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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Mar 16. 2021

시간의 온도#4

아주 먼 땅에서 첫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발열장치


내 눈앞에는 수없이 많은 장작이 쌓여있다.


 삼촌은 원래 책 읽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 부모님이 자주 책을 사주셔도 그건 나의 몫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집 책꽂이의 몫이었지. 공부하라는 소리보다 책 읽으라는 소리를 더 많이 들으면서도 삼촌은 열심히 책을 읽지 않았어. 그러다가 20대 초반의 어느 시점부터 조금씩 책을 읽기 시작했어. 신기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참 재미있었어. 용돈을 받으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했고, 서점에도 자주 가게 되었어. 그런데 새로운 많은 책을 사다가 문득 알게 되었어. 예전부터 우리 집에 있던 책들은 여전히 그대로 쌓여있었던 거야. 그때부터는 습관적으로 책 사던 걸 멈추고 이미 있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어. 신기하게도 삼촌에게는 뒤늦은 책들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어. 그 책에게는 선물해준 사람들의 의미가 하나하나 담겨있었거든.


 지유야. 만약 우리 집에 벽난로가 있다면 우리는 불을 때기 위해 많은 장작을 필요로 할 거야. 불이 언제 꺼질지 모르고, 언제나 장작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벽난로 옆에 늘 장작을 쌓아두려고 할 거야. 삼촌은 2년 전 많은 장작을 비행기에 싣고 이곳에 왔어. 그리고 따뜻함을 지속하기 위해 계속해서 벽난로 속으로 장작을 넣었지. 처음에는 무척이나 따뜻했어. 어쩌면 뜨거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싣고 왔던 모든 장작을 다 써버려서 추위 속에서 떨기도 했어. 더 시간이 지나자 내가 지금 따뜻한 건지 추운 건지도 모르는 시간이 왔었지. 삼촌은 늘 생각했어.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장작을 가지고 올 걸


 삼촌은 늘 생각했어. 한국에는, 저곳에는, 그곳에는 참 많고 좋은 장작이 있는데. 거기서 좀 더 많은 장작을 가지고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삼촌은 바보였던 거야. 이곳만 빼고 모든 곳에 장작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곳보다는 나은 그곳이 있다고 늘 생각했으니까.

 앞서 보면 진흙탕이지만, 뒤돌아봤을 때 좋지 않았던 길은 없었어.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도 삼촌의 옆에는 항상 많은 장작이 쌓여있었어. 학교 때문에 힘이 들 때는 현지 친구들이 옆에 있었고, 몸이 아파 힘이 들 때는 다른 단원들이 있었고, 후회에 힘이 들 때는 가족들이 옆에 있었어. 소중한 건 아득히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었어. 지유야. 지금 너의 장작은 어디에 있을까?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 삼촌은 11시 55분이 된 것 같아. 너는 나에게 처음의 뜨거움을 선물해주고, 마지막쯤의 위로도 선물해줬네. 삼촌은 이렇게 시간과 마음의 온도를 지났고, 지나고 있어. 닿을 수 있는 모든 것들에는 온도가 있다고 했었지? 우리가 시간과 마음에 닿았는지, 그들이 우리에게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먼 훗날 이 편지를 다시 보며 너와 얘기하는 시간이 오기를 바랄게.

 지유야! 소중한 것들은 어느새 우리에게 小中이 되어버려서, 있지만 있는지도 모른 채 또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갈 때가 너무 많아. 大만이 가치 있는 거라고 말하는 삶 속에서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기를 기도할게. 모든 시간들을, 모든 온도들을 사랑하기를 다만 바랄게. 안녕:)


Bahir Dar, Ethiopia(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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