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도시의 말 (2)

by 다안

“Sugar?”

“Oui, merci.”

금방 짜증을 내놓고 벤은 팔을 뻗어 내 앞에 각설탕이 든 작은 통을 내려놓는다. 나는 영어엔 젬병이고, 벤은 불어를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공유하는 모국어를 사용할 때가 아니면 우린 서로의 언어를 눈치로 대충 때려 맞히는 셈이었다.

내가 알기로 벤의 부모님은 상당한 자산가였다. 부유한 유아기를 보낸 그가 타국에 정착했다고 갑자기 노동계급의 삶을 살았을 리 없고. 영국 상류층은 다 불어를 배운다던데, 아닌가? That’s the point. 이민자 1.5세, 그것도 까만 머리 동양인은 런던에서 영원한 이방인이야.

사실 벤의 머리는 꿀과 낙엽 같은 색이었다. 하긴, 내 파리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라고 다를 것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영어를 열 마디도 모르는 나조차 익히 들어본 명문대 출신인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벤은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다. 가르쳤었다, 고 하는 게 옳겠다.

사람들을 잔뜩 앉혀놓고 그 앞에서 떠드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벤은 말했다. 채광도 안 좋은 랩에 종일 처박혀 있는 건 사양이야. 똑같은 얼굴들만 보고 또 보는 것도 지겹잖아.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은 아니다만, 내가 보기에도 그는 연구직보다는 교직에 더 어울렸다. 애들이 반길 상냥한 타입의 선생이지. 온전한 그만의 방이 주어진다는 점도.

지금 벤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연구실을 빌리는 대가로 시간제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양자 물리학이야?”

“가장 작은 입자의 운동은 예측 불가능해.”

“그래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단순한 사실은 우리 삶이 결정론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일한 등대지. 생명체에게, 특히 인간에게는 이미 여러 번 반복되어 왔기에 완벽하게 예견 가능한 미래를 거스르는 자유의지가 있고, 따라서 절대불변의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희망인 거야.”

이과 과목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대체 왜 물리학계의 발견이 철학적 주장의 근거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Une histoire étrange.”

난 눈을 굴리며 가볍게 대답했다.

“Don’t speak in fucking French.”

경고인지 비난인지 모호한 문장과 함께 잔을 소서 위에 거의 내던진 벤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손등에 살짝 커피가 흐른 자국이 보였다. 달그락, 예고 없는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티스푼은 당황해 숨을 들이켰다. 하얀 천에 스며든 누리끼리한 얼룩에 벤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I hate un-understandable.”

세탁 후에도 장담할 수 없을, 잃어버린 손수건의 청결함을 내 책임으로 돌리려는 셈일까. 변덕스럽긴. 나는 두 손을 들어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불가항력이었다.

벤은 종종 불어가 입안에 구슬을 머금고 구석구석 굴리는 소리 같다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게 아무 말이나 해 보라 졸라댔다. 그러다가도 잠이 덜 깼을 때 전화를 걸면, 네가 쓰는 언어는 너무 빨라서 알아들을 수도 없거니와 잔뜩 과장된 발음이 천박하기 짝이 없다며 있는 대로 신경질을 냈다.


언젠가, 눈이 미친 듯이 내리던 겨울이었지, 지독한 감기에 시달리느라 축 늘어진 몸으로 그가 내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린다. 그의 가족과 친한 지인은 모두 런던에 있으므로 나는 기꺼이 문을 연다. 열이 펄펄 끓는데도 부득부득 고집을 피우는 벤 덕에, 결국 잠깐만 담가도 손이 빨갛게 물드는 온도의 물을 욕조 가득 채워줘야만 한다. 앙다문 셔츠 단추에 거듭 헛손질하며 그는 쉰 소리로 감탄한다. 와- 이렇게 앙증맞은 집에 욕조가 다 있네.

무례한 발언이야, 있는 집 도련님 아니랄까 봐. 그렇게 대꾸하지만, 일반적인 원룸엔 제대로 된 샤워 부스 들어갈 자리조차 마땅치 않다는 걸 생각하면 욕실의 비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집이기는 하다. 몇 번 엇박자로 첨벙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균형을 잃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게 그런 상태로 무슨 목욕을 하겠다고.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래. 가난한 세입자라는 증거지. 그렇지만 일본 호텔 객실처럼 작고 노리끼리한 욕조는 내가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달아오른 피부로 무심히 물에 잠긴 벤이 오늘따라 유독 작아 보인다. 그야 원래도 키가 크지는 않지만. 아파서 그런가, 덜 자란 아이 같다.

그는 흰 증기를 뿜어대며 내 욕실을 뿌옇게 덧칠한다. 힘없이 세운 무릎, 뒤로 젖혀 간혹 기우뚱대는 고개와 욕조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진 마른 팔. 미약한 물장난과 매캐한 담배 향이 가득 메우고, 몽롱한 박자로 흥얼대듯 읊조리는 낮은 목소리. What makes you so sad? I think you’re the saddest girl I ever met.

나는 파리를 쫓듯 인공 안개를 향해 손을 휘두르며 환풍기 전원을 올린다. 우우웅 하는 백색 소음을 배경 삼아 이번에는 어설프게 간드러지는 음성이 독백한다. You’re the first man that ever said that. I’m usually told how happy I am.

