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단 Mar 22. 2021

자기 위안

최선을 다해 나를 위로할 것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익숙한 길을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걷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웃긴 일이다. 그저 걷기 위해 30~40분을 운전하는 내 꼴이. 새로운 장소를 걸을 때는 많은 것들이 새롭다. 인도의 폭, 나무 종류, 바람 냄새뿐만 아니라 마주치는 사람의 표정과 직업도 바뀌는 듯하다. 한참을 걷다 보면 내 안에도 낯설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굳이 언어로 바꾸자면 새로운 관점, 의미 같은 것.


 어린 시절 나는 작은 고통에서 크게 흔들렸다. 내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거 같았다. 그럴 때면 부모님은 항상 산책을 가자고 하셨다. 어떤 날은 배드민턴을, 어떤 날은 줄넘기를 챙겨서. 그리고 오래 걸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내 기분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더 가벼웠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힘들 때면 산책을 나선다. 걷기의 효과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예전부터 그랬기 때문이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했던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내 손을 잡고 산책에 나섰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지금 나는 내 손을 잡고 산책에 나서는 것이다. 유아기에 부모의 품에 안겨서 충분한 위로와 진정을 경험해본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위로하고 진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 부모의 품은 없어졌지만, 그와 유사한 혹은 그로부터 비롯된 자기 품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자기 위안의 방법은 또 다른 힌트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모든 게 다 수월한데 유난히 산책하고 싶어 지는 때가 있다. 새로운 장소에서 걷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때 내가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고통과 자기 위안을 연결시키는 것 같다. 마치 바늘과 실처럼. 바늘이든 실이든 뭐라도 떠올려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마음이 보내는 사소한 신호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최선을 다해 나를 위로할 .


파주출판단지, 대한민국(2020)
이전 05화 고통의 유무(有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