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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7

한 집에 식구가 열

by 던다

1988년은 나에게 여러 의미를 갖는 해였다. 동시에 국가적으로도 우리 식구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다. 연말생인 나는 돌아보면 유치원과 초저학년까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거나 그냥 어영부영 밀려가듯 학교생활을 했었다. 크게 불편함은 없었고 돌아보니 그랬던 게 아닐까 생각하는 정도이다. 지금처럼 아이의 발달 상황에 관심을 집중하지 않을 때여서 느린 아이들이 오히려 적당히 묻어가기 좋을 시절이었다. 그러다 3학년이 되며 친한 친구가 생겼고, 그저 숙제를 꼬박꼬박 해갔을 뿐인데 선생님이 눈에 드는 학생이 되었다. 그런 작은 변화가 의아하면서도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가적으로는 아시안 게임 개최를 지나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사람들은 곧 선진국 반열에 들어설지 모른다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있었다. 그런 세계적인 행사를 한다는 사실에 어린 나는 한껏 애국심이 고취되었다. 과거의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바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군사정권이었던 것도 당시에도 그 그림자를

벗지 못하던 시절이었던 것도 모르던 천진한 때였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환희라는 노래가 온 나라의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듯했다.

우리 가족의 큰 변화라면 다음 해에 중학생이 될 오빠의 교육을 위해, 그러니까 인서울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경기도 과천에서 서울로 88년 1월에 이사를 했다. 결론적으로는 오빠의 진학을 위해서라면 산간벽지에 살아도 상관없었겠지만 여하튼 난 이사 온 것이 더 좋았다. 경기도에서 서울의 국민학교로 전학을 하니 가장 달랐던 점은 시설이었다. 신도시의 신설 초등학교에 있다가 전학을 하니 낡은

책걸상에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교실 가운데 커다란 난로가 놓여있었다. 우우도 매일우유에서 서울우유로 달랐는데 기분 탓인지 경기도에서 먹던 매일우우가 더 신선하고 시원한 것 같았다. 그것 말고는 학생들도 다양하고 뭔가 새로운 세계가 열린 듯했다.


우리 식구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막내고모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우리 집에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다섯 식 구인 큰 이모네가 살던 주택을 재건축하게 되면서 그 공사기간 동안 우리 집에 같이 살기로 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32평 아파트에 무려 10명이 복닥복닥 몇 달을 살았다. 그 열식구 중에서 내가 막내여서 잔 신부름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나 두부 사 오기 같은 일을 도맡아 했다.


이모와 이모부와 살며 또 다른 어른들을 가까이서 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준비할 때면 엄마랑 이모가 부엌에 같이 계셔서 엄마가 둘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모부는 엄청나게 과묵하고 정적인 아버지와 달리 말씀도 많으시고 아버지보단 활동량도 많으셔서 나에겐 좀 신선했다. 아버지는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분이었는데 이모부는 그보다 훨씬 인간적이셨다. 일기를 보니 저녁 먹고 우르르 집 앞 야산에 약수터에 가자고 하신 것 같다. 물통을 하나씩 들고 우면산에 올라가서 졸졸졸 나오는 물을 받은 다음 어두워진 산길을 이모부 뒤를 따라 내려온 모양이다. 롯데월드타워도 없고 여타의 높은 건물이 없어서 더 많은 건물들을 볼 수 있었을 때였다.


그때 같이 살던 사촌언니는 미국으로 20대 후반에 혈혈단신 이민을 가서 미군이 됐다가 지금은 제대하고 다른 일을 하며 산다. 딸을 미국에 보낸 것이 마음에 쓰인 이모, 이모부도 미국으로 가셔서 지금은 80대 노인이 되셨다. 신기한 게 지금도 가끔씩 이모, 이모부와 통화하면 목소리가 그대 로시다. 대단히 훌륭한 어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어른의 모습을 많이 보며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숨은 면들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열 살의 던다야
지금은 그렇게나 사적 공간을 중요시하는 어른으로 자랐는데 어릴 때만 해도 모든 것이 공개된 공간에서 공동생활하며 생활하던 때도 있었구나. 이모, 이모부, 고모, 사촌언니와 오빠.
다 너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관계가 다 너에게 관계 맺기의 자양분이 되었는지 몰라. 그 시절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너그러이 받아준 부모님이 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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