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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매거진 제3호] 축구의 미래를 보다


# 서문


우리는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현재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미래의 혁신을 위한 시도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라는 스포츠에도 미래를 내다보는 듯한 혁신의 물결이 흔히 일어난다.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변화, 트렌드를 바꿔 놓은 전술, 독특한 선수의 등장과 같은 혁신이 축구의 미래를 열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풋볼매거진 제3호에서는 그간 축구의 미래를 바꿔 놨던 또는 바꿔 놓을 혁신적인 바람에 대해 서술했다. 산업, 전술, 선수, 감독 등 다양한 시각에서 축구의 미래를 펼쳐 놓았다.


그대가 상상하는 축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가? 풋볼매거진과 함께 축구의 미래를 그려보자. 풋볼매거진이 그대의 바탕이 될 것이다.

# 정채건 Editer '슈퍼리그로 반추해 보는 축구 산업의 미래'



레알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을 주축으로 시작된 슈퍼리그 프로젝트는 현재 와해되었다 볼 수 있을 만큼 그 힘을 잃었다. 시작부터 수많은 반발에 부딪힌 슈퍼리그와 일련의 과정들은 단지 빅클럽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시작한 촌극으로 해석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태는 조금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축구는 본래 로컬 팬 문화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연고로 하는 팀의 팬이 된다. 작게는 집안이, 크게는 지역 커뮤니티 전체가 공유하는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럽 축구에서 연고의 의미는 깊다. 때문에 유럽 축구 산업 또한 매치데이 수입과 내수 중계권 수입 등으로 수입을 유지해왔다.


축구의 산업 구조는 92년 프리미어리그의 출범을 기점으로 큰 분기점을 맞는다. 클럽들은 아시아 마케팅 등을 통해 더 많은 국가에서 소비할 수 있는 오락거리로의 변모를 꾀했다. 낮 경기과 프리시즌 투어 등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는데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유럽 축구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주었다. 당연하게도 돈이 모임과 함께 세계 축구의 흐름을 유럽이 유지하는 데에도 이 비즈니스 모델은 한몫을 톡톡히 했다. 천문학적인 중계권료, 선수들의 몸값, 외부의 투자까지 축구 시장의 상승세는 지난 20여 년간 놀랍도록 공격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팬더믹은 축구산업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왔다.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매치데이 수익이 발생하지 않게 되며 모든 클럽이 수익의 타격을 받게 되었다.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외연의 확장을 추구했던 축구 산업이지만 경기를 통한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경기가 오랜 기간 펼쳐지지 않고 그마저도 무관중으로 치러야 하는 등 악재가 겹치며 팀들의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다. 특히나 자본이 크지 않은 중소 클럽들의 경우에는 그 타격이 더욱 컸다.


이야기의 시작으로 돌아가자면 축구는 본래 지역적인 기반이 깊은 스포츠다. 하지만 축구를 즐기는 세대가 이어지지 않는 현상 등이 겹치며 지역기반의 축구 문화는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아스날을 좋아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역적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 빅클럽들의 경우 매치데이 팬들의 상당 부분이 관광을 통해 온 다른 나라의 팬들임이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슈퍼리그의 탄생을 야기했다는 시선이 존재한다. 재정적 위기를 겪으며 팀들은 관중이 없는 상태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고, 지구 반대편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축구 경기가 가진 오락성을 최대한으로 높일 필요가 있을 테니 말이다.


슈퍼리그의 탄생을 이렇게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많은 오류가 수반된다. 다만 축구 산업이 예전만큼의 성장세를 보이지 못할뿐더러, 코로나가 악재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사실이다. 2021년 현재 어쩌면 축구는 다분히 지루한 오락거리에 속할 수도 있다. 지역이 기반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응원하는 팀이 언제든 강등될 수 있는 승강제로 대변되는 피라미드식 리그 운영은 지구 반대편 팬들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힘들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축구를 즐겼던 우리야 익숙할지 몰라도.


코로나 이후 축구에는 다양한 방식의 변화들이 시도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수 존재한다. 축구를 15분씩 4쿼터로 나눠 진행하는 게 방법이 될 수도 있고, MLS에서 시도된 하프라인 패널티킥이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말이다. 이런 논의들은 단순히 축구의 재미뿐만 아니라 산업 자체에 더 많은 돈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제안될 것이다. 야구의 9회가, 농구의 4 쿼터가 광고 삽입에 더욱 유용했던 것처럼.


새롭게 등장하는 e-스포츠의 성장 속도와 다국적 팬들 때문에 희미해지는 지역 연고성이 축구 산업의 미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모르겠지만 축구가 존재하는 한 밤 잠을 설칠 우리들은 빠르게 그것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 조재희 Editer 'King KENNY'



리버풀 팬이라면 PL을 즐겨보는 팬이라면 ‘케니 달글리쉬’라는 이름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번 주제에서는 리버풀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웅 달글리쉬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977년 팀의 간판 스타인 케빈 키건이 독일로 떠나자, 그를 대체하기 위해 밥 페이즐리 감독은 당시 축구계 최고의 이적료로 셀틱의 달글리시를 영입하였다. 막대한 이적료와 전임자의 그늘이 그를 압박할 것처럼 보였으나, 데뷔시즌부터 31골을 기록하며 단숨에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스타 선수로 발돋음했다. 이후 1983년 발롱도르 2위를 기록하였고 1985년부터는 선수 겸 감독으로서 활약하며 리그 우승 8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를 기록, 붉은 제국의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등극하였다. 이처럼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지닌 달글리시는 경기장 밖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1985년 5월 29일 당대 성행하던 훌리거니즘이 빚은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헤이젤 참사’이다. 당시 일부 팬들의 폭력성과 경찰 당국의 미흡한 통제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는 축구계 뿐만 아니라 정치계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달글리쉬는 당시 큰 충격을 받은 조 페이건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직을 수행하였고 해당 시즌 더블을 기록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며 팬들을 위로하였다.



