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끊김 없이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던 도서 5선
※책보다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그래도 올해 재밌게 완독 한 책들 중 마음에 오래 남는 책들을 5권 선정해 봤다. 2023년에는 좀 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기준임
1위. 인간 실격
(1948, 다자이 오사무)
#일본문학 #실존주의 #퇴폐주의(데카당스)
씁쓸한 문체와 잔잔한 광기가 마음에 무겁게 얹혀 내렸다. 짧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내려 읽어갔다.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이 매력적이었다. '실격'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자격을 잃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인간이 성립되기 위한 자격이자 조건은 무엇인 것일까? 작중 '요조'는 인간들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리는 각종 ‘처세술’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러한 무감각으로 인해 그는 무엇보다 인간을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나도 겪어본 바 있어 이상하게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정의하는 것으로 살기를 포기한 듯한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 퇴폐주의가 무엇인지 충격적으로 알려주는 소설이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2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2022, 황보름)
#한국문학 #휴머니티 #인간관계
독립서점을 열게 된 한 사람의 과거, 현재, 내면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고민과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게 좋았다.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모이는 과정, 서점이라는 공간, 책을 읽는 이유, 좋은 책의 기준, 휴식과 명상, 북토크의 의의, 작가의 기준, 서점 주인이 쉬는 방법, 성장하는 서점 등, 책을 둘러싼 문화와 생각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고소한 밥을 꼼꼼히 씹어먹듯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꼭 책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와 같은 주제도 책 전반에 걸쳐 뭉툭하지만 공감 짙게 다루고 있었다. 평범한 20대로써 가지고 있는 여러 질문들에 대해, 옆에서 친구가 한마디 던져주듯 툭 하고 위로와 생각을 제시해줘서 좋았다. 이런 따듯함이 좋았다. 모두의 이야기. 누구나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이 책은 열심히 살기, 자존심 등 환상을 쫒는 것이 강요되는 이 사회에서 공허함, 분노, 당혹감, 지침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책은 그 대신 주위 사람들과 이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더 사랑하고, 응원하며 길을 찾는 커뮤니티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좋았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살기 싫은 사람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려내는 책의 내용이 좋았다. 열심히 살지 말라, 무조건 쉬라 하는 게 아니라서 좋았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고, 모두가 답을 모르는 사회지만, 그걸 찾아가는 과정을 스스로 찾도록 서로 옆에서 응원해주다 보면,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는 메시지를 주어서 좋았다.
책을 덮고 난 후에 따듯하게 마음속에 무언가가 진득하게 남는 느낌이 들었다. 예기치 못하게 찾은 조용한 카페에서 마신 따듯한 커피 한잔처럼.
영주는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치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3위.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021, 에릭 와이너)
#철학 #위트 #여행
‘기차’라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소재를 통해 철학에 대한 고찰을 비유적으로 녹여낸 것이 좋았다. 저자 에릭 와이너와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고, 철학자들의 생각과 메시지를 좀 더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든 생각은, 철학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처럼, 혹은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며 사는 공자처럼, 마치 철학은 굉장한 사람들만 하는 것처럼 생각되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듯이 철학은 그저, “삶을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는 학문”일 뿐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듯이, 그저 어떤 원칙과 태도로 사느냐에 따라서 나도 모르게 어떤 철학적 가이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삶 곳곳에 위대한 철학자들의 메시지가 소소하게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철학 책인 만큼 다양한 철학자들, 생각에 대해서 읽게 되지만, 이 책이 단순 철학 소개집필서에 그치지 않는 것은, 에릭 와이너의 위트도 한몫할 것이고, 기행과 인문학을 섞어놓은 듯한 흘러가는 이야기 서술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철학이란 것이 고고하고 할 것 없는 사람들만 관심 갖는 학문이 아니라, 인생의 단계별로 가지면 좋을 태도, 혹은 매력적인 태도를 처방전처럼 제시해줄 수 있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삶과 가까운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고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임을 깨달아야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증폭시키게 하지 말아라.
4위. 공간의 미래(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2021, 유현준)
#건축 #사회
난 건축의 문외한이지만, 학부시절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개최된 건축비엔날레를 갔다가 한국 집들의 실내 디자인이, (부엌이 거실과 단절되어 있다가 좀 더 연결되는 방향으로 디자인되는 등) 민주성을 띄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건축은 100% 기능을 위한 학문이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깨부순, 개인적으로 혁명적인 아이디어였다. 그 후 건축 및 실내디자인과 문화와의 연관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건축은 원한다면 차갑고 정교하며 수학적일 수도 있고, 문화인류적 인문학 매개체가 될 수도 있고,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건축물이나 싱가포르의 에스플러네이드처럼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건축 이면의 다양한 아름다움이 매력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다. 저자는 개인발코니가 있는 집, 접근성이 좋은 공원과 도서관, 변화하는 종교시설, 비대면사회를 수용하는 공간 등 코로나로 인해 공간이 바뀌어가는, 앞으로 바뀌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회의 변화를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건축', '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조명하기에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5위. 500가지 심볼 사전
(2022, 에릭 샬린)
#오컬트 #백과사전
궁극의 ENFP을 위한 책. 처음 텀블벅 후원으로 구매해본 책이다. 서양의 오컬트뿐 아니라 어떠한 ‘믿음’을 상징하는 전 세계의 기호들을 담은 책이었다. 서양에서는 MBTI나 혈액형만큼 신도가 많다는 점성술에서부터, 미국 원주민, 마야, 인도, 호주, 아시아, 켈트족 등 각 문화권별로 자연, 신성함, 오컬트 등에 대해 쌓아 온 신비로운 믿음에 대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 책을 기점으로, 세계의 괴물, 세계의 전설/신화 등에 대해서 무수한 책을 읽었다 ㅋㅋ
아시아권의 팔괘나 마야 달력처럼, 도대체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똑똑하고 얼마나 시간이 많았길래 그 수많은 사례들을 분석해서 이렇게나 복잡한 점성술표를 만들어낸 걸까 싶다. 아주 허황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확도가 있어서 더더욱 놀랍다. 그 문화권이 아니라면 의미도 크게 와닿지 않을뿐더러, 너무 복잡해서 자세하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내용이었어서 그저 “옛날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구나” 정도로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문화권이 맞다 보니 오행론, 음과 양, 팔괘가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ㅋㅋ 호주 원주민들이 자연을 상징하는 드리밍 심볼에 대해서도 처음 배웠는데, "모아나"에 나올 것만 같고, 오밀조밀 귀엽고 흥미로웠다.
세계미래보고서 2022: 메타 사피엔스가 온다(2022, 박영숙 외)
올해 초에 읽은 첫 책이다. 특히 요즘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이 많아진 만큼, 앞으로 5,10년 안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에 발생할 다양한 변화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재밌게 읽었다. 우주 골드러시, 로봇과의 동거, 노화 역절의 기술, 인간은 계속해서 신체적으로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개개인에게 퍼스널라이징 된 삶을 제공할 수 있는 형태로 사회를 변화시킨다. 또한 초고도기술 세상 속에서, 인간과 지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책은 내가 2022년을 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제공해 줬다. 2023년에는 또 어떤 기술이, 어떤 사회 변화가 생길까, 설레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