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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Jul 03. 2022

무명의 사진가가 포착한 노스탤지어의 온도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출처 : goodreads)

    사울 레이터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희귀한 수입 서적을 파는 작은 잡화점에서였다. 갖가지 화집과 외국어로 된 잡지, 여행 에세이 사이에서 <In My Room>이라는 제목이 붙은 흑백 사진집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속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귀걸이를 끼우는 (혹은 빼는) 여인의 모습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 사진집은, 제목 그대로 사진가 자신의 방에 머물다 간 사람들의 내밀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대한 기록이었다. 단숨에 마음에 들어서 가격표를 보기 위해 책을 뒤집었는데, 아뿔싸, 아직 이 정도의 금액을 책에 쏟아부을 자신은 없었던지라 가판대 위에 얌전히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후,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 이름을 한 번 더 들을 수 있었다. ‘너 사울 레이터 알아? 그 사람 전시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더라. 네가 꼭 가봤으면 좋겠어.’ 뭐, 어쩔 수 없지. 이 정도면 운명이라 여기고 순응하는 수밖에.

    그렇게 해서 다녀온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전시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 그냥 좋다! 사실 1층의 흑백 사진 구획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다. 사진이 나쁘진 않은데, 대단한 임팩트가 있는 것도 아닌걸? 이게 전부라면 조금 실망스러운데. 

Debora

    1층에서 그나마 흥미로웠던 작업을 꼽자면 첫째는 여동생 데보라를 찍은 사진들이었다. 데보라의 장난기 넘치면서도 야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개성 강한 성격이 화면을 뚫고 나오는 게 보여서 재미있었다. 두 번째는 ‘스니펫(snippets)’. 주로 가까운 사람들을 찍은 사진을 명함 정도의 크기로 잘라 모아둔 작업물이었는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지갑 속에 넣어두고 언제나 가까운 곳에 지니기 위한 사진, 연인이나 가족 등 가장 소중한 이들을 담은 사진 같았달까.         

Snippets

    그러나 사울 레이터의 작품 세계는 색채를 입었을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2층의 컬러 사진들-레이터는 가장 초기의 컬러 사진 작업을 남긴 작가 중 하나이다-은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 단연코 구도 혹은 시점이다. 레이터의 컬러 작품들은 회화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사진(또는 카메라)만의 영역에 있음이 틀림없다. 레이터는 의도적으로 더 가까운 대상의 초점을 뭉개버리고, 작품의 주인공이 눈에 띄지 않도록 뒤쪽(말 그대로 저 멀리에, 혹은 창문, 거울 등 투명한 막 너머에)으로 감춰버린다. 회화라면 그렇게 할 이유도 가능성도 없지만, 사진은 가능하다. 지나가는 시선, 그 무의식적인 찰나를 포획하려는 거니까. 레이터의 사진과 비슷한 정동을 포착할 수 있는 매체는 오로지 영화뿐일 것 같다.   

맨 오른쪽 작품은 영화 <캐롤>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만 같다

    실제로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캐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 본인이 이 영화가 레이터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 만큼, 영화는 레이터의 작품 속 고요의 순간, 정적인 노스탤지어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사울 레이터의 따스한 색감과 모호한 초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장면 속에는 어쩐지 애수 어린 추억의 희미한 정동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독특한 그만의 색채는 상업 사진에서도 일관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1958년, 현재까지도 건재한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신임 아트 디렉터 헨리 울프의 제안으로 사울 레이터는 패션 사진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패션 사진 역시 ‘모호함’이라는 기존의 문법을 따른다. 이러한 기법은 일반적인 패션 사진과는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모델이나 의상 자체의 아름다움에 앞서 의상을 입은 모델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그 순간의 미묘한 분위기를 포착하려 했던 레이터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울 레이터의 작품 세계에서 또 하나의 큰 축을 담당하는 것은 연인 솜스 밴트리의 존재이다. 솜스 밴트리는 화가이자 패션모델로, 첫 만남 이후 수십 년간 단골 피사체로 레이터의 작품 속에 등장한다. 밴트리를 찍은 작품 모두가 사랑스럽고도 비밀스러운 시선을 견지하고 있지만,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다음의 작품이다.         

Soames Bantry

    사진에서 밴트리는 식당 혹은 카페의 야외석으로 보이는 곳에 앉아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깃을 세운 코트, 치켜떠서 약간 반항적으로 보이는 두 눈. 참으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이 여인을 보고 내 머릿속에는 즉시 두 개의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하나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고, 다른 하나는 마네의 <올랭피아>다. 

좌 : 비너스의 탄생 / 우 : 올랭피아 (출처 : Art In Context)

    <비너스의 탄생>의 주인공은 ‘정숙한 비너스’다. 그녀는 아름답고 고결한 존재로, 이상적으로 그려진 자신의 나체를 부끄러워하며 가린다. 한편 <올랭피아>의 주인공은 알몸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당당하게 관람자를 응시-바로 이 응시 때문에 이 작품은 어마어마한 문제작이 되었다-한다. 즉 올랭피아는 남성들의 관음적 시선 하에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다.

    레이터의 밴트리는 올랭피아처럼 관람자를 ‘응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너스의 ‘응시할 수 없음’에 의해 관음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되려 그것은 ‘응시하지 않음’에 가깝다. 밴트리는 렌즈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고, 렌즈 너머의 관람자도 그녀의 인식을 인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밴트리는 렌즈를 바라보지 않기로 ‘선택’한다. 코앞에 자신을 피사체로 삼는 시선이 있음에도 그저 자신의 상념에 집중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이 대담한 무시는 곧 작가/관람자와 모델의 위치를 전복시킨다. 우리(관람자)는 사진가와 마찬가지로, 밴트리의 몽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죽이게 된다. 더불어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사진 앞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흑백에서 컬러까지, 인물에서 풍경까지 가리지 않고 찍은 사울 레이터는 물감에까지 손을 뻗쳐 ‘페인티드 누드’라는 흥미로운 일련의 작품을 전개해나갔다. 사진과 회화의 적절한 결합이라고 할 만한 이 작업물들은 레이터의 끊이지 않는 탐구 정신과 예술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수십 년간 무명이었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헌신적이고 진정성 있는 예술가였다. 따스하게 빛바랜 추억의 온도, 습도, 향기와 밀도까지 충실하게 구현해낸 사울 레이터의 작품들은 앞으로도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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