읭 나에게?
재작년 12월 초순쯤이었다.
학교는 빠르면 11월 말, 보통은 12월 초부터 업무 분장 물밑 작업이 시작된다. 특히 업무와 책임이 많은 부장 자리는 썩 선호하지 않는 자리이다. 대부분 부장이면 담임을 맡지 않아 학교나 성향에 따라 부장을 더 선호하기도 하다.
교장선생님께서 교장실로 부르셨다. 근무하다 보면 교장선생님과 따로 얘기할 일은 거의 없던 터라 의아했다. 교장선생님은 뜻밖에도 교무부장 자리를 제안하셨다. 서른 넘어 교직에 들어와 5년간 휴직을 하고 나니 내 경력은 여전히 한 자릿수이고 담임경력도 다섯 번밖에 되지 않은 초라한 상황이었다. 오죽할 사람이 없으면 나에게 이런 제안이 왔을까 싶었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을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뒤에서 아낌없이 밀어주시는 정말 보기 드문 분이셨다. 말씀도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되게 마음을 움직이게 하셔서 하루 고민하고 덥석 그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게 뭐길래 그리 고민을 했나.
내가 아는 교무부장님들은 크게 세 부류였다.
- A. 척척박사형: 학교규정이나 생활기록부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방위적으로 알고 있어 물어만 보면 척척 답이 나오는 형. 종종 일중독과 맞물리기도 하다.
-B. 내 갈길형: 승진 준비로 학교일은 부원들에게 모두 넘기고 연수 듣고 대회준비하고 이것저것 개인 일들로 바빠 눈보고 이야기 하기에도 바쁜 형.
- C. 있는 둥 없는 둥 형: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슬슬 일하는데 크게 구멍 나는 일 없이 학교가 굴러가는 형. 부원들 크게 힘들이지 않고 그렇다고 막 척척박사는 아니지만 함께 알아보며 지내는 형.
내가 본 A, B형 교무부장샘들을 보면 저건 정말 못해먹는 자리다 생각했었는데 직전에 본 물 흐르듯 지내던 C형 부장님형을 만나며 생각이 좀 달라졌던 것 같다. 있는 듯 없는 듯하는 것이 무위지치처럼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걸 잘 몰랐다.
보통 교무실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는 점.
수업 지원을 받아 수업을 적게 할 수 있다는 점.
당연히 담임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혜택을 받는 기분도 들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조금 들었다.
동시에 학교 일을 이렇게 몰라도 이렇게 막 하고 되는 걸까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12월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