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문
현대사회에서 위기가 가진 파급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하다. 위기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방향성이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최근 여타의 조직 및 사회가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축구라는 스포츠도 위기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구단의 위기, 선수의 위기, 감독의 위기, 패배의 위기 등 수많은 위기가 축구의 내외로 도사리고 있다. 사실상 매순간이 위기인 것이다.
그래서 풋볼매거진은 제4호를 통해 그간 축구에서 발생한 위기의 순간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산업, 서비스, 리그, 감독 등 다양한 시작에서 축구의 위기와 직면했다.
그대가 바라보는 축구의 위기란 무엇인가? 풋볼매거진과 함께 축구의 위기와 마주해보자. 풋볼매거진이 독자들의 위기관리자를 자처할 테니.
정채건 Editer 'OTT의 축구 중계 위기인가 기회인가'
시대는 변화한다. 단순히 영화와 방송 프로그램 등의 VOD 시청을 위해 존재했던 OTT서비스들은 이제 본인들의 오리지널 컨텐츠를 만들고 신작 영화의 개봉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TV의 쇠퇴에 OTT는 TV에 대한 대체제로도 떠오르고 있다. 일련의 흐름 중 하나로 OTT 서비스들은 스포츠 중계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채널인 스포티비가 유료 서비스와 단독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구독 모델을 론칭하며 이러한 흐름의 서막을 알렸고 티빙과 쿠팡플레이 등의 업체들도 축구 중계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포털 사이트나 모바일을 통해 축구 중계가 이뤄진 것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이전의 포털 중계는 TV채널에서 진행되는 중계를 단지 온라인을 통해 송출하는 정도에 그쳤다. 스포티비의 경우도 케이블 채널을 기반으로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송출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올여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코로나로 인해 연기된 스포츠 이벤트들을 포함, 다양한 스포츠 행사들이 즐비한 올여름. 티빙은 우리나라 최초로 OTT 서비스를 통해 유로 2020 단독 중계권을 사들였다. 더불어 TV와 동시 송출을 통해 초석을 다지던 쿠팡 플레이는 올림픽 단독 중계권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미 유럽에서는 아마존 프라임의 PL중계 사례가 있었듯 앞으로는 OTT 서비스를 통해 스포츠 중계를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포츠 중계의 흐름은 변화 중이다. 라디오에서 TV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듯 이제는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그 플랫폼을 위시로 한 OTT로 헤게모니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넷플릭스, 왓챠, 쿠팡 플레이 등을 통한 스포츠 중계 시청이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이들은 스포츠 중계에 있어서 이제 막 발을 들인 상태로 높은 수준의 중계를 듣고 싶은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번 유로 2020은 이러한 팬들의 불만을 가속시켰다. 뿐만 아니라 케이블 티비 결제를 하면 대부분의 중계를 볼 수 있었던 이전과 달리 이제는 각각의 서비스를 결제해야 원하는 중계를 볼 수 있다는 단점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도 팬들의 입장에서는 피로감을 더하는 일일뿐이라는 것이다.
OTT의 축구 중계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미래지향적 방법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기존 중계의 문법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바라볼 수 있는 큰 기회일 수 있다. 아프리카 티비에서 PL의 중계권을 구입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이 과도기를 잘 넘기지 못하면 축구 중계는 방송국에서도 OTT에서도 버림받을 수 있다.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수익모델의 창출과 팬들을 모으기 위한 수준 높은 중계 시스템을 갖추는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현우 Editer '그럼에도 기억해야 하는 K리그 승부조작 사건'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그 이름과 형태가 변화하며 지속되어온 지 약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축구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으나 한국 프로축구도 슈퍼리그에서 K리그로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그중에는 찬란한 영광의 순간으로 기억되는 장면도 있다. 허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위기의 순간,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같은 침통한 일도 있었다.
올해로 10주기를 맞는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은 2010년 6월부터 2011년 4월까지 무려 21경기에 선수와 브로커를 포함 총 78명이 연루된 사태이다. 이 사건으로 프로축구연맹은 승부조작 관련 선수 58명 중 57명을 영구 제명했고 나머지 1명에겐 5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프로축구와 프로스포츠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형 스캔들이었다. 축구 선진국들에 비해 축약된 기간 동안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빠른 성장을 도모해야 했던 환경 탓에 제도와 시스템을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사건 이후 연맹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1년간 4회에 걸쳐 부정 방지 교육을 실시하는 등 부정 방지 활동을 제도화했다. 시스템 구축을 통한 긍정적 사례로는 2018년 이한샘의 승부조작 제의 고발을 들 수 있다. 10년이 지난 현재 국제축구선수연맹 승부 조작 신고 애플리케이션 ‘레드 버튼’이 국내에도 보급되며 승부 조작을 목격하거나 제의를 받은 현역 선수가 신원 노출 없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환경까지 조성되었다.
승부 조작 시도 앞에 선수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제도와 시스템으로 대비책이 마련된 것이다. 다만 그 대비책으로도 암흑의 거래를 완벽하게 방지할 수는 없었다. 2013년에 발생한 심판 매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또다시 스포츠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2년 뒤 프로축구는 출범 40주년을 맞이한다. 프로 2팀과 실업 3팀을 포함해 5개 구단이 참여하던 원년 리그와 비교했을 때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다. 반대로 질적인 성장은 어떠할까? 선수들의 개인 능력과 리그 운영면에서는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축구와 스포츠의 근간을 이루는 ‘공정성’에 대한 부분에서는 물음표다. 축구팬들은 페어플레이에 위배되는 순간들을 목격해왔다. 그 순간들을 겪으면서도 축구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떠나지 않은 팬들 덕분이다. 다시 한번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짓을 통해 축구의 근간을 이루는 주춧돌을 빼 버린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가슴 아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일 수 있으나 이 땅에서 지속될 축구를 위해 10주기를 맞는 승부조작 사건은 반드시 복기 되어야 한다.
