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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총괄의 세계 (1) 2024.

by 던다

중등교사가 되면 한 학기에 두 번 고사 출제를 검토, 시험감독을 한다. 내가 겪은 고사도 대략 40번 가까이 된다. 더군다나 고사계 담당 2년, 교무부장 바로 옆과 다른 고사계 선생님 바로 옆에서 생활한 것도 2년이었다. 그러니 고사기간을 보내는 것이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총괄을 겪어보니 이건 또 완전 새로운 세계였다.

문득문득 밀려오는 생각은 여전하다. 내가 그 시절 나의 부장샘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그 시절 부장님은 왜 늘 오만상이었나. 왜 그렇게 조급해했나. 등등 하나둘 떠올랐다.

이번에 근무교는 이틀간 6과목의 시험이 치렀다.

D-4. 고시원안 교감, 교장 결재완료

D-3 인쇄실에 OMR카드 옮기기- 인쇄주무관 반별로 봉투에 카드 넣기 / 시험인쇄 및 첫째 날 시험과목 시험지 포장

D-2 둘째 날 시험과목 시험지 포장, 학부모 시험감독 연락하여 참석여부 확인

D-1 교실 칠판 부착 고사 안내 종이 학급함에 넣기, 고사 관련 물품(여분 컴싸, 수정테이프 3개) 바구니 학급함에.

각 반 교실 책상 시험대형

학부모 시감 대기실 준비(안내 종이, 이름 확인, 시감 배치표, 간식 등)

드디어 당일 8:30

1. 학부모 짧은 안내

학부모 시감 대기실에 모인 학부모님들께 시험감독에 관한 안내사항을 전달한다. 핸드폰 무음으로 해야 하고 주로 한 군데 서 계시거나 의자에 앉아계셔야 한다. 화장실 가는 학생 동행해야 한다. 뭐 그런 내용이라 그 정도면 부담 없다 생각했다. 그런데 교장교감선생님이 함께 계시는 중에 하는 줄은 몰랐다. 학부모님과 함께 나를 계속 바라보고 계셔서 그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내 안내에 이어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교장선생님은 학생들 긴장 많이 하니 집에 돌아가서 자녀들 잘 격려해 주시라 말씀해 주시는데 상황에도 잘 맞고 군더더기 없는 말이라 좋았다. 나도 초반에 상투적인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 대신 첫 시험 보는 2학년 학부모님 지금 같이 엄청 긴장되시죠? 뭐 이런 말 할걸 싶었다. 내가 전할 내용에 급급해서 듣는 사람들 상황을 이해하는 쿠션 같은 역할이 없어서 아쉬웠다.

2. 첫날 1교시 영어

첫 시험이 내 담당과목이었다. 오랜만에 혼자 출제하고 검토도 많이 못해봐서 조금 긴장이 됐다. 그런데 고사 전체에 대해 마음을 쓰느라 정작 내 시험에 전심으로 긴장할 여유? 가 없었다. 말이 웃기긴 하지만 좋은 일이나 긴장할 일이나 여러 개가 함께 오면 그 부분을 담당하는 행복이나 긴장도 좀 나눠지는 것 같다.

고사 시작 15분쯤 교실을 한 바퀴 돌면서 문제에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크게 실수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3. 쉬는 시간

매 시간 사이에 감독을 마친 선생님들이 수합해 오신 답안지 매수를 다시 세고 감독관 도장과 학생들 인적사항 기입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한다. 이건 실무사샘들이 하신다. 감독 도중 교실에서 문제 사항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애들은 제대로 잘 풀었는지, 화장실을 너무 많이 가진 않았는지 등을 물어본다.