앞서 발생한 ‘헤이젤 참사’로 인해 친구와 가족을 잃은 팬들이 마음을 추스릴 때쯤 다시 한 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사고인 ‘힐스보로 참사’가 일어났다.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FA컵 준결승 경기서 좁은 펜스안에 수많은 리버풀 팬들이 몰려 들었고 이로 인해 96명이 질식사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팬들 스스로의 잘못으로 발생한 사고사로 규정하였고 분노한 유가족들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27년간 법정 공방을 벌인 끝에 경찰 측의 거짓과 은폐가 드러났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달글리쉬는 매일 같이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슬픔을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진심 어린 위로를 전했고 구단과 팬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또한 달글리쉬는 리버풀 지역 주민들의 암 치료를 돕기 위한 자선 사업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는데 달글리시 제단을 세워 지금껏 천만 파운드가 넘는 금액을 모금하였다. 위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공식적인 기사 작위를 수여받아 ‘달글리쉬 경’으로 임명되었다.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달글리쉬는 리버풀이 이뤄내고자 했던 클럽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장 다방면에서 구현해낸 인물이다. 과거 그가 이루었던 수많은 업적과 팬들을 향한 사랑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클럽의 전통과 역사가 되었고 리버풀이라는 클럽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백발의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수많은 리버풀 팬들과 함께 오늘을 걷고 있다.



You’ll never walk alone.

# 풋볼루션 Editer '아라고 사키의 Sacchism'


1960년대를 기점으로 현대의 백3, 백4 시스템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세 명의 감독이 있다. 빗장 수비로 잘 알려진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카테나치오에서 백3 시스템이 확립되었다면 70년대에는 백 3시스템에 바탕을 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앞세운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토탈 풋볼이 등장했다. 하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을 사용하거나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움직여야 했기에 백 3의 핵심 포지션 스위퍼는 더는 필요 없게 됐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4명의 수비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 현대 백4 시스템의 초석이 됐다.


다만, 토탈 풋볼이 추구하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위해선 엄청난 체력과 전술적 이해도가 필요해 뛰어난 축구 지능을 가진 선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그런데도 수비수가 공격에 나서거나 공격수가 수비에 참여함으로써 포지션의 경계를 허물고 공을 중심으로 강한 압박을 통해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 축구를 펼친 토탈 풋볼에 대해 꾸준히 연구하며 자기만의 전술로 해석한 감독이 있었다. 그는 바로 현대 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고 사키 감독이다.


사키 감독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토탈 풋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경기장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을 활용했다. 즉, 포지션 중심으로 지역을 나눠 선수들 간에 좁은 간격을 유지했고, 라인을 높이 끌어올려 상대 진영에서 강한 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후 빠른 역습으로 공격을 마무리 짓는 것에 중점을 둔 압박 축구를 만들었다. 이는 결국 밀란 제네레이션을 이끌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후 사키 감독의 압박 축구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현대에 들어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선수들은 간격과 대형을 유지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이행하고, 자신의 지역에 들어오면 압박을 펼쳐 상대가 쉽사리 공격하지 못하게 하거나 공을 뺏어 빠른 역습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다.


또한, 강한 압박을 수행하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 선수비 후역습을 기조로 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두 줄 수비 등 압박 축구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색을 입히고 변형해 축구계에 파급력을 일으킨 명장도 등장했다. 물론, 다소 아쉬운 것은 현대의 전술 대부분은 토탈 풋볼을 기반으로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며 이에 대한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모든 전술에 정답은 없지만, 현대 축구의 모토인 압박과 주도권 축구를 완벽히 파훼하는 전술이 등장한다면 축구계에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 이현우 Editer '뉴노멀 시대의 축구,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 4월 19일. 축구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의 강팀들이 새로운 리그인 ‘유러피언 슈퍼리그’를 창설하겠다는 것. 이에 팬과 선수들 그리고 정부까지 ‘그들만의 리그’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우자 참여 의사를 밝힌 대다수 팀들의 탈퇴로 일단락되긴 했으나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축구계는 변화의 기로 앞에 서있다.


이에 팬과 선수들 그리고 정부까지 ‘그들만의 리그’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우자 참여 의사를 밝힌 대다수 팀들의 탈퇴로 슈퍼리그 이슈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축구계에 슈퍼리그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슈퍼리그의 창설을 주도한 레알 마드리드의 플로렌티노 페레즈 회장은 슈퍼리그 창설 명분을 내세우며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축구에 관심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일리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세계적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앤드컴퍼니’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젊을수록 시청하는 경기의 수와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작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시대는 관심을 가질 다른 엔터테인먼트가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렇다 보니 어떤 즐거운 일이라 하더라도 장시간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관심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K리그는 어떠할까? K리그의 오랜 고민거리는 ‘팬’이다. K리그의 모든 구단들은 기업 홍보나 사회 공헌을 목적으로 하는 모기업과 지자체의 지원금에 의존하여 매 시즌을 보내고 있는, 재정 자립도가 매우 낮은 상황이다. 외부에 의존하는 환경을 바꾸고 자생력을 높이려면 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가고 이것이 지속되면 미디어와 기업이 관심을 갖게 되어 새로운 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 다만 현재 K리그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사이클을 돌릴 수 있는 원동력인 팬이 부족하다.