정재욱 Editer '무너지고 있는 명가들, 리그앙의 위기'
AS 생테티엔과 지롱댕 보르도. 프랑스의 명가로 꼽히는 구단들이다. 하지만 명문 구단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최근 이 두 구단은 재정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뿐만 아니라 생테티엔과 보르도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프랑스 구단들이 재정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프랑스 리그의 위기는 어째서 발생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2018년이었다. 스페인 방송사인 mediapro가 리그앙 중계권을 구매한 것이다. 매년 814m 유로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과거 mediapro는 재정적인 수익을 문제로 세리에A 중계권 구매를 거절한 전례가 있어 수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파생됐다. 이와 같은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결국 mediapro는 2024년까지의 리그앙 중계권을 따냈다. 그들이 신설한 방송국 Téléfoot는 프랑스 1부, 2부 전경기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를 중계하는 조건으로 구독자들에게 25유로의 월정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téléfoot은 손익분기점인 400만 구독자에 훨씬 못 미치는 60만 구독자밖에 유치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고 모든 경기가 취소되자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mediapro는 지속적인 손실을 버티지 못한 채 파산을 선언했고 중계권료 지급은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관중 수익과 중계권 수익 모두 얻지 못하게 된 리그앙 구단들은 재정 위기를 겪게 되었다. 파리 생제르망과 AS 모나코, OGC 니스 등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구단들은 타격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나 구단 소유주의 투자가 적은 생테티엔과 보르도 등 중소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릴, 마르세유 등의 구단들도 빚을 내어 구단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2021년 6월 미국의 amazon prime이 리그앙 중계권을 구입해 상황이 진정되는 듯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재정난을 버티지 못한 보르도와 앙제는 각각 재정 위기로 인한 파산과 임금 체불로 리그앙에서 퇴출 위기에 처해 있다. 생테티엔, 낭트, 랭스는 극심한 재정난으로 구단주가 구단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점은 보르도의 새 구단주가 구단 인수를 완료하고 항소하면, 앙제의 선수 임금 협상이 완료되면 리그앙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생테티엔 역시 구단 인수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인수 과정이 순탄치 않거나 인수 후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들의 위기는 지속될 것이다.
mediapro의 무리한 중계권 구매로 인한 프랑스 리그의 재정 위기는 ‘High Risk High Return’을 너무 맹신한 도박과도 같은 투자였고 리그앙 사무국이 세리에A와 다르게 방송사를 지나치게 신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연 리그앙의 무너지는 명가들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화려하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서보원 Editer '클래식 윙어의 소멸과 인버티드 윙백의 부흥'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 필요가 없어지고 도태된다. 자연의 섭리다. 축구계에서도 어김없이 이 섭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티키타카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측면에서의 세밀한 세부 전술과 하프 스페이스 공략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트렌드로 인해 한 포지션은 멸종 위기를, 다른 포지션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가장 골이 잘 터진다고 말하는 공간, 하프 스페이스는 쉽게 말해 측면과 중앙의 사이다. 센터백과 풀백 사이의 공간이다 보니 풀백의 수비 복귀가 늦어지면 수비가 헐거워지고 상대의 진입은 수월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 명의 센터백을 배치하는 전술이 유행했고 중앙 공격수들은 압박을 피해 측면으로 향했다.
다만 측면으로 빠진다고 해서 코너 플래그 근처에서 놀 순 없었다. 골을 넣기 위해선 중앙으로의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인버티드 윙백이다. 기존의 윙백들은 빠른 수비 복귀를 위해 종적인 움직임만 가져갔지만 인버티드 윙백은 종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횡적인 움직임, 즉 페널티 박스 쪽으로 꺾어 들어 갔다. 이는 최전방 공격수가 사이드로 빠지는 전술과 상응했다. 수비를 유도하는 공격수로 인해 빈 공간이 생겨났고 여기서 맨 마킹이 헐거운 윙백이 직접 박스 안에서 기회를 창출해냈다.
단순 공격 가담 수준이었던 측면 수비수 역할이 주 공격 전술로 거듭난 것이다. 이런 전술적 추세는 메이저 대회에서 쉽게 엿볼 수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스피나촐라, 덴마크의 요아킴 멜레가 인버티드 윙백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이와 같은 특정 포지션의 부흥은 또 다른 포지션의 위기를 낳았다. 부득이하게 윙어들은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수비 유도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윙백과 포지션이 겹치지 않게 중앙에 배치되기도 했지만 압박이 강한 중앙은 윙어의 무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윙백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소위 "반댓발 윙어"들은 수비 위치 선정과 복귀 그리고 슈팅에만 신경 쓰면 되기에 포지션 전환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직선적인 움직임으로 크로스를 올리는 게 목표였던 클래식 윙어들은 그야말로 위기였다. 그들은 하프 스페이스가 아닌 엔드라인에 친숙했고 종적인 볼 운반에 능했기 때문이다. 쓰임새가 자연스럽게 사라지자 윙어들은 "클래식함"을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이제 좌긱스-우베컴의 아름다운 궤적의 크로스는 그 누구도 따라 하지 않는다. 측면 윙어들은 양발을 다 사용하기를 원하거나 수비 교본을 읽는다. 롱볼 크로스는 올드한 존재가 되었고 세련된 신예들은 윙백 포지션을 탐낸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아무래도 당분간 클래식과 작별할 때인 거 같다. 우리는 현재, 유행으로 인한 위기와 부흥을 동시에 겪고 있다.
오성윤 Editer '원정 다득점의 폐지와 축구계의 위기'
원정 다득점 원칙의 사전적 의미는 ‘합산 추첨의 경우 원정 골이 많은 팀이 이기는 규칙’으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너먼트에서 1,2차전 스코어를 합산하여 총합 무승부가 나오게 될 경우 원정 경기에서 더 많은 득점을 올린 팀에 승리한다는 말이다.
팬들의 응원에 의한 홈팀의 이점과 원정팀의 불이익이 유난히 심한 축구의 경우, 홈팬들의 응원에 짓눌려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는 원정팀의 진부한 10백 축구를 막고 원정팀에게 동기부여를 불어넣어 경기에 긴박함을 가미하고자 창설된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1965년에 도입되어 올해로 56년을 맞이하는 깊은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다.
