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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총괄의 세계 (2)

by 던다

둘째 날이 밝았다.

1. 다시 학부모 시감 연수를 짧게 진행했다.

2. 중간중간 조퇴로 복무 상신을 한 샘들의 결재를 했다. 아무래도 이날은 전부 다 나가시는 것 같았다. 교육학습공동체 협의회가 주였다. 아.. 나는 오늘 어디로 누구와 나가나.

3. 중간중간 어제 있었던 영어시험 서술형 채점을 했다. 빨간펜-파란 펜-초록펜 채점이 오랜만이다.

쉬운 문제였지만 그래도 아주 기본적인 것을 쓰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가려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문제는 공부를 하지 않아도 풀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열린 문제였는데 역시나 예상을 한참 빗나간 답변도 간간이 있어서 생각의 다양성을 느꼈다.

4. 수석샘이 잠시 수석실로 오라는 인터폰이 왔다. 달려가보니 다른 몇몇 부장샘들도 계셨다. 15분 남짓 짧은 다과와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샘들도 역시 어제의 그 이슈처럼 왜 OMR 한 장씩 나눠주냐, 예비령 치고 교실 들어가면 할 게 너무 많다. 예비령 전에 또 종 치면 안 되냐. 등등 여기에도 의견이 많았다. 예전에난 이야기를 나눈다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뭐랄까 마치 나에게 이야기를 쏟아내는 기분이었다. 아닌 거 알지만, 들으면서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동시에 이게 내 주 업무다 싶기도 했다.

부장샘과 수석샘과의 담소자리에서 또 학교 사정의 내막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교장-교감-행정실장의 관계랄까. 그로 안 한 영향으로 교사들이 업무 하는데 자잘한 것부터 엄청 짜증 나는 일까지 다양한 파급효과가 있다.

5. 2교시가 끝났다.

둘째 날 2학년은 2교시로 고사가 끝이고 3학년은 3 교사 시험이 있어서 2학년들을 재빨리 건물 밖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두 번 빨리 하고하라고 방송을 했지만 염려돼서 4층으로 뛰어 올라가 상황을 봤다. 2학년 학생들이 잔뜩 몰려 있어서 양 떼지기처럼 애들을 나가라고 안내했다. 마이크도 없어서 생목으로 “자~ 나가자~~” 이랬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2학년부장샘의 도움을 왜 요청하지 않았나 싶다. 여유가 없었다.

6. 3학년 고사까지 마치고 완전히 끝이 났다.

1층 교무실 탁자에 스테이플러, 바구니, 포스트잇 등 각종 도구들을 정리했다.

7. 12시 고사 종료가 되고 나니 12:30쯤에 거의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교 밖으로 나갔다. 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같은 부서 샘 민**샘과 박**샘과 퇴근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메뉴를 못 정하고 있으니 민**샘이 여기서 고르라며 뭘 가져왔다.


의견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의견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샘의 제안이 너무 고마웠다. 이런 귀염둥이! 우리는 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고 **단 길로 가서 일본식 덮밥을 먹고 가뿐히 산책을 했다. 머리와 마음에 낀 잡음과 찌꺼기가 좀 덜어내지는 기분이었다.


산책을 하다가 이런 시화를 봤다.


목계지덕(木鷄之德) :

나무로 만든 닭처럼 작은 일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을 가짐.

나에게 필요한 문구였다. 많은 말 중에서 적당히 흘릴 건 흘리고 필요한 것은 빨리 대처하는 것. 모든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

단 이틀 고사는 내가 이제껏 치렀던 고사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다채롭고 정신없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명동 같다고 할까. 춘절 중국야시장 같다고나 할까. 이제껏 내가 겪은 건 그저 그 모습을 영상을 본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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