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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Jul 16. 2018

[파키스탄]2018년 훈자- #2.훈자워터 "훈자워터"

그렇다면 여행의 재미는 어디에서 찾을까?

훈자에 도착한 그날 나는 제로포인트라는 곳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다. 하지만 2일만에 다른 곳으로 방을 옮겼는데 이유는 '훈자워터' 때문이다. 훈자-카리마바드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울타르 빙하에서 녹아 흘러내려오는 물을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특이한 점이라면 빙하가 하얗지 않고 까맣다는 것이다. 빙하의 색이 까만 이유는 빙하에 진흙이 섞여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이니 당연히 진흙이 섞인 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오게 된다. 과거에는 이 물을 그대로 마셨다고 하지만, 지금은 가정 용수는 진흙이 걸러진 상대적으로 맑은 물을 사용한다. 한번 정수가 되서 가정으로 보내지는 이 정수된 물을 대형숙박업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관광객이 너무 많은 물을 사용하면 주민들이 정수된 물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튼 내가 있던 곳은 '훈자워터'의 색이 그 어떤 곳보다 까맣다. 아메리카노의 색과 비교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탁하고 어두운 색이었다. 내가 방을 옮긴다고 말하자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물 때문이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주인은 며칠 전에도 프랑스 커플이 물 때문에 게스트하우스를 옮겼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훈자워터'는 단순히 훈자의 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훈자은어로 아락(일종의 위스키, 가정집에서 만드는 밀주)을 뜻한다. 무슬림들에게 음주는 불법이다. 단지 기호에 따라 마시지 않는 것, 혹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마시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법으로 금지된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많은 무슬림들은 술을 마신다. 특히나 수니나 시아보다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이스마엘리 무슬림지역인 훈자는 술에 대해서 관대하다. 훈자에서 공장에서 제조된 술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밀주-훈자워터를 구하는 것은 청바지를 구하는 것보다 쉽다.


훈자워터가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참 할 말이 많다. 나는 훈자워터 때문에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고, 한밤중에 술 취한 파키스타니(파키스탄 사람)의 술주정에 시달린 적도 여러 번이다. 훈자워터는 가정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마시고 탈이 나는 파키스탄사람도 많다는 것이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말이다.(나도 그랬고 말이다.) 지금 이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어제 마신 훈자워터 때문에 오늘 하루 종일 배앓이를 하고 있다고 내 앞에서 징징거리며 말한다.


하지만 훈자워터와 나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황당하고 잊을 수 없는 일은 단연 이거다.


내가 훈자-카리마바드에 도착한 첫날. 물과 빵을 사러 슈퍼에서 만난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한글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으며, 한국 중에 파키스탄을 여행한다면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어떤 유명한 한국인의 친구라고 했다. 그와 카톡까지 하는 사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그와 친구임을 강하게 주장했다. 나는 그 남자의 주장을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언어의 문제인지 이곳 남아시아에서는 인사만 나눠봤어도 모두 '나의 친구'가 된다.

남자는 한국어와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면서 나에게 몇 가지 문장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현지사람이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며, 언어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기에 나는 몇 가지 표현을 종이에 적어주었다. 남자는 내가 적어준 것을 몇 번 소리내어 읽더니 나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 달라고 했다. 나는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사람들을 거절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이 남자에게 역시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남자는 그날부터 4일 동안 정말로 한국어 공부를 위해서 나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매일매일 한국어 표현을 5개씩 알려달라고 했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답을 해주었다. 내가 게스트하우스를 옮기는 날, 남자는 그날 역시 한국어 표현을 알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지금 방을 옮기느라 바쁘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남자는 내가 방을 옮기는 이유에 대해 물었고 나는 '훈자워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을 옮기고,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는 남자에게 '훈자의 모든 집이 이렇게 새까만 물을 사용하느냐?'고 물었다. 남자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모두가 그 물을 마셨고, 지금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물을 마신다고 했다. 덧붙여서 '훈자워터'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는데 건강에 좋은 미네랄들이 많이 들어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장난삼아 "그렇다면 나도 훈자워터를 마셔야 겠군요" 라고 말했다. 남자는 내가 마시면 탈이 날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인도를 비롯한 위생이 그리 좋지 못한 다른 나라의 수돗물도 그냥 마시는데, 이 청청지역의 훈자에서...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물이라면 마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마실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그럼 혹시 모르니까 자신과 함께 마시는 것이 어떻겠느냐? 하고 물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긴다. 아니 오해가 아니라 의도한 것 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봐서요. 그런데 나는 지금 당장 마실 꺼에요."라고 말했다. 남자는 "다음에 내가 마실 때 같이 마셔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이 더 지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남자에게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남자는 훈자워터를 함께 마시자고 말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9시가 다 되어간다.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내가 이 남자와 훈자워터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는 나는 훈자워터가 술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보이스톡을 하고 있는 시점은 훈자워터가 술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남자가 말했던 '훈자워터'가 술을 의미한다는 것을 지난번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으며, 미안하지만 나는 같이 술을 마실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나와 함께 있던 여행자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라면 마실 수 있지만 혼자서는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렇게 거절을 하고 훈자워터에 대한 작은 오해는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2시간이 지난 후 남자에게 다시 보이스 톡이 왔다. 남자는 취한상태에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나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연락을 했고, 결국 아이디를 차단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남자의 아이디를 차단했다.


'훈자 사람들은 정말 착하고 믿을 수 있다.' 내가 훈자에 가기 전에 수 없이 들은 말이고, 훈자에 와서도 여러 번들은 말이다.


심지어 게스트하우스 주인도 말한다. "훈자사람들은 착한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다. 훈자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있다."


훈자에서 만난 한국인 남성 여행자들은 말한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 파키스탄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전부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모든 남자들이 흑심을 가지고 여성에게 말을 건다는 전제를 달고, 말을 거는 모든 남자들을 경계해야 한다면 여행의 재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여행의 재미가 낯선 이들과의 대화에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참 곤란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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