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어서
이 세상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건 든든한 내 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소수로, 그러나 더 단단하게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들을 보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내 인생이 아주 헛되게 흘러온 건 아니었구나.’
반면에, 아무리 애써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오해를 풀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도 이미 선을 넘어버렸거나,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되돌릴 타이밍을 놓친 관계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일부러 외면하며 되돌리고 싶지 않았던 관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하나둘 쌓이며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아마도 내가 직장인이기 때문이겠지만 나의 경우 불편한 관계는 늘 회사에서 발생했다.
서로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지면 학교나 친구 관계에서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회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불편해도 계속 마주쳐야 하고, 때로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소식이 전해진다.
아직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나의 회사 생활 속에서도
나를 미워하는 것이 느껴질 만큼의 관계들이 있었다.
약 8년 동안 그런 인물은 두 명이었고, 지금은 다행히 한 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한 명과의 관계는 오래전 일로 남았고, 부서가 멀어지며 서로에게 관심도 옅어졌다.
문제의 그 한 명은, 사실 나와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분의 같은 팀의 다른 구성원과 협업을 했을 뿐이고, 업무 구조상 굳이 그 분을 거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분은 그 팀의 선임이었다. 헷갈리니 나를 미워하는 그 선임을 A, 나와 직접적으로 협업을 했던 그 분의 팀원을 B라고 지칭하겠다)
협업 과정에서 나와 B는 서로 참고 넘어간 것들이 있었을 것이고, 나 역시 업무 협조가 순탄치 않다고 느껴 답답함이 쌓여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잘못도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어 당시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이 더 컸던 내가 B 업무까지도 종종 처리해주고 있었다. B는 본인이 나서지 않아도 업무가 진행되는 것을 보며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추후 나의 주변 선배들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마지막 업무까지는 해주지 말라는 조언에 따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았다. (나도 아무리 내가 더 급하다고 해도 이렇게나 협조를 안해주나 하는 불만이 있었다.)
그 일로 상대 팀 선임 A는 자기 팀원 B에게만 일을 시켰다며 분노했고, 그 감정은 고스란히 나를 향했다.
그날, 그 선임 A가 평소 친분 있는 나의 선배에게 전화로 거침없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선배는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며 나를 옹호해주었지만 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서로를 못 미더워하는 관계가 되었고, 그 사실은 회사 안에 제법 빠르게 퍼졌다.
사족이 길었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이런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고, 그 안에서 내가 상처를 덜 받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하늘 아래 완전히 떳떳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아직 정답은 모르겠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서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무시와 외면에도 분명 한계는 있다. 회사를 다니는 한, 가끔은 마주쳐야 하니까.
그래도 하나는 알겠다. 미움에 강해져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미움이 내 인생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믿는 것.
그럴 때마다 나는 배우 최화정님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해.
그러니깐 사람들은 너를 잘 모르면서 싫어하는 것처럼, 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좋아하기도 하는 거야. 그러니까 퉁쳐~!”
그래, 나에게는 내 편들이 있다. 그러니 퉁치자.
세상에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일들로 내 하루를, 내 마음을 다 쓰지 말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냥 퉁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오늘도, 퉁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