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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Jun 01. 2022

고어 초심자를 위한 매운맛 가위손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


*스포일러 주의! 영화 관람 후에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팀 버튼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뭐랄까 복불복 같은 일이다. 매니악한 소재와 분위기 때문인지, 호불호가 극심히 갈리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2008년에 개봉한 <스위니 토드 :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답게 유혈이 낭자하고, 식인에 대한 묘사까지 등장하는지라 더더욱 그 진입 장벽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대탈출>도 무서워하는 쫄보인 내가 별 무리 없이 봤으니, 공포 수위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 없을 듯?) 결론부터 말해서, 나는 이 영화 추천한다. 다만 강추는 아니다. 복불복으로 따지자면 까나리카노는 아니지만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아메리카노 정도의 느낌? 뭐, 프리미엄 원두를 써서 그런지 몰라도 향은 여전히 좋다.


내 심장의 색깔은 Black


    제목 그대로 '스위니 토드(by 조니 뎁)'는 잔혹한 복수를 꿈꾸는 이발사다. 본명은 '벤자민 바커'로,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를 탐내던 마을 판사에 의해 누명을 쓰고 15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 겨우 탈출해서 돌아와 보니 아내는 사망(나중에 살아있던 것으로 드러나지만), 쓰레기 판사 놈은 이번엔 토드의 딸을 노리고 있다. 이것 참 성인군자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 상황이다.

    뛰어난 이발사였던 스위니 토드는 '러벳 부인(by 헬레나 본햄 카터)'의 고기(라기보단 비계) 파이 가게 위층에 살며 날카로운 면도날을 이용해 '터핀 판사(by 앨런 릭먼)'를 향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러나 생뚱맞게도 첫 살인의 피해자는 토드의 정체를 알아차려 버린 경쟁 관계의(?) 이발사.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차에 러벳 부인이 묘안을 떠올린다. 그렇다. (인간) 고기를 고기 파이에 넣는 것이다.

    스위니 토드의 이발소가 성행할수록, 고기 파이를 위한 양질의 재료가 늘어나니 러벳 부인의 파이 가게도 성행! '윗놈에게 잡아먹히기만 했던' 아랫놈이 ‘윗놈 아랫놈 가리지 않고 잡아먹는' 블랙 코미디. 지배층의 횡포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한 피지배층이 구조의 전복을 꿈꾸는 대신 악인으로 전락하는 서사의 흐름. 이쯤에서 익숙한 이름 하나가 스멀스멀 떠오르지 않는가?

나 불렀어?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커> (평균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특권을 누리는 집단-백인 남성-의 일원이 사회의 보호에서 빗겨있는 비주류 취급받다 미쳐버리는 스토리로) 그 비현실성(?)에 대해 욕 좀 먹었다면, <스위니 토드>는 꽤나 역사적인 풍자극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빅토리아 시대에 실제로 여성이나 아동의 인권 따위는 저-기 땅에 가서 처박혀 있었다. 터핀 판사로 대변되는 지배 계급은 허위와 위선으로 무장한 거머리들로 그려지는데, 당시 산업 사회의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종용하면서도 극히 적은 양의 임금만을 지불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영 틀린 묘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피지배층 역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고아 소년 '토비(by 에드 샌더스)'에게 연민을 보이던, 왜 죄 없는 사람을 죽였냐고 토드를 추궁하던 러벳 부인은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자 가차 없이 그 처단에 동조한다. 스위니 토드 본인은 말할 것도 없다. 아내의 복수와는 무관한 신사들까지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연쇄 살인마가 되어버리니까.  

    (아내가 죽었다는) 거짓말이 들통나 토드에게 죽임 당하는 러벳 부인과, 미쳐버린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 손으로 죽인 뒤 자신의 면도날로 토비에게 살해당하는 스위니 토드의 비참한 결말에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라는 구실로 남들을 착취-마치 지배계급이 그들 자신에게 했듯이-하는 자들 그러한 타락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방치한 썩어빠진 사회 구조에 대한 팀 버튼의 비판적 시각을 읽어낼 수 있다. 토드의 딸 '조안나(by 제인 와이즈너)'가 자신을 구하겠다며 달려온 젊은 선원 '앤소니(by 제이미 캠벨 바우어)'에게 던지는 자조적인 물음은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통찰이다.


