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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19. 2022

어디로, 얼마나

어디든, 충분히

여행이 주는 위안


홀로 먼 곳으로 떠나기 어려웠던 10대에는 공원과 놀이터가 나에게 안식처였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었던 나는 혼자인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도는 곳, 띄엄띄엄 놓인 의자가 확보해준 거리가 있는 그곳에서는 혼자인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로 감정이 일렁일 때면, 주머니에 동전을 짤랑이며 공원의 공중전화로 향했다. 친구들의 목소리에 위안을 얻고, 어두운 밤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곳도 공원이었다.


20대엔 많은 곳으로 떠나고 다시 돌아왔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도 좋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도 좋았다. 여자라서 위험하다며 말리는 부모님을 설득해서 머물렀던 태국의 바닷가와 구불거리는 산 길을 떠올리면 마음에 바람이 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달려갔던 강릉 바닷가도 잊히지 않는다. 파도 소리가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논문을 쓰고 떠났던 스페인은 가장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동글 거리는 돌 위에 배를 대고 누웠던 순간, 그간 고생했다고 동그란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조약돌의 촉감과 파도 소리_@스페인 2008
어디로, 얼마나


30대, 그리고 40대가 된 지금.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과 양육, 일을 이어가면서 혼자만의 여행은 여간해서 쉽지 않았다. 아이들을 두고 어딘가 가는 것도 마음이 꺼려졌다. (좋은 엄마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어왔다. ) 그래서 출장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집에 없는 건 일 때문이니까. 일정을 마치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바스락거리는 이불에 누워 혼자 마시는 맥주에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금세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와 여행을 가는 어려움을 겪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어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인 것이 좋았던 것인지, 돌아올 곳이 있어서 좋았던 것인지도 모호하다. 확실한 건 딸과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행복하게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사실,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 순간도 딸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든다. 겨울, 두꺼운 옷이 담긴 짐, 차 없이 가겠다는 결정… 10대와 40대 여성에게 녹록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위축된다. ‘그래도 가야지.’ 마음먹고 기차표를 알아보는 나에게 안전을 걱정하는 ‘내편’의 목소리도 마음을 작아지게 한다. 어디로, 얼마나 갈까라는 질문은 전국 어디든 + 열흘에서 자꾸만 줄어든다.


돌아보면 여행을 갈 때 동선을 짠 적은 없었다. 외국에 갈 때조차 지도 한 장, 사전 하나, 왕복 비행기표, 첫날 숙소 외에 정한 것 없이 떠났다. 덕분에 나는 골목과 공원에서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 많은 경험을 했으니까. 그러니 위축되지 말자 다짐해본다.


어디로 = 어디든, 얼마나 = 충분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안전히, 풍성히 돌아오기를.

이 여행이 딸의 20대를 다채롭게 만드는데 양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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