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사랑하는 나의 엄마
엄마는 나의 어린 기억 속에서부터 여행을 좋아하셨다. 흔히 말하는 럭셔리와 아주 거리가 먼 여행이었다. 걷고 또 걸으며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주말마다 전국 8도 방방곡곡을 다녔는데 여행을 즐기지 않는 성향의 아빠와 나는 늘 불만이었다. 항상 어딘가를 가서 걷고 또 걸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자칫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엄마는 모험적인 여행을 추구하셨기에 여행 중 추억거리가 많다. 사실 지금에서야 추억이라 말하지만 그 당시는 매우 힘들었다. 때는 눈이 펑펑 오던 겨울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강원도를 향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아빠가 운전해 가는데 우리 차 말고 다른 차는 보기 어려운 데다가 눈이 많이 와서 찻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빠가 잠시 쉬어야 한다며 도로 옆에 갓길에 잠시 주차를 했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우리가 차와 함께 눈 속으로 묻혀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던 순간이었다. 그 이후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걱정과 염려가 많았던 내 성격상 엄마에게 계속 얘기했던 것 같다. “엄마 우리 어떻게. 우리 어떻게. 무서워”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면 (사실 너무 많아 추리기가 어렵다) 제주도를 배 타고 간 여행 하였다. 지금은 자가용을 싣고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이 유행처럼 자연스럽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 편하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엄마는 재미있는 추억을 하나 만들어 보자 하며 배를 제안했다. 말이 제안이지 가족들은 여행에 관해서 엄마가 대장이기에 따라가게 되는. 부산까지 차를 타고 우리 차를 배에 싣고 저녁을 먹고 배에 올라탔다. 타이타닉만큼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이렇게 큰 배도 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폭신한 침구도 없는 아주 큰 공간에서 함께 자야 한다는 사실도 맞이하게 되었다. 열악한 환경 탓이었을까. 잠이 오지 않아 우리 가족은 배 갑판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칠 흙같이 어두운 검은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쏟아져 내릴 것 같이 반짝 이는 별들이었다. 온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며 냉소적이던 사춘기 소녀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와... 엄마 너무 예쁘다 너무 예뻐...” 깜깜했던 바다와 하늘 속에서 빛나던 별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엄마는 유독 제주도를 사랑했다. 언젠가 또 제주도 여행 중에 우도를 간 적이 있는데 섬 둘레가 16킬로 미터 남짓 되는 작은 섬을 자전거를 타며 달리고 달렸다. 바다가 코앞에서 보이며 자전거 페달을 굴리는 풍경은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처럼 밀려와 내 감성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우도에서 왜 자전거를 타는 고생을 할까 우리 엄마는... 불평을 하던 뾰로통한 입술이 반달 모양으로 환하게 미소 짓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하다.
생각해 보면, 불편하고 불안하고 왜 또 힘들게 가냐며 불만이었던 여행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불편함을 겪어보며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기 원했던 엄마의 진심이었을까?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에게 불편한 것을 경험하고, 부족한 것을 느끼게 하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는 것을 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사주고 아이가 불편함이 없이 키우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까? 모두가 상상하는 대로 가장 힘든 것은 아이 자신일 것이다. 소중한 아이를 조금은 부족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싶다. 자신이 몸소 터득한 것은 결코 남의 것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딸아이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알려준 경험을 나의 딸에게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