원정 다득점 규정은 축구의 기적을 논할 때 대표적으로 떠올리는 18-19시즌 암스테르담의 기적처럼 경기의 박진감을 더하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희대의 오심이라고 불리는 08-09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맞대결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있기도 했다. 이처럼 원정 다득점은 반세기 동안 축구계에 뿌리를 내리며 시대를 막론하고 다사다난한 세월을 보내왔다. 다르게 해석하면 축구에 여러 스토리와 재미를 가미해주는 유서 깊고 요긴한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돌아오는 21-22 시즌부터 원정 다득점 규정이 폐지된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UEFA에서 단독으로 발표했기에 원정 다득점 폐지 적용은 UEFA 주관 대회에 그친다.그러나 국내적으로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유럽 축구의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UEFA 대회의 원정 다득점 폐지는 축구라는 스포츠의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심할 경우 원정팀들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 축구의 묘미 중 하나인 원정 다득점의 부재에 대한 팬들의 반감 등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다양한 부정적인 요인에서 원정 다득점 원칙의 모순적인 흐름을 끊고자하는 UEFA의 원래 의도와는 반대로 축구계가 한단계 퇴보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규정의 폐지 이후 즉 21-22즌부터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UEFA 소속 클럽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토너먼트에서 원정팀들의 공격성이 중요한 관건이 될 수도 있고 UEFA의 유연한 대처 혹은 적절한 대체제 마련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도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오프사이드 규정 이후 또다른 축구의 부흥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냐 아니면 두터운 팬층의 유출을 막지 못하고 스포츠 흥망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냐. UEFA와 축구계는 두 갈림길 위에 서있다.
정하랑 Editer '잠비아 축구가 맞았던 위기'
아프리카 축구는 현대 축구의 시초로 여겨지는 영국과 같이 역사가 길지 않다. 1980년대부터 아프리카 축구의 부상이 시작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유연함은 높은 수준의 대회에서 빛을 발휘했다. 사무엘 에투, 조지 웨아, 디디에 드록바 등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도 탄생했지만, 사실 아프리카 축구가 이렇게 번영함에 있어서 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국가가 있다.
과거의 올림픽이 가진 위상이 현재보다 훨씬 높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4:0으로 완파한 잠비아의 역할은 아프리카 축구의 선봉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잠비아는 당시 칼루샤 브왈랴 등의 걸출한 선수들을 활용하여 국제 대회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안타깝게도 메달권에 드는 데는 실패했으나 잠비아가 아프리카 축구에 대한 관심도를 이끌어낸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잠비아는 황금 같은 전력들을 앞세워 1994년 미국 월드컵을 향해 순항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이들에게 닥쳤다. 1993년 4월 27일 세네갈 원정을 위해 비행기에 탑승한 선수단, 감독, 코치진들은 가봉의 리브르빌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에 휘말리게 되었다.이 사고로 인해 비행기에 탑승했던 30명 전원 사망했다. 소속팀 일정에 따라 비행기를 타지 않고 따로 이동했던 칼루샤 브왈랴만이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잠비아는 자신들이 꾸려왔던 축구의 거대한 축 자체를 잃게 됐다.
그렇게 그들은 기구한 운명에 따른 위기를 맞이하며 월드컵 티켓도 놓치고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현재는 찰리 무손다 등의 유망주들도 유럽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세대교체도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도 잠비아는 월드컵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국가들 중 하나로 뽑히며, 심지어 아직도 자신들의 축구를 재건하는 과정에 있다.
드록바의 코트디부아르, 조지 웨아의 라이베리아, 그로벨라의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축구는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가치를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에는 잠비아가 닦아 놓은 바탕이 적지 않게 기여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앞으로 축구를 즐기는 세대들이 아프리카 축구의 숨겨진 요소를 역사적 시선으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창출되기를 기대한다.
김성준 Editer '코로나가 축구에 가져온 어두운 그림자들'
2020년 3월 9일 아시아에서 시작된 질병이 전세계를 강타했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탈리아의 세리에A가 리그를 잠정 중단시키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재앙의 시작이었다. 무시무시한 질병에 의해 서서히 한 국가씩 힘을 잃어 갔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 영국 등등 확진자와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모든 축구 리그는 멈추고 말았다. 이후 2021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펜더믹'은 지금도 축구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상술했듯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는 전세계 모든 축구 리그를 중단시켰다. 축구리그가 멈췄다는 것은 선수들이 경기에 뛰지 못한다는 뜻이며 실전 감각의 저하를 의미한다. 팀 훈련도 화상 회의를 통해 전달하는 등 불편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는 완치가 되어도 10명 중 9명꼴로 후유증이 따라온다. 호흡장애, 심장이상, 동맥경화, 만성피로 등 다양한 후유증이 있는데, 이는 축구선수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가 완치된 레전드 파울로 말디니는 “체육관에서 무엇인가 해보려 했는 데 10분이 지나자 죽을 것 같았다. 나이 때문이 아니라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향후 다행히도 축구 리그는 재개되었지만 경기장에서 들리던 팬들의 함성소리는 전무했다. 팬들의 응원은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된다. 선수들은 자신감이 상승할 뿐 아니라 순발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테스토스테로가 40~70%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팬들의 경기장 출입이 제한되면서 자연스레 홈경기 성적이 내려갔다. 19-20 분데스리가에서 발표한 홈경기 승률을 보면 홈팀 승률은 43.3%에서 21.7%까지 하락한 반면 원정팀은 34.8에서 47.8%까지 상승한 기록을 통해 반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무관중 경기는 구단 수익으로 직결된다. UEFA 보고서에 따르면 19-20회계연도와 20-21회계연도 재정 손해는 총 87억유로(약 12조원)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중계료가 깎이고 관객 입장 수익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각 구단은 임금 삭감 등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하는 구단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축구에 큰 위기를 가져왔고 아직도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위기에 빠졌고 축구도 그 굴레에 포함된다. 과연 축구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21세기 축구사에 거대한 변곡점이 아닐까 싶다.
