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a discovers Dec 01. 2022

Schlanger, K-Pop

라자냐 파티

맨날 층간소음을 유발하던 위층 플랫에서 우리 플랫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사람들과 소셜라이징 할 기분은 아니어서 미적거리다가 다른 룸메들보다 30분 뒤에 8시쯤 느지막이 위층으로 향했다. 답례로 사 온 드라이한 레드와인 한 병, 스윗한 로제 와인 한 병을 들고 벨을 눌렀다.


산타 모자를 쓴 키 큰 친구가 문을 열어 줬다. 신발을 벗어두고 부엌에 오밀조밀 모여 앉아있는 친구들 사이로 들어갔다. 벽 위에는 서로 칭찬을 해줄 때마다 점수를 매겨주는 칠판과, 선반 위 각종 음식과 간식, 커다란 라디오가 눈에 띄었다. 같은 건물인데도 4명이 같이 사는 우리 플랫에 비해 6명이 사는 위층 플랫이 훨씬 크다. 피아노 달린 당당한 거실도 떡하니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구조이길래 위층이 아래층보다 더 넓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5명 이상 모이는 곳에 가면 꼭 한 명은 케이팝 팬인 듯하다. 요즘 케이팝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친구 한 명이 나도 몰랐던 "Forestella"라는 아카펠라 그룹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당장이라도 게임 속 보스와 싸워야만 할 것 같은 웅장한 오디오였다. 내가 아는, "요즘 유행하는 케이팝"하고는 좀 다르지만, 뭐 어찌 됐든 한국의 아티스트를 좋아해 줘서 기분이 좋다. 내친김에 2000년대 유행하던 케이팝이라며 "카라의 "미스터"와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를 틀어줬다. 나는 사실 상당히 오글거리는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밝은 분위기와 캐치한 가사, 심플한 메시지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여서 그렇게 얼떨결에 케이팝을 모두에게 전파했다. 그들도 독일의 오글거리는 음악이라면서 슐랑어(Schlanger)라는 장르의 음악을 틀어주었다. 주로 외지에서 싹트는 로맨스에 대한 오글거리는 노래라고 했다. 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서, 뭔가 유치원에서 틀어줄 것만 같은 경쾌한 음악이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독일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스페인의 섬인 ‘마요르카’에 가면 아저씨들이 슐랑어를 틀어놓고 춤추며 술 마시며 햇살을 쬐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한국으로 치면 트로트 같은 느낌인 걸까. 그들이나, 나나 피차.


이런저런 카드게임을 하다가 아까 오븐에 집어넣었던 라자냐가 나왔다. 노릇노릇하고 따듯했다. 겹겹이 쌓인 라자냐를 주걱으로 푹 잘라 그릇에 나눠 담을 때 촉감이 좋았다. 흘러내리는 소스와 쫄깃한 라자냐 면의 식감이 잘 어우러졌다. 얼마나 많이 만들었는지, 한 사람당 거의 세 조각을 먹어도 남았다. 와인 몇 잔을 곁들여 같이 먹으니 취기가 돌았다. 다음번에 또 다 같이 모여 "머더 미스터리 나잇"을 하기로 약속하고, 19살들 룸메들은 더 놀게 두고 늘근이는 먼저 돌아와 잤다.

맨날 음식 다 파괴되고 난 후에 사진 찍는걸 기억하는 습관 때문에... 저만한 라자냐 그릇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못 찍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 서너 번은 더 가겠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