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늘 새 옷이 필요했을까

by 김단아

집의 평수를 줄여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이사는 아직 한 달쯤 남아 있었지만, 어서 무엇이라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공간이 줄어든다는 건 물건을 덜어내야 한다는 뜻이었고, 그중 가장 먼저 내가 선택한 것은 ‘옷’이었다.


옷 정리는 내가 가장 하지 못하는 일 중 하나였다. 옷을 버린다는 건 결국 나를 덜어내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옷에 남아 있는 추억, 언젠가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까지 함께 버리는 일 같았다. 그래서인지 옷걸이에 걸린 옷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이 옷들이 나를 설명해준다고 믿었다. 단정한 블라우스는 나의 성실함을, 잘 고른 코트는 나의 취향을, 한 번도 들지 않은 가방은 아직 펼치지 않은 가능성을 말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하나씩 내려 바닥에 쌓아두니, 그것들은 나를 증명하는 물건이 아니라 내가 불안할 때마다 덧붙여온 문장들이었다.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과감하게 내려놓으며 나는 마주했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옷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365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 그저께 입은 옷을 또 입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없는데, 마치 그래야만 하는 사람처럼 나는 계속 사왔다.


계절이 바뀌면 새 옷이 필요했고, 기분이 가라앉으면 더 밝은 색이 필요했으며,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면 조금 더 근사한 내가 필요했다. 새 옷은 늘 나를 구해줄 것처럼 보였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고, 비교에서 조금 덜 밀리게 해주고, 혹시 모를 평가에서 나를 방어해줄 것 같았다.


SNS를 열면 그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누군가는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를 입고, 누군가는 로고가 선명한 가방을 들고 웃고 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계산했다. 나는 지금 충분한가. 나는 저만큼은 되는가. 어쩌면 나는 옷을 산 것이 아니라 안심을 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택배 상자를 열던 설렘은 몇 번 입고 나면 희미해졌고, 다시 새로운 것이 필요해졌다.


옷을 버리면서 처음으로 질문이 생겼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새 옷이 필요했을까. 예뻐 보이고 싶어서였을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였을까. 입지 못한 채 옷장 깊숙이 남아 있던 옷들을 꺼내며 나는 깨달았다. 그 옷들은 어쩌면 내가 되지 못한 나의 버전들이었다. 나는 옷을 통해 미래를 예약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지 않기로 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제는 나를 속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새 옷이 나를 바꾸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이번에는 다를까 기대하던 나를 내려놓고 싶었다. 집이 작아진다고 내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고, 옷이 줄어든다고 나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걸 천천히 확인해보고 싶었다.


옷장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생각보다 서늘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묘하게 가벼워졌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옷장 정리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더 사지 않아도, 새 옷이 없어도 우리는 매일 새롭다. 매일 다른 표정으로, 다른 생각으로, 다른 하루를 살아낸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믿어보려 한다. 새 옷 대신,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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