이경민 Editer '다시 한번 빛나는 아주리'
코로나로 1년 늦게 시작한 유로 2020.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기세가 뜨겁다. 만치니 감독과 함께 카테나치오의 명성을 부흥시키며 유력한 우승 후보로 부상했다. 하지만 유로 2020 개막 이전까지 이탈리아의 선전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이들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을 정도로 큰 위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암흑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 독일 월드컵 직전 축구 역사상 최악의 사건 ‘칼치오폴리’가 터졌다.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축구 게이트’로 불리는 이 최악의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뒤이어 2008년 남유럽 경제 위기가 겹치면서 세리에 대다수의 팀들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었고 리그 경쟁력과 유망주 육성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이는 2010년대로 넘어와서도 이탈리아를 괴롭히며 세대 교체 실패로 이어졌다. 세대 교체 실패는 카테나치오의 급격한 노쇠화를 이끌었고 이로 인해 그들이 자랑하던 철벽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결국 이탈리아는 2010년 대에 열린 메이저 대회 (2010, 2014, 2018 월드컵 / 2012, 2018 유로) 에서 단 하나의 우승컵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2012 유로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월드컵에선 두 번 연속으로 조별 예선을 넘지 못했다. 급기야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책임졌던 벤투라 감독은 무능력의 극치를 보여주며 탈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결과였으며 최악의 날이었다. 월드컵 탈락이 결정된 직후 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행동에 나섰다. 탈락의 주범으로 꼽힌 벤투라는 경질되었고 로베르토 만치니가 선임되었다.
만치니는 빠르게 팀을 바꿔나갔다. 새로운 선수들을 대표팀에 불러들였고 녹슬었던 카테나치오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 스웨덴과의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장했던 선수들 중 현재 유로 2020 대표팀에 남아있는 선수들은 단 3명뿐이다.
현재 이탈리아는 젊고 역동적인 새 얼굴들과 함께 32경기 연속 무패, 13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아주리’는 이탈리아를 통치했던 사보이 왕가의 푸른색을 뜻한다. 아주리라는 파란 물결이 세계를 집어삼킬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빛이 바래질 때도 있었다. 지금의 아주리는 색이 바래졌던 위기의 터널을 지나 전유럽을 파랗게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탈리아가 위기를 떨쳐내고 부활했다는 말이다.
풋볼루션 Editer 'The players are not machines'
세계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좋은 스포츠는 무엇일까?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종목 중에서 대중적이고 큰 사랑을 받는 스포츠는 단연 축구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 유로, 코파 같은 국가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 네이션스리그라는 세계 각국의 리그전, 한 자리에서 자웅을 가려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등 축구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통상 축구 리그는 각기 나라별로 계절의 시기에 따라 나뉘게 된다. 크게 봄에 시작해 가을에 종료되는 아메리카식 시즌과 가을에 시작해 봄에 종료되는 유럽식 시즌으로 분류된다. 즉 1년 동안 일정을 세우고 리그, 컵대회, A매치 등의 경기를 치러가는 것이 축구의 한 사이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선수들이 한 시즌 동안 너무나도 많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미어리그를 예로 들자면 정규 리그 38경기 동안 FA컵, 리그컵, 챔피언스리그뿐만 아니라 클럽월드컵과 같은 특수한 컵 대회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일 년에 약 50경기 또는 60경기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 풀어 말하면 정규 리그 외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경기가 끝나더라도 제대로 된 휴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장거리 이동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지속적인 피로 누적으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장거리 이동을 떠나야 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지속적인 피로 누적으로 인해 체력적인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컨디션 난조를 일으킬 수 있고 선수들로 하여금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선수들과 코치진들이 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기회 부여를 명분으로 다른 대회를 창설하거나 기존 대회에 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다가오는 21-22시즌에 유로파 컨퍼런스리그가 새롭게 출범하고 2024년 UEFA 챔피언스리그에는 36개 팀이 참여하며 경기수는 더욱 늘어났다.
즉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상업성‘에만 주목한 채 경기수를 늘려 돈을 벌려는 수단을 만들어낼 뿐 선수들의 건강 상태는 신경을 쓰지 않는 행위를 지속해서 모색하고 있는 꼴이다. 이러한 행동은 선수 생명과 관련해 부정적인 상황을 꾸준히 일으켰다. 최근 유로 2020 덴마크와 핀란드의 경기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안타까운 소식처럼 말이다.
물론 대승적인 차원에서 저변의 확대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열광하는 축구와 사랑하는 선수들을 오랜 시간 동안 보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확대가 아닌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지금은 저변의 확대보다 자원의 보호가 더 시급한 실정이다.
박수용 Editer '무능한 정부에 의해 무너진 매직 마자르'
축구사 최고의 팀을 논할 때 여러 팀이 거론된다. 펠레의 브라질, 크루이프의 네덜란드, 펩의 바르샤, 사키의 AC 밀란 그리고 후술할 매직 마자르의 헝가리가 여기에 속한다.
‘월드컵 우승도 못한 헝가리가 역사에 남는 팀일까?’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1949년부터 1956년까지 62전 50승 9무 3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을 보여줬으며 공식전 패배는 1954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 서독전이 유일했다.
비단 저런 결과론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매직 마자르의 소셜리스트 풋볼은 축구 전술사에 공격형 미드필더와 포백, 투톱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30년 가까이 WM 시스템만을 진리로 생각했던 유럽 축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헝가리도 시대가 지나면서 위기를 겪었고 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가 무너진 이유는 자국의 안타까운 정치 상황에 기인한다. 헝가리의 공산 정부는 권위적이었지만 무능했다. 그런 이유로 민중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결국 1956년 정치인 너지 임레를 구심점으로 민주화를 요구하며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군은 헝가리 정부를 이기고 혁명 정부를 수립했지만 권력에 눈이 멀어 동지들을 배신하고 공산당에 붙은 카다르 야노시는 공산국가들의 맹주 격인 소련의 군대를 불러왔다. 공산당이 불러온 소련군에 의해 의해 헝가리 혁명군은 15000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다시 공산정권으로 회귀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때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다수가 소속되었던 헝가리 공군 소속팀 부다페스트 혼베드는 유러피언컵을 위해 빌바오로 원정을 갔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고국 정부가 권력을 위해 외국군을 불러 자국민을 학살한 이 비통하고 한심한 사태에 대해 분노해 혼베드의 감독 칼마르 예노와 헝가리 대표팀 에이스 푸스카스 페렌츠, 코츠시스 산도르, 치보르 졸탄이 스페인으로 망명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연스레 이들은 헝가리 국적이 사실상 박탈됐고 에이스들을 잃은 헝가리의 매직 마자르는 일부 노장의 은퇴까지 겸해지며 무너지게 된다.
