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오카 상은 7년째 한국어를 배우는 중
마츠오카 상의 취미 중 하나는 여행이다. 올해도 벌써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은 우선 여행지로, 해마다 두어 번씩은 꼭 방문한다. 다음 주에는 센다이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 센다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났던 후쿠시마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센다이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그때의 쓰나미가 떠올라 가슴이 덜컥했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걱정’과 ‘오지랖’을 애써 삼키며 잘 다녀오라는 말을 전했다. 그 때문에 다음 주 한국어 레슨은 쉬어간다.
마츠오카 상은 2019년 3월 교토의 한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그녀는 그때부터 쉬지 않고 지금까지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벌써 만 6년이 되었다. 20여 년 넘게 한국어를 가르쳐 왔지만, 이런 학생은 처음이다. 오래 배워야 2년이고, 보통은 몇 달 안에 그만두기 일쑤다.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리던 교토에서 하던 수업을 1년 후 오사카로 옮겼다. 마츠오카 상은 흔쾌히 오사카까지 와주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온라인 수업으로 바꿨다.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완전히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온라인 수업은 이어졌다. 사실 나는 마츠오카 상이 1년 안에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어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나는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한번쯤은 한국에서 1년 정도 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자녀는 모두 성인으로 각자의 일터에서 일하고 있으니, 남편만 동의해 주면 가능한 일이었다. 마츠오카 상이 틈틈이 홀로 여행을 떠나고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것도 어쩌면 먼 훗날 한국에서의 장기체류를 위한 연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남편은 재일 교포 2세이지만 전혀 한국어를 하지 못한다. (내가 만나 본 대부분 교포 2세는 당시 상황-차별-때문이었는지 아예 한국어를 안 배운 경우가 많았다) 그와는 반대로 마츠오카 상과 막내딸 사키 짱은 한국에 자주 오고, 한국어에도 열심이다. 막내딸은 교환 학생으로 서울의 한 대학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한 학기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어가 금세 유창해졌다.
귀국하던 해 여름, 나는 서울 방산시장 근처에서 모녀를 만나 함께 평양냉면을 먹었다. 사키 짱은 그때 먹었던 냉면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일본에 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고 했다. 해서 한국에 올 때마다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고.
대면 수업을 할 때는 수업이 끝나면 현금으로 레슨비를 받았다. 대부분 학생은 작고 예쁜 봉투에 담아 주었다.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면서 라인페이로 받다가 귀국하면서는 페이팔로 받고 있다. 페이팔 수수료가 비싸지만, 라인페이가 한국에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일본에서 사는 동안에는 엔고(円高)였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엔저(円安) 상태가 되더니 올라갈 기미가 안 보인다. 마츠오카 상은 본인 잘못이 아닌데도 엔화가 싸서 미안하다고 했다.
마츠오카 상과는 1주일에 한 번, 1 시간에서 1 시간 30분 정도 수업하고 있다. 적은 시간임에도 오래 하다 보니 한국어가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늘어갔다. 젊은 사람과는 배우는 속도가 다르지만, 40대 후반에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아주 잘하는 편에 속한다. 지금은 일본어를 거의 쓰지 않고도 아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만큼 능숙하다. 그래서 나는 문법적인 설명이 필요할 때나 어려운 단어 그리고 배경지식이 필요한 내용 등에서나 일본어로 설명한다.
교재는 마츠오카 상이 서점에 가서 직접 골라오는 것으로 한다. 1년에 평균 두세 권의 교재를 쓰고 있다. 햇수가 길어지니 마땅한 교재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글짓기>였다. 한국어로 곰곰이 생각하며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문장도 좀 더 온전해지고 헷갈리는 단어도 찾아볼 테니 여러모로 좋았다.
처음에는 짧게 일기나 여행기를 써 보라고 권했다.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여행기만도 여러 편으로 한국, 오키나와, 삿포로, 고베, 오사카 엑스포, 가고시마 등이 있다. 그것도 괜찮았지만 반복되다 보니 패턴이 생겼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열 줄 글쓰기>였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열 줄 정도 쓰는 것. 마츠오카 상은 쓰기를 부담스러워했지만, 최선을 다해 주었다. 문장이 나아지는가 싶더니 내용도 풍성해졌다. 이번 주에는 작약에 관한 이야기로 노트 한 장을 꽉꽉 채워 써서 놀랐다. 마트에서 하얀 작약 한 송이를 사 오면서 생각난 것들이었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일본에는 ‘서면 작약, 앉으면 모란, 걷는 모습은 백합’이라며 여성을 형용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서면 작약’은 서 있는 모습이 작약 같은 사람은 마음이 초조한 사람으로 작약이 들어간 한약을 먹으면 좋다고 한다. ‘앉으면 모란’은 앉은 모습이 모란 같이 아름답지만 오래 앉아 있으면 혈액 순환이 나빠지니 모란이 들어간 한약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걷는 모습은 백합’은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백합 같으면 정신이 안 좋은 것으로 백합이 들어간 한약을 먹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옮기면서 내가 조금 고쳤지만 재미있었다. 글을 칭찬하자 글감이 되어준 작약을 보여주었다. 진줏빛 꽃이 큼직하고 우아해서 한 송이만으로도 멋스러운 것이 마츠오카 상과 잘 어울렸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4년이 지난 지금 센다이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다음 열 줄 글에서 2025년 6월의 센다이를 엿볼 수 있으리라.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든 마츠오카 상과의 한국어 레슨,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마츠오카 상으로부터 ‘꾸준함의 힘’을 배워가는 중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꾸준함을 통해서 피워낼 꽃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