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할 때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솔직히 말하면, 정답은 없다. 그날의 컨디션, 불안의 농도, 체력에 따라 책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다만 나에게는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불안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 책, 나를 훈계하지 않는 문장, 그리고 너무 똑똑하지 않은 말들.
첫 번째로 추천하고 싶은 건 예민한 사람들이 쓴 시다. 특히 예민한 문과생들이 쓴 시. 이 시들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대신 “아, 너도 이랬구나” 하고 옆에 앉아준다. 불안할 때 긴 문장은 부담스럽다. 시는 한 문장만 읽고 덮어도 된다. 그 한 줄이 하루를 버텨주기도 한다. 시는 마음을 고치려 하지 않고, 그냥 잠시 눕혀준다.
두 번째는 미술 관련 서적이다. 화가의 삶,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 미술관에서 멈춰 서는 법 같은 이야기들. 불안한 날에는 생각보다 시각이 먼저 회복된다. 글자를 읽기 힘든 날에도 그림은 볼 수 있다. 설명을 다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아, 이 사람도 이렇게 살았구나” 정도면 충분하다. 미술 책은 나에게 말을 걸기보다는, 말을 줄이게 해줬다.
세 번째는 역시 예민한 문과생들이 쓴 소설이다. 너무 완벽한 인물, 너무 잘 극복하는 주인공 말고, 조금 망가져 있고 우유부단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 그런 인물들과 함께 있으면 불안이 조금 정상처럼 느껴진다. 소설의 장점은, 내 삶이 잠시 남의 삶으로 바뀐다는 데 있다. 그 덕분에 내 인생을 잠깐 쉬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웹툰도 꽤 도움이 됐다. 재미있는 웹툰,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밝은데,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지? 왜 나는 이렇게 죽고 싶지? 같은 비교는 금물이다. 웹툰은 삶의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결과물이라는 걸 잊지 말자. 우리는 편집되지 않은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였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고, 이해하지 못해도 되고, 중간에 덮어도 된다. 책은 도망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불안한 사람에게 이만큼 안전한 물건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책을 권하긴 하지만, 열심히 읽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 두라고 말한다. 불안할 때 바로 집어 들 수 있는 물건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그게 약이든, 명상이든, 책이든. 나에게는 책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