다수의 축구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K리그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승리지상주의 경영 구조 탈피와 팬들을 경기장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지난 몇 년 동안 지속해서 내고 있다. 프로축구연맹도 변화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는데, 방향성이 정말 ‘방향’으로만 남아 있다. 실제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현재 K리그의 상황이다.


구매력이 높은 MZ세대의 영향력이 커지며 대다수의 기업들이 그들을 타겟으로 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넥스트 노멀이 기다리고 있고 MZ세대를 붙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지금, K리그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2031 K리그’의 재정 자립도는 어떻게 될까?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K리그가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변화의 흐름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 서보원 Editer '첼시, 아카데미 왕조를 꿈꾸다'



팀 역사상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소방수가 해냈다. 토마스 투헬은 파리 생제르맹에서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무덤, 첼시에서는 사건사고 없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게 말했다. "앞으로 첼시 왕조를 건국하고 싶다." 라고.


대단한 업적을 세웠음에도 미래를 바라본 것이다. 투헬은 입버릇처럼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는 늘 벤치마킹의 대상이다"라고 말했는데 첼시를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의도가 묻어난다. 그의 야심은 엘링 홀란과 같은 천문학적인 몸값의 선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럼에도 첼시는 자생적인 건국 과정을 밟고자 한다. 앞으로는 황금세대 아카데미를 제대로 활용할 심상이다. 이는 로만이 비자 문제로 영국에 입국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해결책이 된 방법이다. 정치 문제로 인해 러시아 구단주의 출자 등의 방법이 까다로워졌고 FFP 등의 규제가 자금줄을 죄이면서 소위 "빅 사이닝"보다 유망주 발굴 및 육성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드레아스 크리스텐센은 구단이 생각한 "미래"의 초상이었다. 소위 "뺑뺑이 임대"로 인해 불만스러웠던 케빈 더브라위너와 달리 실질적인 성과를 낳은 유일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유일무이하지 않다. 프랭크 램파드 체제에서 많은 아카데미 수료생들이 1군에 진입했고 7명의 유스가 빅 이어와 함께했다. 메이슨 마운트는 2년 만에 핵심 선수가 되었고 이미 1군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빌리 길모어, 티노 안조린뿐만 아니라 코너 갤러거, 발렌티노 리브라멘토 등 1군 데뷔를 목전에 둔 선수들도 대거 포진해 있다.


그야말로 찬란한 미래다. 투헬이 램파드를 두고 "팀의 유산을 더 찬란하게 만들었다"라고 평가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투헬의 야심 덕분에 첼시는 탄탄한 자본력과 구단 운용 시스템, 훌륭한 아카데미를 갖추고 있는 뮌헨, 맨시티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 "메이드 인 첼시"로 UCL 우승까지 일궈낸 첼시의 다음 단계이자 마지막 단추는 리그 제패를 위한 첼시 아카데미 왕조다.

# 오성윤 Editer '미래를 바라본 규제, 결과는 성공'


바야흐로 1992년, K리그에 사기캐, 괴물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사리체프. 훗날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하여 일화 천마(현 성남FC)와 안양LG(현 FC서울)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타지키스탄 국가대표 출신의 골키퍼다. 일화 천마의 신의손 파워는 엄청났다. 리그 최다 실점팀이던 일화 천마는 신의손을 영입하자마자 리그 최소 실점 팀으로 변모했고, 그의 경기당 실점률은 소수점 이하였다.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기인한 완벽한 변신을 지켜본 K리그의 모든 팀들은 외국인 골키퍼를 사들이는데 혈안이 됐다. 이름하여 외국인 골키퍼 붐이 일어난 것이다. 영입된 외국인 골키퍼들은 팀의 골문을 단단히 틀어막으며 기대에 부응했지만, 이로 인해 국내파 골키퍼들은 설자리를 잃었다. 협회는 처음엔 이러한 흐름을 그리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겼다. 그러나 문제의 파급력이 점점 커지고, 대표팀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자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규정을 내놓았다.


바로 외국인 골키퍼 금지 규정이다. 1996년 K리그 전경기의 2/3만, 1997년에는 전경기의 1/2만 외국인 골키퍼 출장 가능으로 규정을 강화했다. 더 나이가 1999년 외국인 골키퍼 출전 금지가 전격 시행되면서 신의손이라는 이름으로 귀화한 외국인 골키퍼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자리를 잃었던 국내파 골키퍼들이 이를 대신했다. 외국인 골키퍼 금지 규정으로 한국인 골키퍼가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고, 덩달아 개개인의 수준도 상승했다. 대표팀은 더이상 골키퍼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됐고, 대표팀 수준의 기량을 가진 키퍼들이 수두룩해져 감독에게 행복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지금도 이 규정은 변질되거나 퇴색되지 않고 원래의 취지에 맞게 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J리그의 정황을 살펴보았을 때 외국인 골키퍼 금지 규정을 강화 단계를 낮추고 국내 골키퍼들과 외국인 골키퍼의 경쟁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와서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두 입장 모두 틀리지 않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성공에 무척 가깝고, 우리는 20여년 전 협회가 내린 결정에 믿음을 보내야 한다.

