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깨달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 1:3]
어둠 속에서 빛이 창조된다.
혼돈이 질서가 되고
고통이 쾌락이 되는 그때
악이 선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탈바꿈된다.
어둠과 빛,
혼돈과 질서,
고통과 쾌락,
악 그리고 선,
죽음과 삶..
동전의 양면 같은 각각의 반대의 개념은 어쩌면 하나의 몸을 이루는 부부 같다.
무슨 소리이냐고?
정 반대의 개념 같지만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빛과 어둠
빛과 어둠은 관계는?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어둠은 정의되지 않는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창조된 빛은 어떤 의미일까? 어둠이 있기에 빛은 소망이며 생명이 된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이 필요하다.
혼돈과 질서
혼돈과 질서를 어떻게 설명할까? 혼돈은 창조인 동시에 파괴이며 새로운 것의 근원이다(주1). 지난 글에서 인용한 것처럼 혼돈은 질서를 위한 변화이다. 삶은 혼돈과 질서 그리고 혼돈과 질서를 반복하며 그 경계에서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 혼돈을 경험한다. 이러한 새로운 감각은 나를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익숙한 것과 생소한 것이 서로 조화롭게 만나 전체의미를 새롭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혼돈과 질서의 기막힌 조합 아닐까?
고통과 쾌락
고통은 쾌락과 어떻게 한 몸이냐고? 고통이 없으면 쾌락도 없다. 고통 후에 쾌락을 느끼면 어떠한 사람이 될까? 고통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고통을 감수한다. 따라서 의지적인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몰입을 선사하는 선량한 고통이 쾌락과 하나라는 것을 몸소 경험하는 순간이 바로 내가 성장하는 지점이 아닐까?
선과 악
'악'은 무엇일까. '악'은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본래의 자리를 벗어난 것. 창조주의 질서대로, 창조주의 뜻대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절대 '악'으로 믿는 사탄은 원래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해 존재하는 피조물이었다는 것. 창조주의 뜻에 어긋나 스스로 떨어져 나온 '악'이 되었지만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며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했던 하나님의 지상 사역을 이루기 위해 쓰임 받는다. 가룟유다에 의해서 말이다.
삶과 죽음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고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죽음을 향해 '하루 걸음' 나아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을 다하는 날이 온다.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다.
끝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유한한 삶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된다.
역설의 깨달음
양극이 하나가 되고 또 양극이 하나가 되고 다시 양극이 하나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 둘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혼돈 속에 창조되는 질서를 경험하며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줄기를 발견하고 고통 속에서 선물같이 찾아오는 쾌락을 힘껏 안아준다. 선을 행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악을 도모하는 오늘의 불행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오늘을 살아 숨 쉬는 하루가 이토록 감사한 이유도 이러한 역설의 깨달음이 아닐까?
어둠 속에서 빛이 창조된다.
혼돈이 질서가 되고
고통이 쾌락이 되는 그때
악이 선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탈바꿈된다.
주1)조던 B.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혼돈의 해독제), 2018, 메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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