한편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군의 신분을 버린 옛 영웅들을 폄하했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떠난 헝가리의 축구 영웅들은 스페인 클럽에서 활약하며 스페인 축구를 발전시켰고 매직 마자르는 이들의 유산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롤모델을 잃은 헝가리의 전력이 떨어지며 변방으로 추락했다.
이들이 명예를 회복한 건 1989년 헝가리가 공산 정권에서 해방되어 민주화가 된 이후였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헝가리 축구가 무너진 이후였다. 혁명군을 배신하고 소련군을 불러낸 대가로 32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카다르 야노시는 자신이 권력을 누리는 대가로 헝가리 국민들의 목숨과 헝가리 축구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처럼 자국 축구의 위기는 축구 내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축구 외적인 정치, 사회적 문제로 인해 올 수도 있다.
서독이나 이탈리아처럼 위기를 극복한 나라들도 있지만 비행기 사고로 몰락한 잠비아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나라들도 있다. 헝가리는 한 정치인의 야욕이 매국행위로 번졌으며 소련군을 불러내 동포들을 학살하는 헝가리 역사상 최고의 비극을 안겨줬다. 그리고 이 사건은 유럽 축구의 트렌드를 선도하던 헝가리 축구의 몰락도 함께 가져왔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헝가리는 천천히 하락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독재를 원하는 정치인의 야심이 자국 축구, 그것을 넘어 자국 국민의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었고 끝내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한 이 불행한 사건은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조명되고 있다.
그란데사커 Editer 'UEFA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헤이젤 참사'
"이 도시에는 두 개의 위대한 팀이 있다. 리버풀과 리버풀 리저브 팀." 리버풀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구단 최고의 전성기, 일명 '붉은 제국'의 초석을 다졌던 빌 샹클리 감독의 말이다. 빌 샹클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후임인 밥 페이즐리(1974~1983), 조 페이건(1983~1985) 감독의 붉은 제국은 실로 위대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팀은 유러피언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4회 우승을 포함한 수많은 업적들을 남기며 잉글랜드 최고의 팀이자 유럽 최고의 팀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영광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됐다. 1985년 5월 29일,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 유벤투스의 유러피언컵 결승전. 당대 최고의 리그, 최고의 클럽들이었던 두 팀의 맞대결이자 두 '왕' 맞대결이었다. ('King Kenny'<케니 왕>' 케니 달글리시, 'Le Roi'<왕> 미셸 플라티니.) 하지만 두 팀의 역사적인 경기는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빛이 바래고 만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킥오프 약 1시간 30분전부터 경기장은 양 팀 서포터들의 노래와 실랑이로 떠들썩했고 적대적이며 폭력적인 분위기가 연출됐다. 리버풀의 서포터들과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은 경기장의 양 끝에 위치하였고 가운데 좌석은 중립 팬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원래 리버풀 서포터들의 구역이었던 X, Y, Z구역 중 Z구역은 벨기에인들에게만 티켓이 판매된 중립 구역이 되었으며 그 티켓이 유벤투스 서포터들의 손에 넘어가 중립 팬들과 유벤투스의 서포터들이 뒤섞이게 된다. 즉 Z구역의 유벤투스 서포터들과 X, Y구역의 리버풀 서포터들이 임시 철조망과 경찰들만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된 것이다. 거의 1야드(약 0.9m)밖에 안되는 간격에서 마주한 두 서포터들은 킥오프가 다가오자 더욱 과열되기 시작했다. 리버풀 서포터들은 맥주병이나 경기장의 시멘트 조각 등을 던지며 Z구역의 유벤투스 팬들을 내쫓으려 하였고 이에 유벤투스의 서포터들도 폭력적으로 응수하였다.
그리고 참사가 일어났다. 치열한 싸움에 격분한 리버풀의 서포터들이 허술한 철조망과 경찰들을 넘어 Z구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서포터들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오자 Z구역의 사람들은 출구를 향해 도망갔는데, 그 과정에서 Z구역의 외곽 콘크리트벽이 무너지며 39명 사망, 600명 이상 부상이라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광분한 유벤투스의 수많은 서포터들도 폭동을 일으켰고 약 2시간 동안 경기장은 아수라장과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대소동에도 경기는 진행되었는데, 유벤투스의 공격수인 보니에크가 페널티 박스 바깥쪽에서 오심으로 얻어낸 PK를 플라티니가 성공시키며 1대0 승리를 가져갔다. 경기 종료 후 이미 사임을 예고했던 조 페이건 감독은 씁쓸하게 리버풀을 떠났다. 또한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리버풀 서포터들에게 있다는 결정이 내려지며 34명이 체포되는 등 여러 형사적 처벌이 가해졌다.