# 임동근 Editer 'FSG가 꿈꾸는 리버풀의 미래'


리버풀은 이번 시즌 클롭 감독 부임 이후 가장 힘든 시즌을 보냈다. 36R 웨스트브롬과의경기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알리송의 역전골과 37R, 38R 연승에 힘입어 3위로 마감하긴 했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해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리버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인 반 다이크가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시즌 아웃을 당했고 나머지 주전 센터백인 조엘 마팁과 조 고메즈마저 시즌 아웃을 당하며 힘든 시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리버풀의 수비진 공백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시즌 개막 전부터 팬들은 리버풀의 얇은 수비진 뎁스를 걱정했다. 반 다이크라는 세계 최고 센터백과 PL에서 탑급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마팁, 출전할 때마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는 고메즈가 있었지만 마팁은 잘한다 싶으면 곧바로 부상을 당하는 ‘유리몸’ 선수였고 센터백 4옵션이었던 로브렌이 제니트로 떠났기 때문에 반 다이크와 고메즈 둘 중의 한 선수라도 부상을 당할 경우 주전으로 기용할 수 있는 센터백이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리버풀 팬들은 센터백 영입을 원했지만 FSG의 태도는 완고했고 결국 센터백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미드필더인 파비뉴와 헨더슨 조합으로 시즌을 치러야 했다.


주전 센터백의 공백은 굉장히 컸고 리버풀은 창단 이후 최초로 홈 6연패에 빠지며 8위까지 추락했다. 사실상 FSG의 ‘0입’이 초래한 상황이었기에 이들은 팬들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17-18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8/19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19/20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한 리버풀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입장에선 FSG가 돈을 쓰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FSG는 왜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FSG는 다른 구단주들과 달리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본업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본인들이 갖고 나머지를 구단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리버풀을 운영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타격을 받았고 FSG 또한 수익에 큰 악영향을 받은 상황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 없던 것이다. FSG는 리버풀을 자생 가능한 구단을 만들기 위한 목표를 갖고 있어 맨시티처럼 팬들이 원하는 만큼의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FSG의 계획은 팬들에게는 달갑지 않게 느껴진다. 물론 구단이 자생하면서 성적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FSG는 리버풀이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리버풀의 자본적인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구단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팀의 성적을 바라는 팬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번 시즌은 클롭 감독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지만 과연 다음 시즌에도 FSG가 구단 이익과 성적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이경민 Editer '티키타카에서 고통의 중심으로'


전력을 유지하고 팀을 발전시켜 더 나은 미래, 나아가 우승컵을 노리는 것은 모든 클럽의 의무이자 숙명이다. 하지만 때로는 미래를 생각하며 내린 결정이 비수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개인의 노력으로 미래를 전혀 다른 결과로 뒤집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편 20/21시즌 축구계에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19-20시즌 36경기 21골 12도움, 팀 역대 최다득점 3위에 자리하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수아레즈가 AT 마드리드로 이적한 것이다. 더구나 이적 과정에서 팀의 레전드로 대우받아도 손색없는 수아레즈에게 단 1분의 통화로 방출을 통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의 공분을 사게 됐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입장에선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 코로나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그의 높은 주급, 노쇠화된 공격진의 세대 교체 등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그를 보낼 이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존중 없는 구단의 태도는 팬들의 공감을 사지 못했고 수아레즈는 이적 후 리그에서만 21골을 터뜨리며 AT마드리드의 라리가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6년, 수아레즈는 ‘티키타카’ 로 대표되는 바르셀로나 특유의 철학에 완벽히 적응하며 월드클래스 선수로 거듭났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바르셀로나는 공을 소유하며 주도적인 경기를 펼쳤고 수아레즈 또한 팀 전술에 힘입어 많은 골들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AT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와는 정반대의 팀. 시메오네 감독의 철학처럼 ‘고통’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압박과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하는 팀이다. 즉 바르셀로나와 정반대의 팀 컬러 갖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수아레즈의 AT마드리드 행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보란듯이 ‘고통’의 중심에서 당당히 빛나며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보상을 받았다.


수아레즈는 37라운드 오사수나와의 경기에 결승골을 넣은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려면 고통을 겪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아틀레티코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공유해야 한다고 흔히 말하곤 한다. 우리는, 이 과정을 즐겨야 한다.” ‘티키타카’에서 벗어나 ‘고통’을 즐기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그의 시간들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이렇듯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때로는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그 결과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을 본인에게 최선의 결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어쩌면 축구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필요한 모습이지 않을까.

# 박수용 Editer '스포츠 과학 시대를 연 축구 과학자 로바노프스키'


현대에는 당연한 것이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일 수 있다.


요즘은 감독이 선수단을 운영할 때 스포츠 과학이 필히 사용된다. 데이터에 기반을 둔 상대팀 분석,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위한 최적의 식단, 훈련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선수들의 몸상태를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날 이런 업무들은 스포츠 구단이면 당연한 해야 하는 업무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축구 구단은 다소 비과학적으로 운영됐다. 이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바로 발레리 로바노프스키다. 로바노프스키는 그 시대에 이미 '축구는 개인이 아닌 팀원 간의 유대에 기인한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단순히 대인 경합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닌 팀 단위의 전방위적인 압박을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선수단의 몸상태가 최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는데, 이런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 스포츠 과학이었다. 로바노프스키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지식을 빌릴 수 있는 영역에 있었다. 이에 자신의 지낭이 될 훌륭한 과학 책사이자 우크라이나 출신의 물리학자였던 아나톨리 젤렌초르를 영입한다.