3-1. 쉬는 시간에 갑자기 오늘 행정실에서 주차장 천막 제거 공사를 한다고 차를 빼라고 했다. 왜 그런 공사 안내가 하루 전 없었는지, 당장 시험감독 들어가는 사람에게 차를 빼라는 말이 말이 되는 것인지 짜증이 확 났다. 그런데 감독샘 차는 빼야 하니 그 부탁을 받은 샘의 차를 내가 대신 뺐다.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난데없이 남의 차를 뺀다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학사 중에 고사가 엄청 중요한데 이런 일정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4. 정답

당일 마지막 시험의 고사 종료 15분 전쯤 학급함에 답안지를 넣는다. 학급회장이 시험이 끝나자마자 내려와서 답안지를 가져가고 학급에서 학생들에게 답을 불러주며 함께 채점한다. 간단히 종례를 마치고 학생들은 하교한다.

시험기간에 급식이 없다. 학교에 어느 어느 예산으로 연구부에서 김밥을 주문해 주셨다. 감독하고 - 김밥 한 줄 먹고 바삐 체육관으로 향했다.

5. 첫째 날 오후 시간에는 심폐소생술 연수가 계획되어 있었다. 체육관에서 2시간 반 가량 응급처치, 하임리히법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 등에 관해 듣고 직접 실습을 했다. 매년 듣는 연수지만 다시 한번 머릿속에 응급 상황 속에서 심폐소생술하는 나를 떠올려봤다. 뭐든 직접 해봐야 안다. 고사 기간 내내 생각한 생각이기도 하다.

6. 연수가 끝나고도 시험지 나눠주는 시점과 OMR카드를 누가 나눠주는지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특히 올해 학교를 옮긴 샘들의 반발이 컸다. 왜 시험지를 종 치기 전에 나눠주느냐. 애들이 눈으로 다 푸는데 펜으로 푸나 눈으로 푸나 무슨 차이이냐. 부정행위 방조 아니냐.라는 말이 있었다. 근무교는 Omr카드를 나눠줄 때도 학생 한 명 한 명씩 교사가 직접 나눠준다. 수능도 아닌데 굳이 그래야 하나? 서술형이라도 있으면 두 번 다 하나씩 나눠주고 시험지 매수가 3-4장 되면 정말 너무 바쁘고 힘들다.라는 얘기였다. 한 가지 더 이슈가 된 것이 있었는데 시험 중 화장실 사용의 문제였다. 애들 화장실에 뭐 숨겨놓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중간에 화장실을 갔다가 다시 이어서 시험을 볼 수 있느냐.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OMR카드를 한 장씩 나눠주는 것이라면 화장실 보내는 것이 그 확률을 더 높이는 거 아니냐.

사실 이 이야기들은 고사 하루 이틀 전부터 나와서 교감선생님과도 나눴단 이야기였다. 교감선생님은 어느 쪽이 확실하게 장점이 있는 게 아니라면 수능에 준해서 해오던 대로 하자는 입장이었다.

교무부장 단톡방에도 의견을 물었다. 시험지 배부 시점과 화장실 사용 후 시험 이어서 보는 것. 예상과는 달리 거의 반반이었다. 의견을 물으니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몇몇 샘들은 계속 열을 냈고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묻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에게 이럴 거 그냥 교직원 회의에서 얘기하자고 하니 학생과 교사의 입장이 나뉘는 거라면 학생이 유리한 쪽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분이 특별히 학생들이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라기보다는 학교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입장을 모두 중재해야 돼서 그러는 것 같았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어느 것은 윗선에서 가닥을 잡고 어느 것은 전체에게 묻고 구별을 지어야 할 것 같았다. 다 물어보고 정한다고 특별히 더 민주적인 것도 아니라고 본다.

(그 밖에도 머리가 복잡한 일이 한 개 더 있었다)

(그거 말고도 나와 짝이 되어 수업하는 강사샘이 살고 있는 집이 전세사기를 당해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엔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정도의 감정이었는데 이제는 다음

사람을 선발해야 되니 그게 좀 막막했다. 구해지긴 할까. 급기야 당근알바에까지 올리게 됐다.)

그렇게 첫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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