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안 May 29. 2022

(오만상)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특집] 미디어 속 INTP 파헤치기 (2) - 실화 기반 영화 편


신뢰성이 0에 수렴하는 글이므로 어디까지나 재미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미디어 속 INTP 파헤치기 (1) - 해외 드라마 편]을 감상하고 싶다면 : 천재인가 괴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지난 시간에 이어 2편으로 돌아왔다, 미디어 속 INTP 파헤치기! 오늘은 실존 인물의 삶을 그린 영화 두 편과 INTP 주인공들을 소개하려 한다. 실존 인물이니 만큼 INTP 유형인 분들이라면 앞선 1편보다 현실적으로 공감 가는 포인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앨런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렇다. ‘또’네딕트 컴버배치다. 변명하자면, 천재 역할을 자주 맡기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천재 캐릭터 중 압도적으로 그 수가 많은 INTP 유형의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이라는 것. ‘앨런 튜링(by 베네딕트 컴버배치)’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절대 뚫을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독일군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함으로써 영국군을 승리로 이끈 수학자이다. 잘못 읽은 게 아니다. 암호 해독 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다. 더군다나 그는 최초의 컴퓨터를 고안한 인물이다.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에 특화되어있는 INTP 유형의 냄새가 벌써부터 폴폴 풍겨오지 않는가?

   앨런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 인팁의 또 다른 특징으로, 정말이지 곧이곧대로 말하고 듣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앨런과 암호 해독팀의 동료, '존 캐언크로스(by 엘렌 리치)'의 대화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좌 : 앨런 / 우 : 존 (출처 : 네이버 영화)

    존 : 우리 점심 먹으러 갈 건데.

    앨런 : ...

    존 : 앨런?

    앨런 : 응.

    존 : 우리 점심 먹으러 갈 거라고.    

    앨런 : ...

    존 : 앨런?

    앨런 : 응?

    존 : 내 말 들려?

    앨런 : 그럼.

    존 : 우리 점심 먹으러... 이거 돌림노래 같군.

    앨런 : 뭐가?

    존 : 같이 점심 먹으러 가겠냐고 물었잖아.

    앨런 : 아니, 너희들이 점심 먹으러 간다고 했지.

    존 :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앨런 : 왜 그렇게 생각해?


    답답해서 환장할 지경인 이 대화, INTP 분들은 어느 정도 공감이 갈지도 모르겠다. 나라도 '잘 갔다 와'하고 대답할 것 같은데 나만 해도 상대방이 건네는 말에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걸 분명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 맞추어 대답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


    상대 : 뭐 필요한 건 없니?

    나 : (갖고 싶은 건 많지만 필요한 건 딱히) 없는데요.


    상대 :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나 : (기분은 나쁘지만 네가 '무슨 일'이라고 지칭할 만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닌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그냥 A를 물었으면 A를 대답하는 것이 옳고, B를 물었으면 B를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내 본능이 외칠뿐이다. 관용적인 표현을 모르는 바 아니다만, 언어의 정확성논리적 완결성을 중시하는 INTP 유형의 특징이 발현된 것 아닐까. 공감하는 인팁들은 고개를 들고 서로를 확인해주세요. 나만 이런 거 아니지?


에곤 쉴레,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
화가가 모델보다 예쁘면 반칙 (출처 : 네이버 영화)

    개봉 전부터 주인공 '에곤 쉴레(by 노아 자베드라)' 역을 맡은 배우의 꽃미모 때문에 소문이 자자했던 영화,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은 표현주의 사조의 대표적 화가, 쉴레의 짧은 일대기를 강렬하고도 깔끔하게 그려낸다. 그중 INTP 유형이라면 흠칫했을 만한 두 개의 장면을 골라보았다. 첫째는 스승인 '구스타프 클림트(by 코넬리우스 오보냐)'와 에곤이 나누는 대화.

(출처 : 네이버 영화)

    구스타프 : (에곤의 드로잉을 감탄스럽게 보며) ...자네 눈에 보이는 것이 내게도 보였으면 좋겠구먼.

    에곤 : 알아요.


    INTP 유형이 칭찬을 받으면, 그 반응의 양상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1) 예상치 못한 칭찬을 받았을 때 : 뚝딱대며 로봇처럼 어색하게 반응한다. (어.. 어, 아니, 고맙..? 아니...)  

2) 이미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강점을 칭찬받았을 때 : 나도 알아. 

    심히 건방져 보이지만, 굳이 나도 알고 너도 아는 것을 겸손이라는 무의미한 사회적 관습으로 포장하는 건 효율적이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 두 번째로 흥미를 끌었던 포인트는 바로 결혼에 대한 에곤 쉴레의 관점이다. 그는 오랜 연인이자 뮤즈인 '발리 노이질(by 발레리 파흐너)'에게 결혼을 선언한다.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이유인즉슨,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데, 가난한 모델인 발리는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므로, 부유한 가문의 여식인 '에디트 하름스(by 마리 융)'와 결혼해야겠다는 것. 그렇지만 결혼 이후에도 발리와 연인이자 화가-뮤즈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거 실화다) 발리는 울면서 화를 낸다. 당연하지 

명화 <죽음과 소녀>는 발리와의 이별을 암시하는 작품이라는 설이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F 유형의 분들이라면 분노로 이를 앙다물거나, 발리에게 이입해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렸을 법도 한 장면. 이제와 고백하건대, 난 에곤의 제안이 꽤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헌신적인 연인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 젊은 화가의 파탄난 인성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결혼을 관계의 완성이라는 의미보다는 사회적 계약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그 계약의 성립에 있어 감정적 동기보다는 합리적 이득, 혹은 효용을 중시하는 점이 (적어도 내게는) 영 말도 안 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앞서 이야기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앨런도 동료이자 친구인 '조안 클라크(by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비슷한 맥락의 제안을 건넨다. '난 (당신도 짐작하다시피 동성애자이지만) 당신이 좋고, 당신은 일을 계속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핑곗거리가 필요하니, 나와 결혼해달라'는 무드 없는 청혼을.

우리 제법 잘 어울리지 않나요 (출처 : 네이버 영화)

    에곤과 앨런의 사례를 놓고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INTP 유형에게 '일반적인' 관행이나 전통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의 규칙을 따른다. 논리와 합리성에 기반한 이 규칙은, 때로 무례할 정도로 전형적인 관례에 어긋나거나, 지나칠 만큼 냉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인정하자. INTP 유형의 캐릭터들,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은가? 지적이고 탐구심이 강하며 좋아하는 분야에 쏟는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들. 비록 사교적이거나 따뜻하지는 않아도, (좀 과하다는 게 문제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그 정도면 꽤나 인간적인 미덕을 갖춘 게 아닐까. 그러니 앞으로 영화나 소설, 드라마, 만화 등에서 혹여 INTP 유형으로 짐작되는 캐릭터를 발견한다면, 부디 애정을 갖고 너그러운 눈길로 바라봐주시길!   


언젠가 데이터가 더 쌓이면 3편으로 돌아올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천재인가 괴짜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