젤렌초프는 로바노프스키의 이상인 수학적 과학적 수치에 기반한 과학 축구를 이루는 데 필요한 과학자 참모진을 꾸렸고 이들은 로바노프스키의 4인방이라 불렸다. 이들은 훌륭한 지식을 활용해 경기 이전부터 압박 시스템에 맞춰서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체계적인 식이요법을 도입했다. 그리고 경기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통계학자 오솀코프는 수학적 과학적으로 아군과 상대를 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오솀코프의 철저한 분석 결과로 대응책을 짰고 그에 맞게 전술훈련을 했으며 어떠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게 선수들에게 두 개 이상의 포지션에서 활약하는 것을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경기 종료까지 가장 효율적인 체력 상태를 유지하길 원했다. 그래서 리그 우승을 확정 지은 뒤, 최상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업 선수들을 출전시키며 로테이션을 활용하기도 했고 무승부를 노리고 내려앉다가 패배하는 일도 빈번했다. 로바노프스키의 목적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과학적으로 후보 선수들의 실전 감각도 기르고 주전들의 체력 안배를 하며 다른 대회의 우승도 노릴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과학 축구로 디나모 키예프를 소비에트 톱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유럽 대항전에서도 선전했는데,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에서도 무려 두 번이나 우승했으며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며 소비에트 톱 리그를 UEFA 리그랭킹 3위권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가 육성했던 제자 중 셰브첸코, 블로힌, 벨라노프는 세계적인 축구 영웅으로 성장해 발롱도르를 수상하기에 이른다.


로바노프스키의 성공은 감독의 영향력을 구단의 전반적인 운영까지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고 매너저형 감독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코치를 참모와 같은 역할로 진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서유럽 축구계로 확산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부임한 퍼거슨은 1군 선수들 중 알코올 중독자들을 추방했고, 아스날에 부임한 뱅거는 식단을 위주로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사실상 로바노프스키는 매니저형 감독의 대명사이자 그들의 원조격 인물인 것이다.


UEFA는 그의 업적을 잊지 않았으며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장 10인 중 한 명으로 축구 과학자라는 평가를 남겼다. 선정된 10명의 인물 중 유일하게 빅이어가 없는 감독임을 감안하면 그가 끼친 영향력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초월하는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미래를 바꾼 선구자 로바노프스키는 축구계를 과학적으로 바꾸며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축구사에 남겼다.

# 그란데사커 Editer '토탈 풋볼, 축구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


"Total Footbal". 직역하자면 "전체의 축구", "완전한 축구". 이는 "전원 수비, 전원 공격", "전방 압박", "볼 점유" 등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축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 체계적이고 자유로운 개념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바꾼 위대한 전술, 토탈 풋볼은 어디서 시작하여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으며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영향을 미칠지 간단히 알아보자.


▶ 토탈 풋볼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났는가?


"토탈 풋볼" 하면 생각나는 인물을 대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리누스 미헬스"와 "요한 크루이프"를 댈 것이다. 미헬스는 토탈 풋볼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이고, 크루이프는 필드 위에서 완벽에 가깝게 구현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나타나기 이전에도 토탈 풋볼의 창시에 기여한 인물과 팀은 많았다.


1920년대 최고의 팀이었던 우루과이 대표팀, 1930년대 "최초의 펄스 나인" 마티아스 진델라를 필두로 한 오스트리아 대표팀, 1940년대 유럽과 남미를 대표하던 토리노 FC와 리버 플레이트, 1950년대 MM포메이션(3223)을 사용하여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헝가리 대표팀, 펠레가 활약했던 브라질 대표팀과 산투스 FC의 424포메이션 등등. 그리고 미헬스의 아약스 선수 시절, 당시 아약스의 감독 "잭 레이놀즈"는 패스, 개인기, 볼 컨트롤에 초점을 맞추며 육체적인 플레이보다는 기술적으로 플레이하길 원했다. 또한 그는 "공격은 최선의 수비" 정신을 강조하며 훗날 미헬스가 토탈 풋볼을 창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


1970년대 초반, 리누스 미헬스는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토탈 풋볼의 개념을 확립시켰다.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공수 양면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였고 유기적인 스위칭으로 상대를 교란했다. 또한 수비수들은 짧은 패스로 빌드업 했고 공격수들은 1선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며 점유율을 유지하였다. 그 중심에는 단연 크루이프가 있었다.


미헬스는 1970/71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 리그 4회 우승 등 아약스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고 바르셀로나로 떠나게 된다. 이후 아약스에는 루마니아의 감독 "슈테판 코바치"가 부임하였고 이후 2번의 유러피언컵 정상에 올라 아약스의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심지어 1971/72 시즌에는 단 1패만을 기록하며 트레블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 크루이프의 손에서 발전한 토탈 풋볼.


요한 크루이프는 미헬스의 가르침에 세부적인 디테일을 추가하며 "크루이프즘"을 만들어낸다. 이 또한 축구계를 강타하였으며 1990년대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 일명 "드림팀"은 라리가 4연속 우승, 팀의 창단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독창적인 철학은 축구에 많은 유산들을 남긴다.


▶ 현세대 최고의 명장, 펩 과르디올라.


