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해! 퇴사해!
누구에게나 기쁜 날은 있다. 내게도 그런 날이 꽤 있었다.
열심히 일한 끝에 받은 ‘차장’ 승진. “그래, 열심히 일한 너 승진해라!"라는회사로부터 받은 일종의 공식 통보. 레벨 업 된 게임 캐릭터처럼 괜히 뿌듯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승진 직후, 나는 퇴사를 권유 받았다.
팀장님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서.
회사라는 존재는 내게 결코 가볍지 않았다.
13년 동안 내 삶의 중심에는 늘 회사가 있었다. 임신 중에도 무거워지는 배를 끌어안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혹시라도 피해가 될까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했고, 그저 아이도 회사도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욕심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내게 회사는 어쩌면 짝사랑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사랑하라고 한다면, 나는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땐 꽤 진지하게, 그리고 꽤 오래 사랑했다. 직장은 잠 많은 나를 아침 일찍 일어나게 해주었다. 도대체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회사도 나를 제법 잘 대해주었다. 아침과 점심, 저녁을 챙겨주었고 사내 카페에서는 커피까지 내주었다. 복지포인트로 생활의 윤기도 내주었고, 건강검진으로 내 몸 상태도 체크해줬다. 사내 동호회는 재미를 주었고, 성과를 내면 보상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매달 월급날 찍히던 숫자.
시급 3천 원을 받으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에게 그 숫자는 늘 고마웠다. 이 정도면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회사는 아마 여덟 번쯤은 나를 찍었을 것이다. 그렇게 회사는 내 삶의 큰 부분 되었고, 어쩌면 삶 그 자체였다.
그런 회사를 잠시 비우고 떠난 여행길이었다. 짝사랑의 끝자락에서 얻은, 짧지만 달콤한 휴가. 그런데 그 여행지에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가 폐소공포증이 나를 덮쳤다. 차 안에서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 내내 겨우 버티다 보니 너무 지쳐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
심장은 200km로 달리는 자동차 엔진처럼 조금의 속도도 늦출 줄 몰랐고, 손바닥은 계속해서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숨은 자꾸만 막혔다. 이걸 계속 버텨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버거웠다. 결국 나는 짝사랑을 잠시 내려놓고 여행이 끝나자마자 정신과를 찾았다. 돌이켜보면, 그건 내 인생에서 꽤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집 앞 정신과에서 만난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셨다. 그 분 앞에서도 나는 또 엉엉 울었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예요.”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약을 받아도 회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걸.
하지만, 하필이면 그 시점이 차장으로 승진한 직후였다. 인사팀에서 꽃다발과 선물을 받고, 동료들의 케이크와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던 바로 그때. 왜 하필 지금일까. 내가 받은 꽃다발이 시들기도 전에 커리어가 끝나는 걸까.
‘저는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고 여쭤보니, 선생님께서 일단, 진단서를 써줄 테니, 병가든 휴가든 해볼 수 있는 방법을 회사와 논의해보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진단서를 받았고, 당장 출근은 멈출 수 있었다. 금요일에 웃으며 여행 잘 다녀오겠다고, 선물 꼭 사오겠다고 하던 사람이 화요일에 병가를 말했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을지 짐작은 간다. 그럼에도 이해해주신 팀장님과 동료들에겐 지금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하지만 무서웠다. 그토록 큰 의미였던 회사를 쉬는 것조차. 병가가 끝나갈 즈음. 호전되지 않은 내게 선생님은 ‘퇴사’를 권했다. 술자리마다 “로또 되면 퇴사하는거야!”라고 말하던 내가 막상 퇴사가 유일한 선택지가 되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아직 로또가 되지 않았는데…요.. ‘라는 말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승진하자마자, 오른 연봉 한 번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나가야 한다니.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죗값이 너무 혹독했다.
내가 꿈꾸던 퇴사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감동적인 전사 메일을 보내고, 회식 자리에서 웃으며 인사하고, 책상 위를 정리하고 나오는 퇴사. 그런데 나는 커피잔과 이어폰, 펼쳐진 노트까지 그대로 둔 채 마치 마술처럼 사라지듯 퇴사해야 했다.
그때 내게 퇴사는 실패로 느껴졌다. 팀장님과 몇몇 동료를 제외하고는 병명도 말하지 못했다. 다른 이유를 대며 ‘잠시 쉰다’고 둘러댔다. 공황 장애와 불안 장애 그리고 갑작스러운 폐소공포증까지. 안 좋은 시선으로 혹시라도 비춰질까 불안했기 때문에. ‘그런데 결국 이렇게 퇴사를 하게 되면 모두가 알게 되지 않을까?’ 불안했다. 이런 생각들이 겹치며 나는 스스로를 실패자처럼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께 "저는 실패한거죠..."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말에는 상실감보다 무력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선생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멈추는 건 실패가 아니에요. 내려놓는 것도 실패가 아니에요."
그렇게 나는 퇴사라는 선택지를 집어 들고, 병가가 끝나는 날 회사로 향했다. 그날은 출근이 아니라, 내려놓으러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배웠다. 인생에는 전진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잠시 멈춰 서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라는 것. 무엇보다, 너무 오래 버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다시 뛰어’가 아니라 ‘이제 좀 쉬어도 돼’라는 허락이라는 것을.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비슷한 자리에 서 있다면, 부디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멈춰 있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은 자주 우리를 안아주지 않지만, 가끔은 삶 그 자체로 이렇게 말해준다. 괜찮아. 지금은 이만하면 충분해. 이제 좀 쉬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