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은 24시간이 아닌 48시간 같은 날이었다. 교사들에게 3월은 유독 힘들지만 그 근육 없는 자의 힘겨운 등산 같은 3월. 그 봉우리를 찍는 날이 학부모총회날이다. 담임일 때는 저경력인 내가 나보다 더 정보 많고 육아경험 많은 학부모들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학부모총회가 내 담당업무라서 역시 부담스럽다. 분명 두 번째 해인데 작년이 새까맣게 기억이 지워졌다.
그래도 열흘 전부터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 두 명과 학부모회 임원 다섯 명과 학부모회 임원 선출관리위원 5명, 선거 상황을 발표할 학부모 한 명, 도합 13명을 꾸리기 위해 못해도 25명에게 전화를 돌린 것 같다.
작년 학부모회 회장 학부모 한 명에게도 전화해서 작년 학부모회 활동, 예산 보고를 요청했다. 아주 솔직한 생각을 물론 학부모의 품이 들어가긴 하지만 주로 소극적이라 대부분 교사의 일이고 그런 명칭마저도 허울처럼 느껴졌다. 어렵게 하나하나 일구어낸 제도일 텐데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여하튼. 당일 어머니들 자리배치와 어느 상황에 뭘 해야 하는지 알려드렸다.
그리고 대망의 총회날 아침. 8:20 학교 도착했다. 기획샘이 난감한 얼굴로 “부장님 큰일 났어요. 교장선생님이 교문에 현수막 없어서 완전 화나셨데요.”라고 포문을 열었다. 읭. 며칠 전 구석에서 현수막 찾아서 손뼉 치며 좋아했는데, 그 현수막을 주무관님께 걸어달라 부탁한 게 3-4일 전인데 무슨 말이람. 알고 보니 그 현수막은 강당용이고 교문용은 작년에도 없어서 안 걸었던 것이다.
악. 어쩌지 하면서 한 2-3분 시간을 보냈다. 교감선생님이 다행히 “지금이라고 해요. 이것도 지나면 다 추억이야” 해서 바로 현수막 디자인 착수. 캔바로 다다다닥 10분 만에 디자인을 하고 사이즈 확인하고, 가까운 업체 수소문해서 전화를 냅다 걸었다. 아.. 9시 영업시작이라 땡 하자마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도 없이 현수막 빨리 당장 만들어내라고 했다. 바로 디자인 보내고 바로 견적서와 시안 컨펌하고 바로 제작에 들어갔다. 2교시에 기획샘이 품의 올리고 3교시에 실무사샘이 현수막 찾으러 가고 점심시간에 주무관님이 현수막을 걸어주셨다. 휴.. 그렇게 현수막 사건은 일단락.
10분 만에 문구도 디자인도 뚝딱!
5-6교시는 학부모 공개수업이었다. 난 5교시여서 학부모님 없겠지 했는데 2명이 계셨다. 재미도 없는데 보다 나가시겠지 했는데 결연히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문제는 수업이 아주 개판인 되었다는 것이다. ㅠㅜ 3월 첫 주부터 나는 수업에서 디벗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종이프린트를 없애고 디벗을 수업에 적극 활용해 보려는 심산으로 매일 디벗 가져오라고 하고 구글 클래스룸에 가입시켰다. 3주에 다다르는 그 시점에도 처음 디벗을 가져온 학생이 있고, 여전히 구글 클래스룸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이 있었다. 수업 도입에 준비물 검사(교과서와 디벗)를 하는데 샘 아이디 뭐예요. 비번 뭐예요. 클래스코드 뭐예요. 어떻게 들어가요. 안 열려요. 그런 애들이 서너 명이었다. 그거 해결해 주고 다 같이 구글클래스룸에서 퀴즈를 푸는데 일단 한참을 허비했다. 사실 난 익숙한 일이다. 그 시기에 그런 일이 많이 잦아들어 막바지였다. 문제는 학부모가 보기에 굳이 저렇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생각했을 것이다.
수업 내용도 위험요소가 많았다. 올해 나는 또 야심 차게 토론을 하고 이어서 쓰기 수업을 내 나름대로 구상해서 하고 있다. 그 토론 첫 번째 시간이었다. Working alone vs working in a team으로 자기 의견 패들렛에 써봐라. 이유 두 개씩 써봐라. 쓴 내용을 바탕으로 짝이랑 얘기해 봐라. 거기까진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뒤이어 댓글로 반대 의견 포스팅에 반박을 써보라고 했다. 그게 판도라의 상자였다. 갑자기 애들이 키득키득 웃더니 상관도 없이 자기네들끼리 서로 놀리고 장난치고 하면서 댓글이 130여개가 달렸다. 사실 수업 중에는 대충 그런 분위기만 감지하고 끝나고서야 알았다. 키득거리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차라리 내가 그때 몰랐던 것이 나았다. 이어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아 올리는 것까지 했다. 나는 몇몇 학생들 의견이나 자료를 짚어서 읽어줬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별 반응이 없었다. 말하는 이런 수업은 아주 탄탄하게 끌고 가야 그나마 이어지는데 나도 그렇게 준비하지 못했고, 애들을 너무 믿는 바람에 댓글 기능을 살려두어 그냥 화르륵 불타버렸다. 진짜 폼안나게 학부모 보는 대서 다 캡처해서 알아내서 벌점주겠다고도 했다.
끝으로 하던 대로 마음일기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끝나자 반장이 앞으로 와서 ”샘 수업 망한 거 같아요 “라고 확인사살을 해 주었다.