크루이프의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였던 펩 과르디올라는 크루이프만큼 위대한 감독이 되었다. 특히 펩은 과거의 전술이나 농구 전술을 참고하고 현대 축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데 일가견이 있다. 예를 들어 1930~50년대 유행했던 WM포메이션(3223)을 모방하였고 그 과정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의 사이쯤 되는 포지션인 "하프백" 위치에 필립 람, 주앙 칸셀루 등의 선수들을 기용하며 그들의 가치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 토탈 풋볼의 가치.


현대 축구는 약 50년 전에 확립된 개념인 "토탈 풋볼"의 개념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압박, 볼 점유, 지역 방어, 스위칭 플레이 등 아주 기본적인 개념들이 토탈 풋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르디올라의 세밀하고 새로운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바르셀로나 시절 펩의 두뇌였던 사비는 중동의 알 사드에서 감독직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한 요한 크루이프의 아들인 "요르디 크루이프" 또한 바르셀로나에 코치로 부임하는 등 이들의 흔적은 축구계 곳곳에 퍼져있다.


▶ 토탈 풋볼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물론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미래에도 토탈 풋볼은 축구 전술의 핵심 키워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보다 더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변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워질 것인가. 아니면 "리베로의 부활"과 같은 현대 축구에는 사라진 전술들이 다시 나타나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축구는 지금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 김건호 Editer '조개를 열어 찾아낸 진주들'


매 경기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11명을 정하는 것은 감독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그저 선수 가치가 높은 11명의 선수를 쓰는 것이 아닌, 경기 당일의 몸 상태와 최근의 활약을 고려하여 자신의 축구 철학에 맞는 선수들을 기용한다. 교체 명단의 선수들 또한 선발 선수들과 유사한 결로 맞춰진다.


K리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은 또 하나 다른 고충을 갖고 있다. 바로2021년부터 개편되어 적용된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이하 U-22 룰)이 그것이다. 2021년 K리그는 한 경기에 최대 5장의 교체 카드가 주어지는데. 이는 U-22룰과 깊은 관련이 있다. 5장의 교체 카드를 온전히 다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기 당일 선발 출전하는 11명의 선수 중 U-22 선수가 최소 1명 이상 있어야 하고, 7명의 교체 선수 중 최소 1명 이상의 U-22 선수가 추가로 필드를 밟아야 한다. 즉 선발과 교체 멤버 총 18명의 선수 중 U-22 선수가 최소 2명 이상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일 U-22 선수가 1명만 선발 출장하고 추가적으로 U-22 선수의 교체 투입이 이뤄지지 않아 전체 엔트리에 2명 이상 포함되지 않을 때에는 최대 3장의 교체 카드만 사용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U-22 선수가 1명도 선발 출전하지 않는다면 교체 카드는 2장으로 줄어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팀의 감독들은 실력이 보장되며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선발 출장이 가능한 젊은 선수들을 보유한 팀은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리그를 시작할 수 있었고. 바뀐 룰을 위하여 조건에 맞는 선수들을 영입한 구단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산하 고등학교 혹은 유스팀 출신의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기도 했다.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발견된 그야말로 보물 같은 선수들이 많이 있다. 그중 좋은 활약을 펼쳐주는 선수들을 몇 명 소개하자면. 수원 삼성의 “매탄소년단”이라 불리는 3명의 선수: 정상빈, 김태환, 그리고 강현묵. 작년부터 포항 스틸러스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송민규. 올 시즌 아직 공격포인트는 없지만 꾸준한 출장으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서울FC의 조영욱. 빠른 발을 이용해서 광주의 측면공격을 이끌어 가는 광주FC의 엄원상. 위 선수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실력을 리그에서 입증하며 감독들의 고충을 덜어주고 있다.상술한 선수들은 비단 구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A대표팀의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U-22 룰을 통해 좋은 선수들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석지훈 Editer '백쓰리의 황제'


혁신적인 전술가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바르셀로나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 약팀으로 챔스까지 이끈 율리안 나겔스만? 오늘은 2016-17시즌 혁신적인 전술로 잉글랜드 전역에 백쓰리 열풍을 일으켰던 안토니오 콘테의 첼시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15-16시즌 첼시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리그10위, 챔스 16강 등 당시 첼시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고 이에 다음 시즌 첼시 감독에 대한 기대치가 상승하고 있었다. 끝내 첼시는 칼치오폴리로 강등당한 유벤투스를 11/12시즌 무패우승까지 이뤄냈던 콘테를 데려오며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16-17시즌 첼시는 이적시장에서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팀내 계륵이었던 오스카, 살라 등을 판매했고 바추아이, 캉테, 루이스, 알론소를 영입하며 순도 높은 보강을 실행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첼시는 백포를 사용하면서 3승 1무 2패로 부진했고 경기당 평균 실점률은 1.66까지 치솟았다. 당시 아스필리쿠에타의 위치가 애매했고 이바노비치의 급격한 노쇠화 그리고 알론소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터져 나왔다. 결국 아스날 전 벵거에게 0 대 3 패배를 당하며 백쓰리로 전술이 바뀌게 된다.


첼시의 쓰리백에 대해 살펴보면, 그들은 1-3-4-3을 기본으로 꾸렸으나 지공 시에는 1-3-4-2-과 같은 형태를 띄었다. 한편 수비 시에는 백파이브로 전환하여 상대 공격에 대응했다. 반대로 공격 시에는 양쪽 윙백 모두 종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면서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었다. 이는 좌우 스토퍼가 윙백의 배후 공간을 커버하고 루이스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심지어 중앙 공간에서 점유할 때는 양쪽 윙어가 볼을 몰고 전진하면서 중앙 미드필더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첼시는 백쓰리 사용 후 11연승을 기록했고 평균 실점률을 0.18까지 낮추는 기염을 토한다. 이처럼 서로의 단점을 커버해주는 완벽한 백쓰리로 당시 포백만을 쓰던 모든 PL 감독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결국 첼시는 PL 우승을 차지했고 콘테의 백쓰리는 전세계에 유행처럼 번져갔다.


