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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Mar 19. 2021

오랫동안 비밀이었던 마음

수치심

 어릴 때부터 우리 집은 이사가 무척 잦았다. 처음에는 경제적 어려움이었지만, 나중에는 주기적으로 발령이 나는 아버지의 회사 때문이었다. 집을 옮기는 일은 괜찮았지만, 지역을 옮기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무언가를 두고 떠나는 것 같은 혹은 무언가를 챙기지 못한 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소심하고 겁이 많고 불확실성을 두려워했다. 며칠 전에 인터뷰 형식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데, MC가 게스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과거로 돌아가 소통을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뭐라고 이야기하고 싶나요?


 나는 곧바로 초등학교 6학년의 내가 생각났다. 이미 모두 다 친해져 있는 무리에 마치 이방인처럼 침입하게 된 나. 첫날 첫 수업은 체육이었고, 시작부터 나는 기합을 받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전 주에 체육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약속을 했는데 그걸 우리 반 아이들이 안 지켜서였다. 나는 전학생이라고 소개를 하기도 전에 얼떨결에 기합을 받게 되었고, 첫날의 긴장감과 함께 서러움이 밀려서 기합을 받다가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가장 당황한 것은 나였다.

 나는 그 이후로 내가 울었던 모습을 아주 수치스럽게 기억했다. 꽤 오랜 시간, 아마도 중학교 때까지 눈물이라는 단어가 친구 입에서 나오면 내 얘기를 하는 걸까 봐 불안했다. 내가 기억하는 내 모습을 친구들도 똑같이 기억하고 있을까 봐 재빠르게 대화 내용을 바꾸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나는 나의 눈물이 수치스러웠고, 더 나아가 나의 약함이, 의연하지 못함이 수치스러웠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의 나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고, 도망치느라 늘 불안했던 중학교 3년을 안아주고 싶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주고 싶고 너의 눈물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게 너의 서러움이고 억울함이니 결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잘 들리지 않더라도, 너의 그 연약함이 이제는 참 좋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Ronda, Spain(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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