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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Mar 14. 2021

시간의 온도#2

아주 먼 땅에서 첫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100℃


 우리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게 온도를 빼앗긴다.


 삼촌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었어. 보통 부모님들은 자식이 어릴 때 많은 걸 시키고 싶어 하잖아. 그래서 지금 네 엄마가 된, 우리 누나와 함께 피아노 학원을 다녔어. 바이엘을 거쳐서 체르니까지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재미가 생기면서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이 싫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재미있던 피아노가 싫증 나기 시작한 거야. 피아노 선생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매일매일 반복된 연습이 지겨워서였을까, 다른 더 재미있는 일들이 생겼던 걸까. 아무튼 그때부터는 학원에 가는 일은 숙제가 되었어. 아프다는 핑계를 만들고, 학교 숙제를 해야 한다고 투정을 부렸던 거 같아. 피아노 학원에 가는 시간만 기다리던 삼촌이, 학원에서 끝나는 시간만 보고 있는 삼촌으로 바뀌어버린 거야.

 어릴 때만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든 일들이 다 그런 것 같아. 삼촌이 정말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이곳에서도 그랬으니까.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다 긍정이었어. 하지만 내 눈앞에 장애물이 하나씩 둘씩 보이고, 삼촌이 꿈꿔 온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기 시작하면서 긍정이던 모든 것들이 무서우리만큼 부정으로 바뀌기 시작했어. 함께 일하는 사람과 언쟁하기 싫은 마음에 자주 할 말을 삼켰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시작하고 싶어서 작성한 제안서들도 거절을 당했지.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들이 결과적으로는 비판을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음을 알게 되었어. 그때부터 삼촌의 행복했던 해외봉사는 온갖 핑계로 빠지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이 돼버린 거야.


 그리고 삼촌은 생각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 안에 있는 온도를 빼앗아 가고 있는 거야. 함께 일하는 나의 동료, 이해하기 힘든 에티오피아의 문화, 귀를 막고 걸어야만 마음이 편한 길거리 등등. 이런 것들이 나를 못살게 굴고 나의 뜨거움을 훔쳐가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차가운 거야라고 생각했지. 정말 그들은 혹은 그것들은 내 안의 온도를 빼앗아 가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만 그때는 부정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다른 창문을 통해 다른 걸 바라볼 여유가 없었어. 이제 와서는 그것들이 후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 부정이 만들어낸 미움이 가득했던 시간들이.   

 

 지유야. 뜨거움은 정말 다른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 있는 물질일까. 그렇다면 돌려받을 수도 있는 걸까.


Bahir Dar, Ethiopia(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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