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학년 준비기간

일개미 같았던 나

by 던다

몇 해 전부터였을까. 2월 중 적어도 3일은 학교에 전 교 사가 출근해서 신학년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

학교마다 다르긴 한데 어쩌다 올해 근무교에서는 신학년 집중연수 주관이 교무부가 되었다. 그 말은 내 업무란 말이다. 보통은 연년이 내려오는 연수 계획표에 신년 숫자를 하나 바꿔 기안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교장선생님께서는 무엇하나 허투루 하시는 법이 없으셔서 하나하나 짚어서 생각하시는 스타일이라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흔히 하는 동일 교과 선생님들끼리 만나서 일 년에 누가 어느 반을 몇 시간을 정하는 교과협의회, 일 년간 굵직한 업무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가닥을 잡는 부서협의회를 하고; 선생님들끼리 자유롭게 모여서 교육활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교원학습공동체 구성이나 소소하게 어떤 동아리 맡을지 등을 이야기한다. 그 정도가 매해 2월에 하는 것들이다.


1. 평가연수

거기에 더해 교장선생님께서는 뭔가 더 알차게, 실속 있게, 힘들게 출근한 선생님들이 괜히 나왔다는 생각 안 들끔 촘촘히 뭔가를 하고 싶어 하셨다. (아~ 그 교육청 문서에서 늘 부르짖는 그 이름 내. 실. 화) 내실화가 인간이라면 우리 교장선생님이다 싶게 참 꼼꼼히 계획을 살펴보시고 조정해 나갔다. 그리하여 첫째 날 올해 달라진 교수학습 평가계획을 위해 수석교사샘의 진액만 모아 모아 2022 교육과정을 훑고 중1 평가계획서 쓸 때 유의사항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들으며 교육청에서 해마다 하나씩 더 얻는 듯한 평가계획서 내용을 들으며 교사들은 너무 과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면으로도 이렇게까지 요구한다고? 싶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교사는 교육의 평등을 위해 국가발전을 위해 완전히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돈 주고 이렇게 부려먹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돈은 모르겠고 이 일 자체가 일면 천주교에 신부님처럼 청빈한 삶을 강요받고 극도의 적은 금액만으로 생활하고 반드시 매일 해야 하는 미사(수업)를 해야만 한다. 싫든 좋든 발령 나면 거기서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상도 그렇다. 싫든좋든 그 동네 교우(학생)를 만나야만 한다. 이것은 신부와 교사의 연결고리.


2. 학년별 교과협의

다른 새로운 시도는 동학년 교과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융합이 가능하지 않은지 논의를 하는 것이었다. 일부는

뭘 이런 걸 시키나 군소리를 하셨지만 난 이런 수업이야기를 좋아해서 재밌었다. 그 결과 꽤나 그럴싸한 이야기로 모여졌다.


3학년: 4-5월에 걸쳐 교과가 함께 ‘환경’을 주제로 통합수업 진행

- 국어 : 환경 관련 글 독서 수업

- 기술 : 적정기술 단원 수업 진행(물품 예시 설명 및 사진 중점)

- 가정 : 업사이클링 ‘양말목공예’ 수업(친환경 실천)

- 사회 : 환경 관련 ‘국가 간 폐기물 사고팔기 현황’ 글쓰기 수행평가 실시

- 영어 : 벌 개체 수 감소에 관한 ‘환경의 날 포스터 만들기’

나. 3학년 협력종합예술활동 관련 교과 간 융합수업 실시

- 국어 : 시나리오 배우기 단원 수업진행 후 ‘시나리오 작성’ 수행평가 실시, 수행평가 결과물 시나리오를 토대로 협종에서 시나리오 수정 후 진행

- 기술 : 정보통신기술 단원 수업 진행 후 촬영된 동영상을 편집하여 영화가 완성될 수 있도록 수업 중 시행하도록 하여 수행평가의 과정으로 포함하기

앗! 그만. 최선을 다해버렸네.

3. 학급경영연수: 야 너도 할 수 있어(전 괜찮습니다만..)

셋째 날에는 학급경영연수가 있었다. 한 주 전에 급하게 섭외한 김포에 와니샘이 오셨다. 일단 체구가 엄청 크셨고 레크리에이션 강사인가 개그맨인가 사회복지사인가 야영촌에 청소년지도사인가 싶은 에너지가 넘치고 마음고 넓은 베테랑 담임선생님이셨다. 내가 섭외한 분이라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맘 졸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어마어마하셔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행한 학급활동의 레벨이 너무 높아서 들을수록 ‘아 나는 못하겠다. 내 자식이 저 샘 반이었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와니샘은 엄청나셨고 본인 또한 애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매우 즐기는 것 같았다. 애들이랑 팥빙수 해 먹기, 비빔밥 해 먹기, 노래방 가기, 뻑적지근 단합대회, 퀴즈 풀기, 벚꽃놀이 가기,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고 상담하고 아이스크림 사주기, 학부모 단톡방, 애들

활동 사진 모아 뮤직비디오 만들기, 학급화폐, 좌석배치 경매로 하기 등등 등등. 그래. 그런 것은 숨길 수 없다. 전국 교사 중 몇 명 정도는 저 정도 열정 있는 분이 계셔야지 암..


4. 동네호텔 런치 스페셜 먹기

또 다른 시도는 첫날 근처 뷰 좋은 곳에서 런치 스페셜 메뉴를 먹으며 식사를 하고 간단히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지나가다가 점심 메뉴가격이 17,000원으로 괜찮아서 눈여겨봤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선생님들을 모두 모셔서 식사를 하게 되다니 그런 경험도 새로웠다.


5. 신입생 인적성검사 실시

아! 새로운 시도 또 있었다. 신입생 대상으로 반배치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얻고자 인적성검사를 실시한 것이다. 45분간 대인관계 관한 문항의 문제를 학생들이 풀었다. 1학년 부와 방송담당샘 도움으로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1학년 부 부장선생님을 비롯하여 1학년 경험이 많지 않은 저경력선생님들이 굳이 이런 거 왜 하냐고 하셨었다. 일 늘어나는데 해야 하냐는 눈치였다. 난 꼬박 10년 전 악몽, 지옥, 최악 그 어떤 단어로도 제대로 표현 못할 반을 1학년에서 만나 심신이 거덜이 났었다. 내가 이 검사를 강하게 주장하고 교장선생님의 어시스트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주도적으로 시험을 맡아하게 되어서 힘이 부쳤다.


그 외에도 중간중간 기간제, 시간강사샘 채용도 해야 했고, 3일간의 밥 메뉴선정과 주문을 맡아하고, 여기저기서 믈어보는 것, 불만인 일들이 자잘하게 끊임이 없었고 거기에다가 교감선생님도 출장이셨다.


어찌 됐던 왠지 원맨쇼와 같은 3일이 지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혼자 준비하다시피 했지만 학기 중에는 되도록, 아니 최대한 일을 나눠서 해야겠다. 일감과 마감일만 빨리빨리 알려줘고 중간은 가는 부장 같다. 3일은 개미처럼 움직였지만 학기 중엔 컨트롤타워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일단 오늘은 요가를 하고 초코맛 브라보콘 먹고 숙면을 취하고 싶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부장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