더 나아가 리버풀은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이는 잉글랜드 리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잉글랜드 리그 팀들은 5년간 UEFA 주관 대회 금지, 리버풀은 6년간 금지라는 징계가 내려졌다. 그 이후 유럽리그는 세리에 A가 주도권을 잡았으며 징계가 풀린 후에도 잉글랜드의 클럽들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이처럼 몇몇 팬들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사고는 특정 구단과 리그를 끔찍한 위기로 몰아넣는 상황을 초래했다. 헤이젤 참사는 분명히 리버풀 그리고 축구계에 영원히 남을 흑역사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축구의 규정들과 팬들은 변화하였으며 이는 축구계가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됐다. 역사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자는 후대에 같은 것을 반복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임동근 Editer '리버풀의 위기는 과연 자연재해였을까'
리버풀에게 20-21시즌은 악몽과 같았다. 2015년 클롭 감독 부임 이후에 가장 힘들었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중반 창단 최초로 홈 6연패를 기록하며 8위까지 추락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리버풀이 이토록 힘든 시즌을 치러야 했던 이유는 주전 센터백들의 줄부상에 있다. 리버풀의 스쿼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반다이크가 5R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픽포드의 살인적인 태클에 의해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소에도 자주 부상을 당하던 마팁과 고메즈마저 부상을 당하며 리버풀은 미드필더인 헨더슨과 파비뉴를 센터백에 기용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20-21시즌 리버풀의 위기는 자연재해였을까? PL 빅6라고 불리는 팀들 중 리버풀의 스쿼드 뎁스는 얇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수비진 뎁스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만연했다. 물론 반 다이크가 철강왕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나머지 주전 센터백인 마팁과 고메즈는 시즌을 진행하면서 항상 부상을 달고 다녔기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양쪽 풀백인 아놀드와 로버트슨도 리그 탑급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두 선수의 마땅한 후보 자원이 없던 것도 문제였다. 실제로 두 선수 모두 시즌 중에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퍼포먼스가 저하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PL에서 두꺼운 스쿼드 뎁스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맨시티에 비하면 리버풀의 스쿼드 뎁스는 처참한 수준에 속한다. 1군 스쿼드의 수준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후보 선수들의 수준은 차이가 심하다. 두터운 스쿼드 뎁스 덕분에 맨시티는 한 두명의 주전 선수가 부상을 당하더라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리버풀도 더 나은 시즌과 리그 우승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보강이 이뤄져야 한다. 클롭이 예전처럼 게겐프레싱 전술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리버풀의 전술은 필드 위의 모든 선수들에게 많은 활동량을 요구한다.
어쩌면 20-21시즌 리버풀이 맞이한 위기는 시작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21-22시즌은 지난 시즌의 위기를 씻어내고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위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더 깊은 늪으로 가는 교두보가 될지 리버풀의 미래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김건호 Editer '위기를 타개한 대구FC의 비상'
축구에서의 위기는 기회만큼이나 흔하게 찾아온다. 예기치 못한 선수의 부상, 에이스의 이적, 선수단의 피로 누적 등 축구에서 위기는 수없이 찾아오기에 그것들을 줄이거나 없애는 게 목표가 아닌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내는지가 중요한 법이다. 2021시즌 K리그에 이러한 위기들을 잘 이겨내고 시즌 초반의 부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전반기를 보낸 대구FC(이하 대구)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구의 시즌 초반은 그저 악몽이었다. 팀의 주축이라 불리는 선수들이(에드가, 박기동, 김우석, 홍정운 등) 이 시즌이 시작되어도 부상으로 인해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였다. 부상은 아니었지만 구단과의 계약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3월 24일까지 명단에 등록되지 못해 출전이 불가능했던 정승원 또한 대구에겐 악재였다. 지난 2020시즌을 나름 성공적인 5위로 마무리한 대구는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 고민 섞인 여론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불행히도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실제로 시즌 첫 5경기에서 2무 3패. 5경기에서 가져온 승점이 2점뿐이었다.
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대구는 오히려 절치부심하며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6라운드에서 우승 타이틀을 노리는 울산 현대를 상대로 시즌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팀 수비의 핵심자원 중 한 명인 홍정운 선수도 복귀하여 그라운드를 밟았다.이어진 7라운드에서는 에드가와 정승원 선수의 복귀가 이뤄졌다. 차근차근 팀의 베스트 라인업으로 돌아가고 있는 대구였다. 대구의 최근 10경기 무패행진이 시작된 것은 10라운드 서울과의 경기부터였다. 10라운라부터 19라운드까지 10경기 동안 대구는 8승 2무 승점 26점을 획득하며 성공적으로 전반기를 마쳤고 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에서도 4경기에서 3승 1패를 기록하며 16강행에 가까워지고 있다. ACL이 올해로 두 번째 참가인 대구는 2019년 첫 번째 참가에서 이루지 못한 16강의 꿈을 올해는 현실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대구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병근 감독의 고집스러운 역습 전술 타파이고 두 번째는 새로 영입 안용우, 이근호 그리고 이용래 선수의 활약이 덕분이다. 또한 늦지 않게 부상에서 회복해 시즌 초반 명단에 다시 이름을 올린 선수들 또한 새로운 영입생들과 같은 효과를 파생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적절하게 타개한 대구의 비상은 K리그 팬들의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다.
석지훈 Editer '위기의 서울'
FC서울은 새로운 감독인 박진섭과 함께 팔로세비치, 나상호 등을 영입하며 스쿼드 보강에 힘썼다. 이에 더해 시즌 초반 주장 기성용을 중심으로 팀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다져나갔다. 자연스레 명가의 부활을 꿈꿨고 그 꿈이 이번 시즌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순위는 11위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FC서울이라는 명가가 강등 위기 신세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첫번째 이유는 대책 없는 이적시장이다. 서두에서 제시한 팔로세비치와 나상호 등 유려한 자원들을 영입하긴 했지만 이들의 활약이 너무도 미비했다. 사실상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85년생인 박주영밖에 없었고 수비진의 리더는 전무했다. 또한 오산고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중이였던 윙어 포지션을 결코 싸지 않은 값에 두명이나 사왔다. 사실상 공격진과 수비진 모두 적절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공격력에 있다. 이 역시 이적시장의 영향이 크다. 그들의 공격력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17경기 동안의 평균 슈팅과 총 득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부진하기 전 6경기에서의 평균 슈팅과 득점 기록은 각각 슈팅 13.8회, 득점 8골이었던데 반해 그 후 11경기에서는 슈팅 8.2회, 득점 9골에 그쳤다. 그 뿐만 아니라 부진한 11경기 동안 페널티킥 득점이 4골에 달하고 필드골은 5골뿐이었다. 즉 FC서울은 경기당 평균 11회의 슈팅을 창출함에도 불구하고 득점이 1골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은 단편적인 지표를 통해서도 나상호, 팔로세비치, 조영욱, 박주영이라는 걸출한 공격 자원을 보유한 FC서울의 답답한 공격력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C서울에겐 반등 포인트가 존재한다. 순위표를 보면 아직 6위인 제주와의 승점차가 5점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번 여름이적시장에서 외국인 공격수 가브리엘 바르보사와 노련한 해외파 공격수 지동원을 영입하며 공격진 보강에 성공했다. 일명 ‘나팔바지’라고 불리는 공격진을 형성한 FC서울의 후반기가 기대되는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만약 남은 이적 시장 기간 동안 수비진의 적절한 보강도 이뤄진다면 FC서울은 틀림없이 명가를 다시 재건해 그들의 영광의 시대를 재현할 것이다.