이와 같이 과거의 전술로 통용되던 백쓰리 전술을 유행시킨 콘테는 축구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혁신 때문에 콘테의 행보에 더더욱 주목하게 된다.

# 신중혁 Editer '1600억의 사나이 주앙 펠릭스'


웨인 루니,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아구에로, 그리고 주앙 펠릭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골든보이 어워드 수상자라는 점이다. 골든 보이 어워드는 유럽에서 뛰는 만 21세 미만 선수들 중 1년 동안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유망주를 뽑는 상이다. 골든보이 수상 후 메시, 아구에로, 루니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했다.


펠릭스는 18-19시즌 벤피카에서 무려 26경기 15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유로파리그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까지 세우며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이적료인 1억 2600만 유로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입단하였다. 고작 21살에 불과했던 펠릭스에게 거는 기대치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20-21시즌 아틀레티코는 포메이션에서 확실한 변화를 가져갔다. 에르모소를 왼쪽 스토퍼로 기용하며 쓰리백 전술을 보여주었고, 카라스코와 트리피어가 자유롭게 측면 공격을 주도하며 경기를 풀어나갔다. 코케가 팀의 빌드업을 담당하고 마르코스 요렌테, 앙헬 코레아 등이 엄청난 활동량으로 수아레스를 지원했다. 그 결과 원래도 강력했던 수비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부족했던 공격력을 월등히 높일 수 있었다. 다만, 볼을 몰고 전진해 운반하고 킬패스를 찔러주는 플레이 메이커 성향의 선수가 부족했는데, 펠릭스가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


펠릭스는 센터 포워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등 2선 모든 지역에서 뛸 수 있는 선수이다. 측면에 빠져 드리블 돌파를 즐겨 하기보다는 중앙에 위치하며 자신이 직접 볼을 운반해 공격수에게 패스를 넣어주거나 슈팅으로 마무리 짓는다. 또한 탈압박에 능하고, 가끔씩 아름다운 개인 기량을 보여주곤 한다. 펠릭스의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18-19시즌 자료를 보자.


키패스와 기회 창출 부분이 눈여겨볼만하다. 펠릭스는 총 1721분을 뛰었고, 선발과 교체 포함 26경기에 출장해 15골과 7어시스트, 키패스 29회, 기회 창출 36회를 기록했다. 약 47.8분당 기회 창출 1회를 만든 것인데, 20-21시즌 해리 케인도 48.9분당 기회 창출 1회를 기록했고, 래시포드도 약 56.1분당 기회 창출 1회에 그쳤다. 이를 가지고 펠릭스의 기회 창출 능력이 좋다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득점력과 기회 창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는 점은 확신한다.

이제 펠릭스가 아틀레티코에 입성한지 두 시즌이 지났다. 사실 이적료에 비해 활약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재능을 증명하는 골든보이 수상 경력과 리그 우승의 경험도 갖고 있다. 과연 펠릭스가 루니, 아구에로처럼 골든보이 수상 후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앞으로 펠릭스의 성장이 정말 기대된다.

# 홍연진 Editer '수원 삼성과 한국 축구의 미래, K-음바페 정상빈'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클럽 중 하나다. 특히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 구사되는 매력적인 축구와 그들이 2020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엄청난 투지는 많은 축구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번 2021 시즌 수원의 미래를 이끌어갈 선수이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대형 신예 선수가 탄생하였다. 바로 최근 K리그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당히 A 대표팀에 발탁된 정상빈이 그 주인공이다.


정상빈은 어린 나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담한 플레이와 자신의 롤모델 음바페, 베일과 같은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재는 수원의 어엿한 주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최근 많은 축구 팬들로부터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는 정상빈. 그에 대한 이야기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정상빈은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었던 아버지 정근영 씨의 영향으로 이른 나이에 축구를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1년 대전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수원의 유스팀인 매탄중학교에 진학 예정이었던 2015년 2월에는 차범근 축구상 우수상을 수상하고 3학년 때는 대한축구협회 소년체전 MVP로 선정되는 등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매탄고등학교에 진학한 2018년에는 AFC U-16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김정수 호에 발탁되어 전 경기에 출전하면서 276분 소화했고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다만, 팀은 아쉽게도 4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타지키스탄에 무릎을 꿇었다. 다음 해인 2019년 또다시 김정수 감독의 부름을 받아 U-17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했고 이번에도 전 경기에 출전하며 205분 동안 1골을 기록했다. 이 1골은 조별리그 2차전 강팀 프랑스에 0:3으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기록한 만회골이었다.


매탄고등학교 소속으로 두 번의 연령별 대표팀을 경험한 정상빈은 2020년 준프로 계약을 통해 수원에 합류했고 현재까지 ‘고등학생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데뷔’를 시작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와 더불어 K리그의 강호들을 상대로도 기죽지 않고 저돌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득점까지 뽑아내고 있다. 이에 A대표팀의 벤투 감독도 정상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전술적 이해도와 경기 내내 많이 뛰는 부지런함과 같은 장점이 정상빈을 A대표팀으로 이끌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빠른 스피드, 드리블, 침착한 볼 터치, 확실한 결정력을 겸비한 ‘K-음바페’ 정상빈. 앞으로도 그가 만들 새역사에 집중해야만 한다.