제일 장난으로 댓글을 많이 단 학생을 불러 한 소리를 했는데 그나마 다행으로 뻗튕기거나 ”왜 나만 갖고 그래요 “ 그러지 않고 순순히 인정했다. 너 말고 또 누가 그랬냐고 하니. ”엄청 많이 그랬을걸요. “하고 쓱 들어갔다. 그렇게 내 인생 최악의 공개수업이 끝이 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망했나 싶었다.
월요일이 되어 학부모들의 참관록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 많고 많은 코멘트 중에 유일하게 부정적인 내용인 있었는 게 그게 바로 내 수업이었다. 직접인용은 너무 마음이 아파 간접 인용하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속도가 너무 빨라 애들이 잘 따라가지 못한다였다. 그걸 보니 다시 한번 가슴이 쓰렸다. 윽..
충격에 빠지기에 난 그날 너무 바빴다. 6교시에 바로 강당에 가서 강당 좌석, PPT, 멘트, 순서 등등을 점검했다. 왠지 작년도 학부모 회장엄마가 불안 불안해서 그분께 자료를 넘길 부장샘께 더블체크차원에서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닿았다. 전화도 카톡도 쿨메시지도 안 돼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부장샘이 발표할 자료를 학부모에게 드리고 학부모가 단상에 올라간 발표 해야 했다. 솔직한 마음에 회장이면 이메일로 전달받은 내용을 미리 출력해서 적당히 할 말을 준비하고 내용 보면서 얘기하고 내려오면 좋으련만. 그것이 욕심이었다. 결국 나와 그 부장님은 총회 전 연락을 못했고 부장님은 그 발표가 총회 중이 아닌 총회 후에 하는 줄 알고 자료 전달을 못하셨다. 식은 진행되고 마침내 작년 회장의 전년도 활동 브리핑 시간이 되었다. 그 순간 회장어머니는 나에게 핸드폰을 내어 보이며 ”파일이 오류가 나서 안 열려요. “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고초를 겪었다. 아흥.. 불안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내 인생의 빅데이터가 sixth sense로 알려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도 적당히 얼버무리고 다음 식순으로 넘어갔다.
올해 회장을 맡으신 어머님은 총회 전에 잠깐 통화를 해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속이 뻥 뚫릴 듯 시원했다. “선생님이 그렇게 부탁하시는데 아이를 학교에 맡긴 이상 저도 계속 거절하는 게 예의는 아닌 것 같고요. 단지 회장인데 제가 일을 해서 폐를 끼칠까 봐 그게 염려됩니다. 그래도 한 번 해보죠! 저 사실 엄청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톡으로 뭘 요청드려도 내가 말한 것을 다시 짧게 요약한 뒤 확인했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내시고 때로는 내가 부탁하기 전에 준비해 두시기도 했다. 사소한 일인데도 신뢰가 확 갔다. 협조가 안 돼서 며칠 낑낑대던 중이라 더 빛이 났다. 그렇게 일단락.
학부모 총회를 시작하고 바로 초입에 교직원소개가 있었다. 별거 아니다. 교장교감행정실장소개이다.
그런데. 실장님이 굽은 어깨로 앉을 좌석 반대방향으로 종종종종 걸어가셨다. 내가 단상 위에서 바라보는데 “실장님 거기 아니야!!! 이쪽이야!”소리치고 싶었다. 왜 반말이냐면. 그만큼 속이 탔기 때문이다. 제 시각에 딱 앉아있는 게 그리 힘든지. 내가 다음은 행정실장 땡땡땡입니다.라는 그 순간 강당을 크게 빙 돌아 딱 자기 자리에 왔을 타이밍이었다. 아오.. 그렇게 일단락.
식은 생략된 것도 있고 하여 금방 끝이 났다. 교장선생님의 나는 운이 좋아. 그래도~로 시작하는 긍정적인 말버릇 갖기. 10분 운동, 10분 독서 그런 훈화가 생각이 난다. 깡 마르고 꼿꼿한 몸처럼 목소리에도 말도 군더더기가 없다. 그런 점은 좋으시다.
크게 한숨 내쉬며 식을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띠리링 전화가 왔다. 땡땡교육지원청 장학사 땡땡땡입니다. 난 뭘 내가 잘못했나 싶어서 흠칫 놀랐다. 이번에 검정고시 감독 명단 안 보내셨네요. 오늘 6시까지 꼭 보내주세요. 끝. 아오.. 아무도 안 하겠다는데 누굴 적어낸단 말인가. 금쪽같은 토요일 온종일 감독하고 최저시급 수준으로 받는 건데. 교감선생님에게 얘기하니 아주 쿨하고 라이트 하게 “부장님이 가세요. 자원자 없으면 담당부서에서 가야지.”라고 말했다. 이게 뭐지.. 싶었다. 그렇게 얼결에 나와 (불쌍한) 기획샘 이름을 써서 보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곤란한 차출을 해야 할 땐 교감선생님이 힘없는 기간제샘이나 어린 샘을 보냈다. 아니면 그런 분들이 반강제적으로 자진해서 갔다. 그러느니.. 내가 가는 게 낫다 싶기도 했다. 아 모르겠다. 감독 다음날 마라톤 신청했는데 나 이제 철인 되는 건가?
그렇게 보내니 4:30 퇴근 시간이 되었다. 하루를 보내며 이래저래 심장 쫄리는 상황이 많아서 그런지 도저히 집으로 곧장 갈 수 없었다. 같은 층에 20-30대 젊은 샘들은 자축하는 의미로 성수동에 놀러 간다는데 거기에 낄 수도 없어 그 길로 냅따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