신중혁 Editer '위기의 사울은 반등할 수 있을까'
최근 5시즌 동안 리그에서 꾸준히 25회 이상 선발 출전을 하던 선수가 이번 시즌에는 22경기 선발에 그쳤다. 같은 기간 동안 5개 이상 기록하던 공격포인트도 3개로 줄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간판 미드필더 사울 니게스의 이야기이다.
사울은 아틀레티코 유스 출신으로 13-14시즌 라요 바카예노에서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보낸 뒤 14-15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로 복귀했다. 그 이후 20-21시즌까지 무려 335경기를 뛰며 팀의 핵심적인 선수로 발돋음했다. 왼쪽 풀백까지 소화가 가능한 멀티 자원인데다 철강왕의 면모까지 보여주며 지난 시즌 리그 35경기 선발 출장했고 6골을 기록했다. 반면 이번 시즌 성적은 성인 무대에 데뷔하고 가장 최악이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첫 번째는 시메오네 감독의 쓰리백 운영이다. 센터백에 세 명을 배치하게 되면 양쪽 윙백, 스트라이커, 2선 자원들을 제외하고 미드필더의 수는 최대 세 명 이하로 제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시즌 아틀레티코의 경우 기본적으로 5명의 수비진을 구축하고 공격진에 수아레스, 코레아를 주로 기용하면서 최대 세명의 중원 조합 구성이 가능했다. 이 세 자리에는 팀의 주장 코케를 비롯해 요렌테, 르마, 에레라, 사울 등이 주전 경쟁을 펼쳤다. 즉 사울에겐 지난 시즌보다 험난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두 번째로 요렌테와 르마의 성장이다. 지번 시즌 리버풀과의 챔스 경기에서 깜짝 활약한 이후 팀을 8강으로 이끌었던 요렌테가 이번 시즌에 꽃을 피웠다.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리그에서만 12골 11도움을 기록했고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찼다. 르마도 왼쪽 윙백 카라스코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사울을 제치고 상당한 출전 시간을 보장받았다.
마지막으로 사울 개인의 폼이 떨어졌다. 첫 경기부터 PK를 실축하며 불안한 출발을 알린 사울. 통계로 보아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하던 사울의 장점인 걷어내기, 클리어링, 가로채기, 태클 성공수 심지어 성공 확률까지 16-17시즌 이후 가장 좋지 않았다. 이는 유로 2020 스페인 대표팀 낙마로 이어졌다. 설상가상 아틀레티코가 로드리고 데파울을 영입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울의 이적설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챔피언스리그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 후 신장 내상과 내출혈로 인해 2년간 카테터를 착용하고 피를 흘리며 팀에 헌신한 사울 니게스. 그는 아직 26살의 유망한 선수이다. 과연 사울이 지금의 위기를 떨쳐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위기가 사울의 축구 인생을 바꿔 놓을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홍연진 Editer '스페셜 원 무리뉴는 이대로 몰락할 것인가?'
조세 무리뉴 감독은 언제나 스페셜원이었다. 포르투,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 다양한 팀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포르투와 인터밀란에서는 유럽 정상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스페셜한 모습은 2015년 첼시에서 세 번째 프리미어리그(이하 PL) 우승을 차지한 이후 현재까지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단연코 무리뉴는 PL을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첼시를 이끌고 세 번의 리그 우승, 04-05시즌 리그 15실점은 현재까지도 엄청난 업적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그랬던 무리뉴는 최근 6년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경질 당하며 가파른 내리막을 걷고 있다. 첼시에서는 디펜딩 챔피언의 충격적인 몰락을 겪었고 맨유에서는 엄청난 지원을 받았음에도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토트넘에서는 리그컵 결승전을 앞두고 경질되는 굴욕까지 맛봤다.
이러한 부진의 원인으로는 세부전술의 부재와 잦은 책임 회피성 발언 그리고 그로 인한 선수들과의 불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즉 매번 선수단 장악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세 팀에서 세 번이나 반복한 무리뉴, 이제는 이를 단순 실수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의 남자 무리뉴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넨 팀은 바로 세리에A의 AS 로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한다는 점에서 무리뉴와 로마는 동병상련의 처지다. 이제 무리뉴는 한때 자신과 스쿠데토를 두고 경쟁했던 로마와 함께 절치부심의 기회를 얻었다. 사람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본인부터 달라져야 한다. 전술적인 부분과 선수단 관리 등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그러나 로마에는 과거 무리뉴와 좋지 못한 관계였던 두 명의 선수가 있다. 바로 미키타리안과 스몰링이다. 두 선수 모두 무리뉴로부터 공개적인 비판을 받았거나 무리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전례가 있는 선수들다.또한 현재 로마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스몰링과 다르게 미키타리안은 지난 시즌 팀 내 출전 시간이 전체 2위였으며 15골 13도움을 기록한 에이스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뉴가 이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역시도 화젯거리다. 만약 로마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무리뉴는 본인의 하락세에 쐐기를 박게 될 것이고 구시대적인 전술과 전술적 고집으로 인해 몰락한 카펠로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성욱 Editer '무리뉴가 토트넘에 남기고 간 스노우볼'
모두가 기대감에 부풀었다. 토트넘이라는 팀과 무리뉴라는 사람의 조합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오히려 실망감으로 결론지어졌고 토트넘과 무리뉴의 동행은 새드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무리뉴의 재임 기간 동안 토트넘은 갈수록 늪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위기에 빠져들게 됐다.
무리뉴는 포르투, 첼시, 인터밀란,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클럽을 거치면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던 감독이고 토트넘도 이 점에 끌려 그를 선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리뉴의 최근 행보는 과거의 명성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첼시에서의 마지막 시즌, 맨유 재임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비판을 받았고 토트넘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남긴 채 부정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무리뉴가 토트넘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드러냈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선제골을 넣은 직후 과도하게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다가 수비진의 실책으로 인해 승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공격에서도 손흥민과 케인으로만 득점이 집중된다는 문제가 있었다. 언론에 대처하는 모습도 과거와 같이 공격적이었다.
