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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린다 할머니의 라이스 푸딩

달달한 마음 한 스푼

by 포공영

린다와 빌의 집에 들어서자 구수한 공기가 현관까지 떠다니고 있었다. 들숨에 훅-코로 들어온 치킨 냄새가 아침 내내 비어있던 위장을 자극하자 허기가 밀물처럼 몰려왔다. <Sunday Rost> 초대는 처음이었다. 말로만 듣던 영국식 일요일 정찬을 마침내 먹는 날이었다. 오븐에 구운 치킨(또는 비프)에 으깬 감자나 구운 채소를 곁들이고 그 위에 그레이비소스를 얹어 먹는 정찬 말이다. 교회에 가기 전 오븐에 넣어 놓은 치킨은 잘 구워져 있었다. 린다는 앞치마를 두른 후 감자 등을 삶을 물을 올려놓고는 오븐에 넣어 구울 채소를 손질했다.


린다의 집에는 거실이 두 개였는데, 큰 곳은 현관 쪽에 작은 곳은 뒤뜰 가는 쪽에 있었다. 앞쪽 거실은 길가를 향하고 있어 반투명의 하얀 커튼이 내려져 있었고, 뒤쪽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린다와 빌이 주로 사용하는 작은 거실에는 3인용, 1인용 소파가 ㄴ자로 있어 서넛이 앉아 차 한 잔 하기에 딱이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벽난로의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수시로 비바람이 불다가 잠깐씩 해가 드는 웨일즈 날씨에도 아늑했다. 빌은 광부였다. 석탄은 그에게 삶의 안정과 함께 진폐증도 안겼다. 숨이 차 그르릉 소리를 내면서도 유쾌했다. 린다는 간호사였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고,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두꺼운 안경과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해서 린다와 얘기할 때면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도록 신경 썼다. 분홍빛 얼굴에 회색 곱슬머리, 단정한 치마에 구두 차림은 클래식한 영국 할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그레이비소스를 만드는 것으로 요리가 끝났다. 나와 H언니를 초대해서인지 부엌에 딸린 작은 식탁이 아닌 현관 쪽 거실에 있는 큰 식탁에 점심을 차렸다. 큰 접시에 로스트 치킨, 매시드 포테이코, 삶은 완두콩, 구운 감자 그리고 ‘파스닙(Parsnip)’이라고 불리는 흰 당근 구운 것을 올렸다. 그레이비소스는 조각배 모양의 도자기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음료는 우리네 과일청을 물에 타서 마시는 것과 비슷한 스쿼시(Squash)였다.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식사를 시작했다. 웨일즈에서 처음으로 현지인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살짝 상기되었던 나는 주로 대화를 들으며 먹었다. H언니의 유창한 영어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괜찮았다. 파스닙은 마트의 채소 코너에서 본 적은 있지만 먹어본 적은 없었다. 흰 당근을 어떻게 먹나 했었는데 구워서 먹으니 부드럽고 달보드레했다. 생으로 먹으면 당근보다는 도라지나 더덕정도의 식감이지지 않을까 싶었다. 린다는 대화 사이사이 “오, 그래!(Oh, Is it!)”이라고 추임새 넣듯이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음식은 넉넉했다. 우리 엄마처럼 린다도 손이 컸다. 접시 위의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나는 배가 불렀다. 식성이 좋은 H언니는 말끔히 먹었지만 더 먹으라는 권유에 싱긋 웃으며 사양했다.


디저트를 먹을 차례였다. 수프 접시에 걸쭉하고 하얀색으로 보이는 것이 담겨 나왔다. ‘라이스 푸딩’이라는 린다의 말에 “설마?”라는 한국어가 툭 튀어나왔다. 당황하기는 H언니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의심쩍은 표정을 가벼운 미소로 지우며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달달한 쌀알이 씹혔다. 이미 배가 많이 부른 상태였기도 했지만 단맛 나는 쌀죽 같은 디저트를 다 먹기에는 혀의 저항이 좀 있었다. 찹쌀에 우유와 설탕을 넣고 끓여서 만드는 쌀푸딩은 기존의 서양 디저트 개념을 흔들었다. 남겨도 된다는 린다의 말에 미안했지만 결국 다 먹지 못했다. H언니는 린다의 마음을 생각해서였는지 깨끗이 비웠다. 영국 사람이 카레 등과 먹는 쌀은 길고 찰기가 없어 내게는 조금 아쉬웠는데, 찹쌀을 팔고 있었다니. 물어보니 찹쌀은 디저트 재료 코너에서 팔고 있다고.


우리네 후식인 떡이나 약과를 먹고 자랐음에도 쌀푸딩은 왜 그리 낯설었던지. 그 일요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쌀푸딩을 먹은 날이었지만, 린다를 생각할 때마다 단짝인양 함께 떠오른다. 린다는 아시아에서 온 우리가 쌀이 그리울 것 같아 특별히 생각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의 마음은 음식 하는 손만큼이나 컸다.


내가 살았던 웨일즈의 바닷가 마을은 7,8월 잠깐을 빼고는 늘 비바람이 불어와 춥고 우울한 날씨가 이어졌다. 내 숙소와 린다의 집이 가까웠는데, 그의 집 앞에 빨간 현대차가 세워져 있으면 사람이 있다는 표시였다. 해서 차가 보이면 가끔씩 들러 난로 앞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며 추운 몸을 녹였다. 마음을 녹였다.


2년 후 영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꽃을 들고 린다와 빌의 집을 찾아갔다. 반갑게 맞아준 린다,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또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아무도 집에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나중에 한 번 더 가봤지만 역시나 인기척이 없었다. 하얀 커튼이 중간까지 쳐진 창 너머로 어두운 거실만 보였다.


“린다 할머니, 쌀푸딩 말이에요. 그때는 다 먹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남아 조금씩 음미하곤 해요. 당신의 달달한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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