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영어 레슨이 끝나면
곧 80이 될 분이 영어를 배우겠다고 해서 농담인 줄 알았다. 많은 사람이 호기롭게 배우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노부코 상은 진지했다. 고등학생 때 영어를 재미나게 배웠던 기억이 있었고, 집 주변에서 곧잘 마주치는 외국인과 말을 섞어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렇게 노부코 상의 집에서 ‘화요일 아침의 영어 레슨’이 시작되었다. 공짜는 싫다 해서 수업료는 천 엔으로 했다. 언제나 깍듯하게 봉투에 넣어 두 손으로 전해 주었다. 한 시간 정도의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함께 먹곤 했는데, 매번 다른 메뉴로 직접 만들어 주었다. 점심까지 먹는 것을 내가 부담스러워하자, 어차피 혼자 먹는 점심인데,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면서 편히 먹으라고 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나는 가끔 쇼트케이크나 티라미수 같은 디저트를 사들고 갔다.
재일교포 2세로 일본 사람처럼 살아와서 그런지 한식보다는 일본 음식 위주로 해주었다. 스키야키(일본 전골)에 적셔 먹으라고 나온 날달걀까지는 먹지 못했지만, 솜씨가 좋아서 어떤 음식이든 맛있었다. 철에 따라 음식이 달라졌고, 대중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귀 샤부샤부 같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먹은 음식 중에서 가정식 슈마이*는 이후에도 한 번씩 생각날 정도였다. 식후 커피 한 잔은 노부코 상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모은 커피잔 중에서, 내가 고른 잔에 내려주었다. 블랙커피에 달콤한 도라야끼**까지 먹고 나면 배가 부르면서 기분 좋게 나른했다. 애창곡을 노래하듯 들려주는 젊은 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유럽의 어느 가게에서 커피잔을 둘러보고 있는 멋쟁이 노부코 상을 상상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니 간단히 먹는 습관이 들면서 집밥의 개념이나, 엄마가 해주던 밥맛은 차츰 잊혀갔다. 노부코 상 덕분에 일주일에 한 끼는 혼자서 먹는 단촐한 일품요리가 아닌 둘이서 함께하는 집밥같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그 위에 케첩으로 내 이름을 일본어로 써 주기도 했는데, 그걸 보면서 서로 아이처럼 좋아하며 웃었다. 70대, 40대 그런 것은 사라지고 엄마와 아이만 남아 깔깔대던 그 순간, 갓 지은 밥솥을 열 때처럼 마음에도 따스함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노부코 상은 때때로 집밥대신 자신의 맛집 리스트에 올라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츠루하시역(오사카의 한인타운이 있는 곳) 앞의 장어덮밥,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시래기 고깃국, 수산물 시장의 풍성한 회덮밥, 경치 좋은 카페와 고급 중식당 등등, 그 덕에 나는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음식을 맛보거나 경험할 수 있었다.
2년 넘는 세월 동안 화요일 아침을 함께하면서, 노부코 상은 이미 딸이 다섯이나 있음에도 나를 여섯째 딸이라며 살갑게 대했다. 가끔은 노부코상의 집에 들른 딸이나 손주와도 마주칠 때가 있었는데, 엄마가 할머니가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노부코상은 어설픈 내 일본어 설명에도 귀를 기울여 들었고, 자신의 고르지 못한 영어 발음에 "고멘 고멘(미안, 미안)"이란 말을 연거푸 내뱉으면서도 씩씩하게 따라 했다. 도무지 외워지지 않는 단어나 문장은, 작은 수첩에 일일이 적어 갖고 다니면서, 전철이나 버스에서 틈틈이 꺼내보며 외웠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저 한 번이라도 더 영어를 쓰려고 애썼다. 회화 연습이 지루해질 때에는 영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의미를 알아가며 부르니 더 와닿는다던 노래를, 그해 성탄절에 교회에서 부르며 큰 박수를 받았다. 정말이지 청춘은 나이와 상관없다던 사무엘 울먼의 시를 몸으로 쓰면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의 나날이 그와 같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노부코 상, 따듯한 집밥 늘 감사했어요. 우리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슈마이(焼売, 한국어로는 시우마이 또는 사오마이)는 다진 돼지고기, 작은 새우 혹은 다져낸 새우, 표고, 파 등으로 만든 소를 만두피 위에 올려서 만드는 광둥식 딤섬 만두의 한 종류이다.
**도라야키(どら焼き)는 밀가루, 달걀, 설탕을 섞은 반죽을 둥글 납작하게 구워 두 쪽을 맞붙인 사이에 팥소를 넣은 일본 전통과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