기침이 터져 나와서 말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방금 그거, 누구를 흉내 낸 거야? 스읍, 후우. 담배를 마시는 건지, 열을 식히는 건지.

<The Misfits>라는 제목, 들어봤어? 반쯤 눈을 감은 얄미운 얼굴을 향해 괜히 물방울을 튀겨본다. 아니, 영화인가.

나는 욕조에 조심스레 걸터앉아, 입에 문 게 막대사탕이라도 되는 양 대책 없이 무구한 표정을 한 이마에 손을 얹는다. 부르튼 그의 표면은 욕실의 열기까지 한껏 머금어 당장 실려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뜨거워져 있다. 응급실에 데려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 혼자 들쳐메고 갈 수 있을까. 운전면허도 없는데. 어찌어찌 도착하더라도, 환자를 이따위로 돌보다니 제정신이냐고 욕이나 먹겠지.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자니 양심에 찔리는데. 술 취한 사람의 것과 비슷한, 연결되지 않는 헛말들이 주르륵 늘어진다.

몬티한테는 불운만 찾아왔대. 난 이 장면이 제일 아름답더라. 로즐린은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어. 공허, 허공. 거울에 비춘 것 같은 단어다. She is such a beauty. 아주 섬세한 방식으로 말이야. A man, gazing at her eyes. 다른 남자들은 전부 로즐린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구김 없이 사랑스러운지, 그런 이야기만 해. 예쁜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꼭 행복한 건 아닌데, 그렇지? She just wanted someone to love her sincerely. 색채가, 색채랄 것도 없지만. 슬프지 않아? 어떤 경쾌한 충격도 없이 빛과 어둠의 정량적인 수치만으로 표현되어야 하는 게.



국내에서는 <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1961년의 이 흑백 영화는 세기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이었다. 마릴린은 벤이 가장 좋아하는 무비스타였는데,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탐스러운 금발 때문도 아니고,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하얀 원피스 자락 때문도 아니고, 입가의 앙큼한 점이나 유혹적인 눈매 때문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애교스러운 미소와 목소리 뒤로 감춘 내밀한 슬픔 때문이었다.

“파란색인지 검은색인지 구분이 안 되는 눈동자야. 짙은 심해처럼.”

스프링이 영 신통치 않은 매트리스 위에 같이 엎드려 15인치 노트북 화면으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을 보던 날에는, 벤이 이 백치 미녀에게 갖는 연민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정작 벤은 그저 그런 졸작이라며 지루해했지만.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로만 알고 있었는데, 미셸 윌리엄스가 연기한 마릴린 먼로는 티 없는 어린 시절을 그대로 간직한 채 키만 자란 소녀였다. 천사같이 곱슬대는 금발의 아가씨는 감수성 풍부한 아이처럼, 사랑스러운 만큼 변덕을 부렸고, 무르고 예민했고, 무엇보다 외로워 보였다. 누구도 달래줄 수 없는 가장 개인적인 고통이었다.


유명한 극작가인 남편이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읽고 먼로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벤은 나직하게 말한다. 저 남편, 아서 밀러. 저 사람이 <The Misfits>를 쓴 사람이야. 이상하지. 어떤 사람을 여자로서 그렇게 숭배하는 동시에 인간으로서는 경멸할 수 있다는 게.

야한 꽃분홍색 이브닝드레스에 가려 그저 싸구려 욕망의 대상이 될 뿐인 여자. 벤은 그녀의 순수한 얼굴과 열망을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한편 그녀를 잔인하게 무너뜨린 밀러라는 작자조차 사랑해 본 누구나가 이해할 거라며 관대하게 용서했다.

Love is ahead reason. 사랑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해서 사랑이 멈춰지는 건 아니잖아. 이성과 이유를 앞서는 게 사랑이니까. 글쎄, 나는 그 발언에 회의적이다. 그래. 모두가 그렇게 믿으니까 사랑이 위대하다는 명제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남았겠지. 사견으로는, 한심하다는 쪽에 한 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벤이 교묘하게 정정한다. 네 말대로, 사랑은 가까이서 보면 한심하지만 멀리서 보면 위대해.

그의 의중은 알겠으나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합리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화 속 먼로가 그랬듯이) 결국에는 산산조각나 어떤 유의미한 성과도 내지 못할 게 뻔한 감정에 휩쓸리는 건 이율배반적이며 어리석다. 득을 보는 만큼 실이 있고, 아주 높은 확률로 개 같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일을 뭣 하러 굳이 시작한다는 말인가? 마릴린 먼로가 불행한 말년을 보내고 요절한 데에는 그놈의 사랑, 사랑, 사랑이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나는 그녀가, 그리고 벤이, 진열되었다가 소유되고, 이리저리 상처 입어 버려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했다.


How do you just live? 펄펄 끓는 벤이 태평하게 대사를 외는 동안 욕조에서 피어오른 담배 연기는 환풍구를 타고 아파트 구석구석을 배회한다. 윗집은 대번에 경비실을 끼고 날 비난하고, 난 누런 때가 탄 구식 수화기 너머로 경비 아저씨에게 입에 붙지 않는 사과를 건넨다. 벤은 미안한 기색도 없다. 그는 수치도 책임도 모르니까.

Tout de même, 나는 그를 좋아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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