# 김성준 Editer '코리안 메시의 몰락'


2013년 12월, '바르셀로나의 미래' 라는 트위터가 올라왔다.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는 바로 이승우였다. 당시 유스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이승우. 하지만 현재는 경기 출전도 버거워지면서 선수 생활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승우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승우는 인천 소속에서 바르셀로나 유스로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주로 제로톱 시스템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뛰었는데, 다른 선수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우수했다. 탁월한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첫 시즌 득점왕, 다음 시즌 득점 2위를 기록했다. 또한 각종 대회에서 MVP를 휩쓸자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코리안 메시'라 말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바르샤 유스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던 이승우였지만 2013년 FIFA에게 갑작스러운 출전금지 통보를 받는다. 선수 이적에 관한 조항 19조 "선수의 해외 이적은 18세 이상일 때 가능하다" 라는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바르샤는 재소를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드려 지지 않았고 2015년 9월에는 훈련 및 거주마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다. 결국 이승우는 수원FC에서 훈련할 수밖에 없었고 U-17 대표팀에서 실전 경험을 유지했다.


징계 해제 이후 몸상태를 회복하는 듯했지만 이전의 플레이는 눈에 띄게 감소했고 성장세가 주춤해졌다. 결국 바르샤에서 설 자리를 잃으며 바이백 조항을 단 뒤 세리에A 베로나로 이적한다. 그러나 베로나에서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344분 출장에 그친 채 팀은 강등된다. 2부 리그에서 이승우는 승격에 일조했지만 자신을 신임하던 감독 경질, 후반기 부진, 경쟁자 영입으로 주전 경쟁에서 뒤처지자 벨기에 신트트라위던으로 이적한다.


경쟁 체제가 다소 느슨할 것으로 예상됐던 신트트라위던에서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출전은 물론 명단에 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감독은 '이승우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으며 훈련도 게을리한다'며 비판을 가했다. 감독이 바뀐 뒤에도 이승우는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이 조기 종료되면서 리그 4경기 출장에 그쳤다. 두번째 시즌에는 초반에 멀티골을 기록하는 등 중용을 받는 듯했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입지를 잃어갔다. 이에 포르투갈의 포르티모넨스로 임대됐으나 36분 출전에 만족해야 했다.

완벽한 실패였다. 베로나부터 프로티모넨스까지 줄곧 기회를 받지 못한 것을 보면 이승우에게 닥친 상황적 어려움을 피력하는 것보다 이승우 개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 예비 명단에 포함된 이승우. 그가 과연 이 기회를 통해 부활할 수 있을까? 만약 최종명단에 포함된다면 다시금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비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윤성욱 Editer '과르디올라의 미래를 위한 차선책'


맨체스터 시티는 2020-21 시즌 후벵 디아스의 영입, 존 스톤스의 각성 등으로 수비력이 보완됐지만 스털링, 제주스의 부진과 아구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공격적인 면에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러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제로톱 전술로 변화를 시도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리그 우승, UCL 준우승으로 이어졌다. 그러면 제로톱 전술이 무엇이며 어떤 이점이 있는지 알아보자.


제로톱 전술이란 최전방에 중앙 공격수를 두지 않는 전술로 이 전술의 중심이 되는 선수를 펄스 나인이라고 한다. 펄스 나인 선수는 단단한 피지컬을 이용해 전방에서 득점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기보다는 중원에서 연계 플레이나 기회 창출을 위한 패스, 직접 드리블 돌파 후 마무리 시도 등 더 다양하고 복잡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에 대표적인 선수로는 미카엘 라우드루프, 프란체스코 토티, 리오넬 메시와 더불어 가장 최근에는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펄스 나인의 정석으로 불리고 있다.


한편 맨시티가 본격적으로 우승권에 도달하면서 승점을 벌리기 시작한 것은 1월 전후인데, 이전까지는 공격진의 부진과 코로나19로 인한 짧은 프리시즌의 여파 등으로 인해 경기력의 난조를 겪었다. 그러자 과르디올라 감독은 제주스를 선발에서 제외하거나 측면으로 돌리는 등 전술 변화를 꾀했다. 이 상황에서 더브라위너, 베르나르두 실바, 필 포든, 페란 토레스 등이 펄스 나인으로 기용되었고 이들이 함께 나온 경기에서는 수시로 스위칭이 이루어지는 모습도 자주 포착되었다.


더브라위너가 제로톱에 위치할 경우, 내려온 위치에서 빌드업에 관여하고 측면에서 동료들의 순간적인 침투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더 좋은 연계 플레이가 이루어지며 그 위치에서 중거리슛, 세트피스 등의 상황도 창출해 낼 수 있었다. 더불어 간헐적으로 전진하는 귄도안의 득점력이 상승했고 포든과 마레즈의 중요한 득점으로 인해 구단 역사상 최초로 UCL 결승에 진출하였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 제로톱 전술을 꺼내들면서 리그 우승을 가져왔고 UCL 준우승까지 기록했다. 이 때문에 다가오는 시즌에도 최전방 공격수가 보강되지 않을 경우 제로톱 전술은 자주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래에 비슷한 문제를 겪는 팀이 나타날 경우 제로톱 전술 카드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양한 감독들에 의해 전술이 이용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다듬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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