도망가면 우리 꿈이 전부 이뤄질까요? 악몽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팀 버튼 표 핏빛 잔혹동화


    이 잔혹동화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로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로테스크란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세계를 비사실적, 비자연적으로 표현하려는 예술 운동의 일환으로,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로테스크를 '잘 알고 있고 친숙해진 것에 대한 섬뜩한 느낌', 즉 언캐니(unheimlich)의 예술적 표현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언캐니 개념에 대한 언급은 다음 글에도 잠깐 등장하니 궁금하다면 클릭 : 완다 아니 닥스의 기묘한 모험) 팀 버튼은 이러한 그로테스크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감독 중 하나다. 감독 본인도 언급했다시피, 팀 버튼의 작품에서는 그로테스크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출처 : 네이버 영화 / 씨네21)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스위니 토드>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보다도 추리 소설의 창시자이자 공포 문학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의 향기가 짙게 풍겨온다. 학창 시절 한 번쯤 포의 유명한 단편 소설, [검은 고양이]를 숨죽이며 읽어 보지 않으셨는지? 포는 '고딕 호러'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음산하고 오래된 건물, 우중충한 날씨, 붉은 선혈, 비극적인 사랑의 광기, 죽음... 영화는 고딕 호러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른다. 고딕 호러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다음의 두 이름만 알면 당신도 고딕 호러 마스터다 : 드라큘라, 그리고 프랑켄슈타인. 거미줄이 가득하고, 박쥐가 날아다니고, 뾰족한 첨탑이 회색 안갯속에 잠겨 있고...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이미지가 바로 고딕 호러다.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고딕 호러 장르의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충실히 답습한다. 날카로운 면도날에 그인 스위니 토드의 목에서 콸콸 흐르는 피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린 부인의 눈과 입을 붉게 적시며, 마치 그녀가 피눈물을 흘리고 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피는 흐르고 흐르다 두 사람의 시체 주변으로 퍼져나가 새빨간 장미꽃처럼 피어난다.  

    이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미지에서, 케첩처럼 불투명한 다홍빛 피는 리얼리티를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되려 동화적인 환상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 그리고 잔혹동화답게, 조안나와 앤소니가 해피엔딩을 맞이했는지 어쨌는지, 토비가 살인마들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잊고 다시 잘 살아가는지 아니면 첫 살인의 맛을 보고 타락해 버렸는지 전혀 보여주지 않고 영화는 (갑작스럽게) 끝을 맺는다. 첫째는 초점화자인 스위니 토드의 사망으로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앞서 말했듯이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기 때문이리라.


리듬을 춰줘요


    자, 이렇게 구구절절 사설을 늘어놓은 주제에 어째서 강추가 아니냐고? 그건 뜬금없게도 이 영화가 뮤지컬이기 때문이다(...) 런던을 향해 항해하는 배 위에서 전개되는 첫 장면, 제이미 캠벨 바우어와 조니 뎁이 느닷없이 노래를 시작하는데 어찌나 당혹스럽던지.

    모름지기 성공적인 뮤지컬이란 자다가도 흥얼거릴 정도로 중독성 있는 대표곡이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테면 : <라라랜드>의 'City of Stars', <겨울왕국>의 'Let It Go',  <노트르담 드 파리>의 'Le Temps Des Cathedrales(대성당들의 시대)' 같은 곡들 말이다. <스위니 토드>의 경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어떤 넘버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듣는 와중에도 이게 뭔 노래야 싶다 왜 굳이 뮤지컬이어야만 했을까?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에서 잭 스켈링톤이 삐걱대는 몸으로 신나게 노래를 불러제꼈던 것을 생각하면 그건 아마도 감독의 개인 취향으로, 존중해 주는 수밖엔 없을 것 같다. (‘팀 버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어이없게도 본 영화는 사실 헨리 셀릭이라는 감독의 작품이다(!) 당시 <배트맨 2>의 촬영으로 바빴던 팀 버튼 감독이 원안자, 그리고 제작자로서 스톱 모션 전문가이자 디즈니 재직 시절의 친구인 셀릭에게 대신 연출을 맡긴 것. 연출은 직접 하지 않았다지만, 버튼 본인이 직접 록밴드의 보컬이었던 대니 앨프먼을 뮤지컬 작곡가로 섭외하기까지 했으니, 아무튼 그의 취향이 담뿍 묻어난 영화임은 틀림없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출처 :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팀 버튼의 팬이라면 기뻐할 만한 소식 두 가지를 전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는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9월 12일까지 열리는 '팀 버튼 특별전'이다. 고퀄리티 모형들과 아이디어 스케치, 초기 애니메이션, 캔버스 작업 등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니 놓치지 마시길. 나는 무척 즐겁게 관람했다. 두 번째는 유명 만화인 '아담스 패밀리'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웬즈데이>다. 아직 공개일은 미정이지만 <덤보> 이후 3년 만에 연출로 돌아오는 팀 버튼의 신작이라니, 미리미리 찜해두자고. 나도 손꼽아 기다릴 예정이다!


단 한 마디 난 팀 버튼이 엠마 스톤이랑 프로젝트 하나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 KTX 타고 가면서 봐도 팀 버튼이 좋아할 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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