은돔벨레, 산체스, 손흥민에 대한 저격성 인터뷰, 알더웨이럴트의 결장에 대한 거짓말 논란 등 팀에 해가 되는 발언을 남발했고 이는 연이은 챔피언스리그 진출 실패, 선수단의 신임을 잃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그 여파로 손흥민, 케인을 비롯한 여러 선수들의 이적설이 지속해서 파생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무리뉴를 경질한 토트넘은 차기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상당한 난항을 겪었는데, 나겔스만을 시작으로 콘테, 폰세카 등 다양한 인물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선임 과정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무산됐다. 자연스레 보드진의 팀 운영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또한 감독이 장기간 공석인 상태에서 시즌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상 감독 선임의 장기화는 무리뉴의 경질이 가져온 스노우볼인 셈이다.
현재 토트넘은 장기간 감독 선임 과정 끝에 전 울버햄튼 감독인 누누 산투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여론은 그의 전술이 무리뉴와 비슷하기 때문에 비판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무리뉴라는 사람에 의해 파생된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리뉴는 분명 토트넘을 지금의 위기로 몰아넣은 요인 중 하나다. 만약 누누가 토트넘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무리뉴라는 스노우볼은 다시금 고개를 들고 토트넘을 위기로 끌고 갈 것이다.
조재희 Editer '리버풀 암흑기의 시작'
수많은 트로피와 역사를 미루어 볼 때 리버풀은 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명문 팀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2009년 항상 밝을 것만 같았던 리버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게 됐다.
2005년 리버풀은 베니테즈 감독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주가를 올렸다. 이를 미국의 자본가들이 놓칠 리 없었고 2007년 2월 전폭적인 투자를 약속하며 사업가 질레트와 힉스가 공동 인수를 발표했다. 새로운 구장 건립을 목표로 내세웠기에 많은 팬들이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던 반면 기존의 좋지 못했던 미국인 사업가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섞인 시선 또한 공존했다.
2007년 아쉽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그친 리버풀의 공동 구단주는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레스, 바벨 등 스타 선수들을 영입했고 드디어 맨유, 첼시의 양강 구도를 위협할 수 있는 스쿼드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리그에서는 4위를 기록하였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다시 한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이전과 비교하여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꾸준한 지원을 요구했던 베니테즈와 공동 구단주 간의 불화가 발생하였고 이를 토대로 팀은 내부적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베니테즈는 꾸준히 제라드의 파트너로 알론소 대신 아스톤 빌라의 가레스 베리를 원했고 구단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론소를 처분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2009년 여름 베리가 맨시티로 이적하며 베니테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에 마음이 상한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났고 그의 대체자도 구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체자로 영입된 아퀼라니는 이듬해 부상으로 시즌 9경기 소화에 그쳤고 끝내 알론소를 대체하지 못한 리버풀은 에이스 토레스 마저 첼시로 이적하며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로 인해 베니테즈 감독은 경질을 면치 못했다.
이를 기점으로 리버풀은 기나긴 암흑기를 걸었다.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로 불렸던 리버풀에게 찾아온 사상 최고의 위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동 구단주는 엄청난 부채를 남겼고 순위는 중위권을 맴돌았다. 지금은 팬들의 무조건적인 지지, 새로운 구단주의 지원 그리고 위르겐 클롭의 리더십과 함께 다시 한번 최고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들에게 도래했던 암흑기 즉 위기는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순간이었다.
어떤 팀이든 사이클이 존재한다. 리버풀의 암흑기는 한 시대의 사이클이 종료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리버풀이 맞이했던 암흑기가 무조건 마이너스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당시의 위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위기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이 리버풀의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말이다.
한예준 Editer '팰리스의 위기'
PL의 중위권 팀 중 하나인 크리스탈 팰리스는 13-14시즌 승격한 이후 무려 9시즌 간 생존하고 있다. 에이스인 자하가 여전히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20-21시즌에는 QPR에서 영입한 에제까지 가세하며 공격력을 완벽히 보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쿼드의 노쇠화로 인해 팀의 사이클이 점차 하락곡선을 형성하는 모양새다. 팰리스 중원의 핵심인 맥아더-밀리보예비치 라인의 퍼포먼스는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고 케이힐이 중심인 수비진 역시도 마찬가지다. 21-22시즌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팀의 핵심 멤버로 성장한 에제가 심각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21-22시즌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매시즌마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자하의 이적설은 팀의 사기를 흔들고 있다.
이에 더해 선수들과의 계약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6월 30일 자로 총 12명의 선수가 자유계약으로 팀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 중에는 팰리스의 핵심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타운젠드, 케이힐, 반얀 홀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써 현재 1군 스쿼드에 남아있는 선수들은 단 17명뿐이다. 그야말로 대대적인 보강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PL 개막을 한 달 정도 남겨놓은 상황에서 총체적 난국이 벌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감독 선임에 있어서도 난항을 겪었다. 호지슨 감독이 20-21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이후 약 2개월 간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분데스리가 중위권에서 굵직한 커리어를 남겼던 파브르가 선임되는 듯했지만 결국 무산되며 팰리스는 새로운 감독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에는 어린 자원들을 잘 활용하는 감독인 스완지의 쿠퍼나 무직 상태인 램파드와 연결되었지만, 결국에는 니스에서 꽤 좋은 모습을 보였던 비에이라를 선임하며 급한 불을 껐다.
이렇듯 지금의 팰리스는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번시즌 리그 최다 실점 2위에 위치하며 불안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던 포백은 전력 강화가 필요해 보이고 기동력 부분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미드필더진 또한 세대교체가 절실하다. 에제의 합류로 숨통이 트이는 듯했던 공격진도 다시금 자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과연 이번 이적시장이 끝난 이후 팰리스는 선수 보강에 실패하여 강등이 유력한 팀으로 남아 있을지, 아니면 좋은 보강과 함께 중위권을 넘어서 다크호스로 부상하는 팀이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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