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정신과를 검색할 줄이야.
평범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꽤 괜찮은 여행의 시작이었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내게 꿀맛 같은 휴식이 주어졌다. 바로 ‘가족여행’, 그것도 아이와 잠시 떨어져 언니, 엄마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오랜만이었고, 그래서 설렜다. 설렘과 함께 '괜찮을까'하는 아주 작은 걱정도 따라 붙었다.
그래서였을까.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부터, 그 저 웃고 떠들며 즐겁기만 했던 여행의 시작은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이 밀려왔다. 그건 '생각'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뛰쳐나가야만 숨을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폐소공포증'이라는 단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저 머릿속엔 나가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확신.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일어나 통로를 달려 문을 열고 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성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이성과 충동 사이에서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가까스로 언니에게 말했다. "나 좀 이상해. 죽을 것 같아." 언니는 처음엔 웃었다. 그런데 이내 기내의 더운 공기 속에서도 얼음처럼 차가워진 내 손을 잡아보더니 쿵쿵 쉬지 않고 뛰는 내 심장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상 이야기들을, 웃긴 에피소드를 쉬지 않고, 정말 쉬지 않고 들려주었다. 무려 한 시간 동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한 시간은 비행 시간보다 길었다. 아니,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한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겨우 비행기에서 내렸고, 나는 다시는 비행기를 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게 뭐지? 왜 이러지? 미친걸까?' 이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도 오랜만의 여행을, 오랜만의 자유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왜 이러는 걸까, 란 궁금증을 지우고 괜찮은 척 했다. 짐을 찾고, 차를 빌리고, 카페에 가고, 숙소에 들어갔다. 체크인을 하며 '그래, 비행기에서 잠깐 그랬던 걸꺼야.'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숙소에서 2차 전쟁이 시작됐다.
침대에 누우면 호텔 로비까지 전력 질주해야 할 것 같았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가야만 숨을 한 번이라도 더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고 좁은 호텔 로비가 비행기 통로처럼 보여서 였을까?
누군가에겐 '호캉스'일 호텔이 내게는 도망칠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나는 방에 머무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요즘 유행하는 방탈출 게임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게임은 방에 머무르기 게임이었다.
인터넷을 뒤지며 내 증상을 검색했다. 공황장애, 불안장애라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키는 대로 다 해봤다. 파란색 물건 다섯 개 찾기, 만질 수 있는 물건 다섯 개 찾고 만지기, 세수하고, 걷고 또 걷고,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방 밖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을 뿐이었다.
유튜브를 틀고, 관련 영상을 보고, 양치하고, 다시 색깔 별 물건들을 찾고, 그렇게 긴 밤이 지나갔다.
여행 이튿날은 일요일이었다. 병원들은 모두 휴무였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평화로웠다.
아침 해도 떴으니까! 나는 괜찮아질 거라 믿고 카페에 갔고, 흑돼지구이집에 갔다. 그리고 또 다시 가게 안에서 뛰쳐나가야 할 것 같은 심정을 느꼈다.
고기 한 점 먹지 못한 채 야외 화장실 입구에서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숨을 쉬었다. 캄캄한 제주의 밤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일요일, 모두가 쉬는 꿀맛 같았던 휴일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전혀.
너무 힘든 마음에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괜찮은 척 하다가 결국 아이 얼굴을 보는 순간 무너졌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 숨 쉬는 게 너무 힘들어."라고 울며 고백했다.
그렇게 또 전날 밤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이 되었다. 드디어 월요일. 나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같이 여행을 못할 것 같다고.
나는 여행지에서 맛집 대신 정신과를 검색하는 이상한 여행객이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 갈 수도 있었지만, 나만큼이나 오랜만인 기대했던 여행이었을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검색해서 찾은 정신과, 약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가면 있었다. 택시 안에서도 창문을 열고 호흡에만 집중했다.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도착한 병원에서는 '신규 환자는 받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제발'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약만이라도 주실 수 있으시냐고,
난처해하시며 안 된다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 앞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내과, 외과가 보였다. 혹시나 해서 검색해봤지만 역시나 정신과 약 처방은 불가했다.
다른 근처 정신과 몇 군데를 더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전화한 병원에서 "오늘 오시면 진료 가능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날 처음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25분을 택시를 타고 달려서 바로 갔다. 가는 내내 다시 또 긴 도로 위의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그래도 희망 하나 붙잡고 달리는 택시 안은 심장만을 부여잡고 달릴 때보다는 훨씬 살 것 같았다.
난생 처음 가본 정신과. 대기실에서 나는 안절부절 못하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섭게 볼까, 란 생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이름이 불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살려주세요"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여행의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해달라고 사정했다. 비행기를 타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내 표정이 이미 설명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몇 가지 약을 처방해주셨다. 그 종이 한 장이 나에게는 구명 보트처럼 느껴졌다.
병원 아래 약국에서 약을 타자마자 바로 먹었다. 그리고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근처 빌라 앞, 그늘이 진 나무 밑 바닥에 그냥 주저 앉았다. 너무 지쳐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고, 그저 숨을 편하게 쉬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짹짹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고, 나무가 만든 그늘의 경계를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약효가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정말로, 세상이 조금 달라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가슴을 찢어서라도 이 답답함을 없애고 싶었던 충동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숨이 '들어온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었다. 당시에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모든 옷을 다 벗어버리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이 변화는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한 시간이 더 지나자 다시 아주 미세한 답답함이 올라왔다. 그 미세함이 오히려 더 불안을 키웠다.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나는 비상약으로 받은 약을 다시 먹고 그저 버텼다. 이때부터 나의 버티기가 시작되었다.
마치 씨름 경기처럼. 한 판으로 끝나지 않는, 생각보다 훨씬 긴 경기.
내 상대는 끈질겼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약을 먹고 나서는 살 만했다. 정말 말 그대로, 살 만했다.
가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차를 탈 수 있었다. 물론 밤에는 잠이 쉽지 않았고, 여전히 깊고 오래 자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비행시 출발 두시간 전,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신대로 약을 먹고 비행기 안에서도 다시 약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무사히 돌아왔다. 아니, 조금은 달라진 사람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했던가.
나는 여행 전과 후가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나는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집이 그날의 숙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던 밤, 나는 회사에, 팀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며 내일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출근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집 근처 정신과로 향했다.
나는 그렇게 여행 후, 다른 사람으로 나타났다. 내 남편 앞에, 그리고 내 아이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