이 생각났다.     


레 바자르에 가면 바비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할 수 있다. 술, 알루미늄 호일, 야채, 닭고기, 양고기, 온갖 양념장에 향신료 까지, 잘 포장해서 버스에 실을 준비만 하면 된다.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라다크가 행정적으로 잠무-카슈미르 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잠무-카슈미르라 하면 인구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을 종교로 가지고 있는 인도의 대표적인 무슬림 거주지역이다. 최근 인도에서 들리는 유혈사태, 독립시위에 대한 뉴스는 대부분 이곳에서 발생한다. 무슬림은 코란에 의해 돼지고기와 술을 먹고 마시는 것이 금지 되어 있다.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돼지와 접촉하는 것조차 무슬림에게는 꺼려지는 일이다. 특히나 블교문화권인 라다크에서도 레나 카르길 같은 주요도시는 무슬림의 비율이 높으며  돼지고기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또한 술을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것 역시 좋은 행동은 아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술을 금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전통술인 ‘창’을 만들어 마시지만, 버젓이 모스크가 서있고 무슬림 인구가 많은 올드타운과 바자르에서 술병을 보이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라다크는 어디를 가도 편한 길이 없지만 판공초로 가는 길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판공초는 날씨 변덕이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이 흐렸다 맑기를 반복하고, 폭우가 쏟아져 길이 무너지기도 한다. 내가 판공초에 갈 무렵에도 폭우로 인해 길이 무너져서 판공초로 진입이 일주일 정도 불가능 했다. 도로가 어느 정도 복구 되어 버스가 다시 다니기 시작 했지만, 판공초에 도달해서 예상보다 길이 좋지 않으면 그대로 레로 돌아오는 경우도있기 때문에 표를 구입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판공초로 가는 길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인 창라(Chang La)가 있다.

창라의 해발고도는 5,360m인데 생각보다 도로 포장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창라를 넘는데 큰 걱정은 없다. 걱정은 판공초에 들어선 순간부터 하면 된다.      


판공초의 파란 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이제부터 보이는 것이라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파란 호수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다. 판공초는 해발 4,250m에 위치한 인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호수이며, 길이 135km 넓이 5km로 세계에서 가장 큰 고산호수이다. 판공초는 인도와 티베트 국경을 가로지르는 호수인데 전체 면적의 60%는 티베트에 속한다. 판공초 입구에 도착하면 수많은 관광용 차량 사이로 떡하니 자리 잡은 세 얼간이 포토존이 있다. 정말로 세 얼간이 라고 쓰여 있는데, 그곳에 가면 수많은 남녀 아미르 칸(인도의 유명한 영화배우, 영화감독. 세 얼간이의 감독이자 주연배우)이 선글라스와 가죽자켓을 입고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인도인들의 자신감은 아마 전 세계에서 최고일 꺼다.           



이제 판공초에 들어 왔으니 진짜 고비가 시작된다. 판공초 호숫가의 길은 평소에도 상태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폭우로 길이 무너졌다고 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다행히도 길이 복구되었다고 들었건만 길 곳곳에는 내가 웅크리고 들어가도 될 만큼 큰 구멍들이 호시탐탐 버스를 노리고 있었다. 구멍을 지날 때마다 말 그대로 버스가 뒤집힐 뻔 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는데, 버스에 탄 인도와 외국인 관광객들은 버스가 기울 때마다 ‘오-우’를 연발했지만 버스 기사는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침착하게 뒤를 돌아보고 “노프러블럼” 이라 말하며 한번 웃고 말았다. 아니 잃어버리는 것은 내 목숨인데 이건 심각한 프러블럼이다. 버스가 낭떨어지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찰나의 두려움이고 현실적이고 지속적인 두려움은 따로 있었다. 바로 마치 자기가 하늘을 날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버스의 태도다. 버스와 울퉁불퉁한 도로는 작정하고 나와 이 버스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의 엉덩이를 깨버릴 예정인 것 같았다. 과장하면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땅을 달리는 시간과 경쟁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버스가 굴러 떨어지느냐 내가 엉덩이의 찌릿함에 나가떨어지느냐 경쟁하고 있는데 버스가 멈췄다. 마지막 종착점인 스팡믹에 도착했다.     

인도인들은 판공초 입구에서 주로 머물고, 서양인이나 일본인들은 스팡믹 혹은 만에 주로 머문다. 그리고 판공초의 가장 끝까지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다.           



스팡믹에서 내려서 해야할 일은 메락까지 들어가는 트럭을 찾는 일이다. 다행히도 레에서부터 함께 타고온 판공초 주민들 중 ‘만’에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트럭을 탈 수 있었다. 스팡믹까지만 버스가 다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레에서 스팡믹까지의 여정이 인스턴트 커피라면 스팡믹에서 메락까지는 콩다방 정도의 커피랄까? 아까 판공초에 진입한 이후로 고생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진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레에서는 화창했던 하늘인데 판공초에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구름은 점점 버스 꽁무니에 가까워져 그대로 호수를 덮어 버릴 정도가 됐다. 메락에 도착하기 전에 비가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헤미스곰파에서 레로 돌아올 때도 트럭 짐칸에 탔었는데 포장도로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도로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얼마나 트럭 난간을 꼭 쥐고 있었는지, 손등이 하얗게 질릴 정도 였다. 트럭짐칸에서 튕겨나가지 않으려고 안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한 시간을 달려 판공초에서 외국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마을이자 티베트에 가장 가까운 마을인 메락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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