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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Feb 16. 2021

지우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나의 오랜 습관은 지우기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지우는 건 아니지만, 기록한 것의 절반 이상은 지웠던 것 같다. 글을 쓸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심지어 나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도 번번이 지웠다. 아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 같다. 그게 내 마음 엔지, 네 마음 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록은 기억과 달라서, 지우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었고 꽤나 번듯한 것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런데 꼭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질감의 것들은 대부분 지워졌는데, 운 좋게 사각지대에 숨어있던 것들. 그때 지워져야 했던 것들을 다시 보는 기분은 묘했다. 솔직히 좋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한참을 그 사진, 그 글을 보며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생각했지만, 달라진 건 나 밖에 없었다. 그걸 음식에서는 숙성이라 부르고, 삶에서는 성숙이라 부른다나.


 이렇게 되고 나니 그동안 강박적으로 지웠던 수많은 기록이 아까웠다. 그때의 내가 발견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내가 발견할 수 있는 혹은 언젠가의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기록들. 그리고 순간마다 부여될 수 있는 나름의 의미들.  처음으로 바깥에 글과 사진을 올리기로 마음먹으며 나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지우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Barcelona, Spain(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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