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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Jul 12. 2018

[파키스탄]2018년 훈자- #1.탈레반과 피부관리

방심하는 순간 낚인다.


카리마바드에서 친하지는 않지만-적어도 나는 그와 친하지 않다고 생각 한다- 1주일에 1번씩은 꼭 길에서 만나던 남자가 있었다. 훈자사람들 중에서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편에 속하는 이 남자와 기분이 내킬 때 는 잠시 길가 상가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대부분의 대화는 다른 훈자사람들과 매일매일 지겹게 반복되는 그런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훈자에 언제 왔느냐? 훈자는 처음이냐? 훈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훈자에 얼마나 있을 생각이냐? 머무는 숙소가 어디냐?파키스탄이 좋으냐?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냥 기억 속에서 사라질 훈자의 사람 중 하나가 될 것 같은 이 남자에 대해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이 남자와 단 한번 이지만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훈자사람, 아니 무슬림 남자 중 유별나게 자신의 용모에 관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다. 길에서 걸어가는 나에게 처음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묻고, 나라를 묻고, 그 다음에 물은 것이 '피부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였다. 나는 한국에서도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 BB크림이나 CC크림 그리고 버츠비를 화장이라고 부른다면 아주 약간의 화장을 하고 다닌다. 로션은 아무거나-정말 슈퍼에서 파는 3천원짜리도 상관없다- 바르고, 피부과에도 피부 관리를 위해 가본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피부 관리'에 대해 물어보는 이 남자에게 솔직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 할 말이 없었다. 남자는 "썬크림도 안 발라요?"라고 물었고, 나는 "가끔 바르는데, 썬크림을 바르면 밤에 세수를 꼼꼼히 해야 하기 때문에 잘 바르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대화가 여기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나에게 어떤 썬크림을 사용하는가 물었고, 보통 누군가에게 받은 썬크림을 사용하기에, "아무거나 있는걸 발라요"라고 말했다.


이 남자의 트레이드마크는 수염과 카우보이모자였다.-그리고 내가 훈자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사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 많았고, 절대 대화의 주도권을 넘기지 않는다. 나는 그 날 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이 남자의 카우보이모자가 당연히 패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피부 관리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이 남자의 카우보이모자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자에게 모자는 패션이에요? 라고 물었다. 역시나 남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쓴다고 했다.


"왜 그렇게 피부에 관심이 많아요? 일반적으로 무슬림 남자들은 피부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지 않나요?" 여전히 단도직입적으로 밖에 질문을 하지 못하는 나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물어봤다.


"내가 몇 살처럼 보여요? 나는 40살이에요. 내 피부가 40살처럼 보이나요? 내 몸무게가 몇kg처럼 보여요? 나는 67kg이에요. 조금 마른 편이죠. 예전에는 4kg정도 더 나갔었는데, 일이 힘들어서 최근 살이 빠졌어요. 하지만 한국여자들은 슬림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요?"


나의 질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답이었다.


"왜 한국여자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묻는 건가요?"


보통 때라면 대화를 더 이상 진행 시키지 않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지만 그 날은 왠지 조금 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아마도 오랜만에 나온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걷기 싫어서 였던 것 같다.


"저에게는 우크라이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이번에도 질문과는 다른 대답이었다. 나는 남자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냥 멍한 얼굴로 길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만, 이 남자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죠. 바로 탈레반 때문에요."


나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탈레반'이라는 단어를 파키스탄에서 파키스탄사람에게 들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 이 단어가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맞아요. 탈레반이요."


그제서야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는 카리마바드에서 만났어요. 그녀의 직업은 저널리스트였고 이곳에서 한달간 저와 지내다가 일이 있어서 이슬라마바드로 갔어요. 그리고 다시 훈자로 돌아온다고 했죠. 그런데 어느 날 부터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저는 계속해서 전화를 했지만 제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았고요. 그녀가 왜 제 연락을 피했는지 알아요? 훈자 남자 때문이에요. 그녀는 알리아바드(훈자에서 가장 커다란 상업의 중심 마을)에서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에서 카리마바드 남자를 만났어요.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도 카리마바드에 있다고 말했죠. 그녀는 제 이름을 그 남자에게 말했고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해요. 그런데...놀랍게도 그 남자가 제가 탈레반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이럴 수가... 저는 평화를 사랑하고, 분쟁을 싫어해요. 그런데 탈레반이라뇨. 물론 그녀가 그 이후 제 연락을 받지 않은 것은 이해해요. 무서웠겠죠. 저라도 무서웠을 거예요.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냐고요? 그녀는 저널리스트로 일을 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온 것이었어요. 그녀가 훈자에서 해야 할 일은 다 끝나지 않았고, 그녀는 일을 하기 위해서 다시 훈자로 돌아왔죠. 그리고 길을 걷고 있는 그녀를 다시 만났어요. 저는 그녀에게 자초지정을 들었고 제가 탈레반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해야 했어요. 그녀가 제 말을 믿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우리관계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어요."


남자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을 마쳤다. 자, 이제 여기 까지 들었으면 뒤에 이어질 내용은 뻔하다. 아마 내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겠지...   이제 아무리 태양이 무섭고 두려워도 태양을 마주하고 걸어야 한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을 탈레반이라고 말한 그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어요? 카리마바드 사람이라면서요?"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다가 결국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물론이죠. 가끔 길에서 마주쳐요."


"정말요? 그 사람에게 왜 거짓말을 했는지 따졌어요? 그 남자가 당신을 탈레반이라고 말해 여자친구를 빼앗으려 한 게 너무나도 분명하잖아요."


"아니요. 그냥 모른 척 하고 지나가요. 말했지만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분쟁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렇군요. 저는 이만 가야 할 것 같아요. 배가 고파서요."

"같이 밥먹으러 갈래요?"

"아니요.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먹을래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파키스탄에는 정말 홀로다니는 외국인 여성을 노리는 남자들이 많다. 훈자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훈자에서도 혼자서 길거리에 나가면 휘파람을 부는 사람, 이쁜이~ 하고 추파를 던지는 사람, 짜이를 사주겠다고 다가오는 사람,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갑자기 고백하는 사람, 심지어 술을 사주겠다는 무슬림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작업을 시도하는 남자들이 있다.


이 세계, 낚시의 방법은 다양하고 방심하면 낚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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