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오늘은 아침부터 아이와 씨름을 하며 마음이 꽤 상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텔레비전을 더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이미 충분히 봤으니 그만 보자고 했고, 아이는 울며 떼를 썼다. 등원 시간이 촉박해지자 결국 텔레비전을 없애겠다는 말까지 하게 되었고, 그 말은 아이보다 내 마음에 더 오래 남았다. 며칠 전 같은 상황에서는 동화 이야기를 만들어 주며 비교적 잘 넘겼던 기억이 있어서, 오늘의 선택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왜 오늘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이어졌고,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는 나쁜 엄마인가’라는 결론으로 달려갔다. 그 아침의 마음은 꽤 무거웠고, 나 자신을 변호할 변명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명상에서는 가장 먼저 나 자신을 탓하는 생각을 멈추는 연습부터 했다. ‘아함(나는 무한하다라는 뜻)’이라는 말을 호흡과 함께하며 나는 무한하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했다. 나는 무한하고, 그렇기 때문에 한 순간의 실수로 요약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고, 오후에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는 사랑으로 충분히 안아주고 말해줄 수 있다는 믿음도 함께 떠올랐다. 오늘은 유난히 나 자신을 더 믿고, 더 많이 칭찬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호흡도 눈에 띄게 길어졌는데, 그 변화가 아주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기뻤다. 회복은 늘 이렇게 조용히 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다짐은 분명하다. 실수했을 때 나 자신을 곧바로 단죄하지 않기. 순간적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더라도, 그 장면 하나로 나를 나쁜 엄마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자책이 시작될 때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나는 다시 사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바람은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줄 아는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다. 감정이 앞서는 순간이 와도 다시 아이를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같은 온기를 건넬 수 있는 사람. 하루의 실수보다 하루의 회복을 더 오래 기억하며,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안전한 사람이 되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완벽은 가끔 빠지지만, 회복은 생각보다 자주 돌아오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살짝 묻고 싶다. 오늘 당신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나요. 잠시 눈을 감고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가 길게 내쉬어 보세요. 그리고 오늘만큼은 실수 하나 대신 회복 하나를 기억해도 괜찮다고, 자신에게 말해줘도 좋겠습니다. 삶은 채점표가 아니라 연습장에 더 가까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