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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discovers Nov 26. 2022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인이 독일에서 미국 명절 지내기

나는 돌이켜 보면 항상 사서 고생을 하는 타입이다.


괜히 자격도 안 되는 직장에 패기 있게 지원해서 붙어버렸다가, 잘렸다가, 승소해서 복직하지를 않나,

혼자 해도 불안하고 벅찬 해외 유학을 굳~이 남자친구랑 같이 가겠다고 난리 쳐서 같이 붙어버리질 않나,

인플레이션이 한창인 판에 굳~이 미국 들렀다가 독일 오겠다고, 취소도 안 되는 저가 항공편을 구매해놓고 경유지인 일본의 코로나-비자 규정을 체크하지 않아서 여정 하루 전에 비싼 티켓을 날리지를 않나...

 와중에 새로 구매한 티켓이 경유지인 워싱턴에서 2시간 만에 A 공항에서 B공항으로 가야 하는 말도  되는 루트여서 막판에 200달러 주고 프라이빗 택시를 불러 겨우 겨우 비행기 시간을 더란다. 

엄마가 보면 뒷목 턱 잡고 쓰러지시겠지, 정보나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찾아와야 할 진짜 마지막 사람이다.

그래도 결국 결과만 보면, 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되게 되어있어, 의 전형이다. 결국 회사에는 복직했고, 독일에도 도착했으니까... 날린 돈은 벌면 되고, 인생은 길다.


안다. 무모하고 바보 같은 타입인 거. 나도 모든 걸 미리 조사하고 계획해서 척척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어영부영 흘러가듯, 아니 뭐랄까 좀 더, "굴러가듯" 사는 나 자신에게 스트레스받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제를 잘 넘겼기 때문에 오늘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사는 거 같다. 하루하루 내 목숨이 잘 붙어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랄까.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러나 조금만 더 욕심내서 도전하고픈 마음.


서론이 길었지만, 2022년 그 수많은 일들을 견뎌내고 독일에 잘 도착한 나와 내 남자친구, 그리고 베를린에 와서 3년 만에 재회한 친구, 이렇게 셋이서 Thanksgiving(추수감사절) 축하를 했다. 한국에서는 10만원 훌쩍 넘었을 가격의 재료들을 50유로에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시시덕 거리며. 매쉬드 포테이토, 트리플 치즈 맥앤치즈, 옥수수, 레몬즙과 로즈메리로 향을 내고 오븐에 구운 치킨 구이, 모차렐라 토마토 샐러드, 독일식 피자까지. 혀에 달콤한 미각이 닿는 순간, 마음속으로 감사하기만 하던 것들도 탄성이 돼서 터져 나온다. 2022년 한 해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눈앞에 있는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또 다가올 시간들에 대해서 마음 깊은 곳 따듯하게 준비하는 명절, Thanksgiving. 모두들 좋은 하루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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