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적금을 들 때가 돌아왔다
무더위에 지쳤는지 거름이 부족했는지 대봉감나무에서 감이 다 떨어졌다. 해마다 여남은 개씩은 열었었는데 올해는 무성한 잎 아래 떨어진 감만 나뒹군다. 여러 그루지만 단감 역시 먹기 어려울 것 같다. 아빠와 엄마는 감 없는 감나무 그늘에 앉아 마늘을 쪼개고 있다. 통풍이 좋은 곳이라 조금은 시원할 만도 한데, 바람이 더운 습기를 먹어서인지 끈끈한 실자락처럼 몸에 엉겨 붙기만 할 뿐이다. 해서 긴 전선 꼬리를 달고 나온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식혔다.
지난 5월 말에 캐놓은 마늘은 말라서 돌멩이처럼 딱딱하다. 맨손으로 쪼개기는 힘들어서, 먼저 압축 에어건으로 칙-칙- 바람을 불어넣어, 마늘 중심부를 벌려 놓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두세 쪽씩으로 갈라져 쪼개기가 수월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듯이 딱 붙어있는 것도 있어서 완력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그 때문에 엄마의 검지 손톱에는 피멍이 들었다. 아빠가 에어건으로 마늘에 바람을 쏘아 벌려 놓으면, 엄마가 한쪽씩 쪼개면서 알이 큰 종자용과 종자로 쓸 수 없어 집에서 먹을 작은 것으로 나눠 놓는다. 나도 곁에서 손을 보탰다. 한나절을 쭈그리고 앉아 쪼개다 보면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지고, 손의 지문이 다 지워질 듯이 손가락 끝 안쪽이 얼얼하다. 엄마 손은 이미 반질반질했다.
벌써 몇 해째 마늘 심는 일로 부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올해만 심고 내년에는 안 할텨, 너무 힘들어서 못하겄어.”
라고 작년에도 말했다. 재작년에도 말했다. 재재작년에도 말했으나 그 말은 그저 힘들 때 저절로 나오는 신음에 지나지 않는다. 올해는 좀 일찍 시작했지만, 보통 9월이면 어김없이 마늘을 쪼개고 있고, 추석 즈음이면 심고, 이듬해 5월이면 수확하기를 반복할 뿐이다. 해가 갈수록 기력은 떨어져 힘에 부치는데도 빈 밭을 보면 뭔가를 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나 보다. 농부의 마음은 도통 나이를 먹지 않는다.
마늘은 겨울을 나는데, 가을에 심어 이듬해 봄에 거두기 때문에 약 8개월 정도가 걸리는 긴 농사다. 왜 마늘이냐고 하니, 그나마 손이 덜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늘의 민족답게 소비량이 많아서인지 해마다 널뛰기하는 작물 값 중에서도 나름 제값을 받는 편이라고도 하고.
수확을 마친 마늘밭을 깨끗이 갈아 놓은 후, 여름작물은 심지 않고 쉬게 한다. 빈 밭은 여름내 풀 세상이다. 파종 준비를 위해 풀밭을 갈아엎고는 영양제인 거름을 듬뿍 뿌려둔다. 쿰쿰한 퇴비 냄새가 동네 마실은 물론 집안까지 들어와 며칠을 함께 지낸다.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이랑 위에 구멍이 뚫린 검은 바닥 덮기 비닐을 씌워 놓으면 파종 준비는 얼추 끝이다. 오래전엔 비닐 대신 볏짚을 이불처럼 덮어주었다. 추위에 코만 빼꼼히 내놓은 듯, 짧게 올라온 푸른 싹이, 얇은 비닐 아래에서 겨울을 나는 것이 신통했다. 추위를 견뎌내기에 사람 몸에도 좋고, 맛도 저장성도 좋은 가 보다. 춥기만 할 뿐 눈이 내리지 않을 때면 엄마는 기도하듯 “눈 좀 와서, 눈이불 좀 덮어주면 좋겄네.”라고 웅얼거렸다.
노인만 남은 시골은 일꾼 구하기가 나날이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를 일찌감치 예약한 이웃도 있지만, 엄마는 나이는 있어도 숙련된 마을 사람에게 부탁해 놓았다고 한다. 일꾼을 구하지 못한 때엔 파종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온 가족이 달려들어 심었다. 하루 종일 밭에 앉아 심는 일이 버거워, 절로 나오는 구시렁을 마늘과 함께 밀어 넣을 때도 있었다.
바닥 덮는 비닐에는 12개의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 하나에 소독한 마늘 한쪽을 넣고 꾹 눌러 심는다. 좁은 고랑에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것도 힘들지만, 복병은 돌이다. 수십 년 동안 돌을 골라내고 또 골라내도 돌은 끊임없이 나온다. 돌을 꺼내야 마늘을 심을 수 있기에 번거로워도 돌이 있는지 살살 만져가며 확인해야 한다. 아차 하는 순간 돌에 밀려 마늘이 다시 나오기도 하고, 억지로 힘줘 누르다 돌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손가락이 부러질 듯 시큰거린다. 돌 때문에 시간도 더 걸린다.
해마다 심는 마늘은 부모에게 8개월짜리 적금을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쪽을 심으면 이자처럼 예닐곱 쪽에서 열 쪽으로 불어난다. 원금 같은 마늘을 심으며 싹이 잘 나기를, 겨울을 잘 나 주기를, 병 없이 알이 잘 들어주기를, 날씨가 적당하기를, 좋은 값에 팔 수 있기를 바란다. 마늘밭 김도 매 줘야 하고, 웃거름을 주고 때에 따라 약도 쳐야 하고, 마늘종도 뽑아야 한다. 수확할 땐 뾰족한 마늘창에 마늘통이 찍히지 않게 조심하며 캐야 하고, 마늘대를 잘라 마늘통 크기에 맞춰 부대에 담는 일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율 좋은 만기 적금을 탈, 그 봄날을 고대하는 심정을 손끝에 담아 꾹꾹 눌러 심는다.
수시로 “힘드니까 농사 좀 그만하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농사 은퇴를 종용했다. 아무리 얘기해도 건성으로 대답할 뿐 꿈쩍을 안 한다. 마늘을 쪼개며 걱정도 쪼개고, 염려도 쪼갠다. 소망은 종자로 넘기고, 자디잔 근심은 다져서 먹어 치울 거다. 외려 부모가 밭을 일굴 힘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일터이자 살아갈 이유를 주는 밭을 가진 농부의 사전에 은퇴란 없다. 하늘이 부르는 그날까지 흙냄새를 맡으며 살다가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유난히 길고 지독히 더웠던 여름과도 이별할 시간이 온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게 감잎을 건드리는 바람과 함께 마늘 적금을 들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