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

나의 오류를 대면하고 자의식을 해방시키는 것

by Dana Choi 최다은


선과 악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까?



나는 빈수레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을 듣고 그게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물론 불과 2달 전까지 그랬다. 당연하지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빈 수레 일리가 있나?


그런데 이제는 안다. 내가 빈 수레였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주변인들을 가르치려고 했구나. 늘 말이 많고 상대를 가르치려는 교만한 기질이 매우 큰 사람이다. 선생질을 즐겨하는 사람이다. 사실 지금도 교만하다.


그런 내가 빈 수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미칠 듯이 괴로워서 나의 무지 앞에 꺼억꺼억 통곡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감사하다. 평생 내가 빈 수레인 줄 모르고 요란하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겸손은 겸손해야지…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옳지 않았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저절로 겸손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가장 많이 몰두한다.

자, 그렇다면 선과 악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할까? 갑자기 왜 선과 악을 거론하냐고?


오늘날 BTS를 만든 방시혁 의장의 유명한 말이 있지 않나? "사람이 논리로 설득이 돼?" 그렇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 인간의 모든 판단은 항상 주관적이다. 모든 평가는 보는 사람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결정되며 따라서 자신과 관련해서만 항상 옳다. 당신은 늘 옳다.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는데, 나는 절대 이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이 완전함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가장 많이 몰두한다(주1). 굉장한 아이러니 아닌가! 거부하고 방어하는 것도 결국 관심을 기울이고 몰두하는 것이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나의 교만함에 대해서 떠올린다. 나는 교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겸손할 것이야! 몰두하는 순간 나는 교만해진다. 그러니까 내 의식의 영역에 존재하지 않고 나를 불완전하게 만드는 그 원리를 만약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장본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충분히 교만한 사람이다'라고 받아들이는 자세. '나는 오류가 많은 죄를 가진 인간이다.'라고 대면하는 자세. 결국 내가 죄인임을 매 순간 깨닫는 마음의 낮아지는 상태를 반복하며 훈련하는 길이 양극성 자체인 죄에 대해 멀리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극적인 의식, 자의식이 바로 죄이다.

양극성? 양극성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나라고 말함으로써 이미 나가 아닌 것, 즉 너라고 여기는 모든 것과 거리를 둔다. 이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인간은 양극성의 포로가 된다. 그러므로 자아는 인간을 대립의 세계에 묶어둔다(주2).


인간의 의식은 모든 것을 대립쌍으로 쪼개고 나눈다. 대립되는 것은 서로 모순관계에 있기 때문에 매번 반대를 배제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고착화한다(주3).


부연 설명을 하자면, 자아와 비-자아, 남과 여,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이런 형태로 늘 대립관계를 나누고 양극적인 의식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인식력이라 하고 조던피터슨은 자의식이라고 했다.


성경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에서 보자.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간은 양극성을 알아볼 수 있게 되고 통일성(무한한의식)을 상실하고 양극성(인식력)을 얻게 된다.


인간이 자신이 양극적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은 인간은 죄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조던피터슨이 말한 자의식은 한쪽 극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양극성 그 자체이다. 죄는 따라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행동에는 죄가 있다. 인간의 자의식은 죄이다. 양극의 세계는 악마적 본성에 속한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것이 여기서 성립되는데 우리는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선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나의 오류를 대면하고 자의식을 해방시키는 것.

나의 과오를 인정하게 되면(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순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오류를 대면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행으로 포장한다고 해도 죄인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오히려 옭아매는 꼴이다.


통일성 즉 온전함에 도달하는 길은 도피하고 외면하는 것으로 불가능하다. 직접 부딪혀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자기 존재의 모순됨을 깨닫고 의식적으로 깨우쳐 가면서 이 양극성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하게 헤쳐 나가는 사람이 자아가 만들어낸 대립관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통일성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간다. 비록 그러한 과정에서도 항상 죄를 짓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과 악을 평가할 때는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까? 그는 자의식적으로 행동하는가? 그 일을 자아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하는가? 이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나는 내 행위가 스스로 자의식에 의한 속박인지 해방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다.



당신은 자의식으로 행동하는가? (양극성, 죄, 악)

자아의 간섭을 받지 않고 행동하는가? (통일성, 완전함, 선)







주1,2,3)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 몸은 알고 있다, 2007, 이지앤


**Dana Choi, 최다은의 브런치북을 연재합니다. **


화요일 [건강한 가정은 작은 천국]

수요일 [새벽독서, 책과 나를 연결 짓다]

목요일 [판도라 상자? 열어야겠지?]

금요일 [브랜드 시야로 나 세우기]

토요일 [현실과 이상의 연결, 지혜로 말하다]


14일마다 [다나의 브런치 성장기록] 매거진이 발행됩니다. 한 달간 브런치 성장기록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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