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시간여행] 2002. 3

대학수첩: 유학고민

by 던다

1998년 드디어 대학생이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구시렁대느니 그냥 열심히 지내자는 마음으로 과대표까지 했다. 전공은 영양학과였다. 영양사로 취직이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영 나와 맞지 않았지만 또 그럭저럭 잘 지냈다.


5월 즈음인가 학교를 그만두고 반수를 결심했다. 강남역에 있는 재수학원을 학교처럼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7~8개월을 보내고 1998년 원하는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나의 대학교의 역사는 뒤에도 많이 있지만 엿튼 거기까지는 그렇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엔 엄청나게 많은 일기를 사이버일기장에 적었는데 회사가 없어지면서 일기도 자연히 사라졌다. 1998년의 다이어리도, 그 이후의 학교 수첩도 갑자기 동선이 커진 나의 삶처럼 붕 떠 버렸다.


간신히 발견한 2002년 3월의 메모이다. 별 내용도 아닌데 갑자기 왜 적었는지 모르겠다.


1. 당시까지만 해도 집 전화를 쓰던 때가 오래지 않아 그때의 경험을 썼다. 엄마 목소리나 톤이 나랑 매우 비슷해서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내용이다. 엄마는 사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좀 아이 같은 면이 있어서 함께 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2. 2022년 내가 대학교 4학년이 되는 해였다. 이때가 내가 진로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다. 구체적인 길은 모르겠고 배우던 전공에 대해 유학을 가고 싶었다. 광고심리전공으로 더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평생을 허리띠를 졸라맨 듯 살았다. 그러다 그즈음 아버지가 승진을 하시고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드디어 우리 집도 살림이 피는 건가 하는 희망찬 기대를 품새 된 때였다.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말 붙이기 힘들어서 쭈뼛대다가 엄마에게 슬쩍 아버지의 의중을 물어보았다. “아빠 돈 있을까?” 내 유학비를 지원해 주실 수 있는지를 직접 못 물어보고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도 아빠의 경제사정을 잘 모르셔서 ”우리 이제껏 지지리 궁상으로 살았는 데 있겠지. 옷도 글뱅이로 입고 다녔는데. “ 하셨다. 엄마는 거의 대부분 전업 주부셨고 아버지가 저축을 위해 상당 부분 떼어내고 주는 생활비로 생활하셨다. 그러니 당연히 전체적인 수입과 여윳돈은 알 길이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존경하면서 미워하고 또 사랑하셨다. 그 양립하기 어려운 태도가 나로선 혼란스러웠다. 회사원이셨는데 여느 공무원만큼 길게 재직하셨다. 주변에 사정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뒤 생각하지 않고 큰돈을 지원해 주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생활력 강하고 의로운 멋진 사람이었다. 실제로도 그러셨다. 하지만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종종 무시했고 엄마가 하는 가사, 육아를 마음에 차 하지 않았다.


나와 아버지와 소통고리가 끊겼던 것처럼 부부간에도 이야기가 원활하지 않았다. 군데군데 끊긴 도로처럼 끊기면 끊긴대로 정서적으로 조금 불안정하게 가정을 꾸려갔다.


그리하여 나의 유학 준비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어렵사리 아버지께 나의 의사를 밝히고 아버지는 깊은 고민을 하셨다. “한 번 생각해 보자.” 하고 쇼퍼에서 삼각 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셨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흔들렸던 것 같다. 나로서는 겨울방학과 학기 중에도 토플, GRE스터디를 하면서 가열하게 시험 준비를 했고 점수도 어느 정도 받게 됐다. 같이 준비하던 사람들이 다음 스텝을 밟아갈 때 나는 돌연 ‘수년간 유학을 가느니 원래 하고 싶었던 교사를 하자.’ 하면서 더 먼 길은 수능-교대(사대) 코스를 택하게 된다.

진로 고민을 하던 던다야.
인생은 의지와 노력에 달려있다고 하지. 그러면서 또 타고난 운명과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
대학 내내 미래의 직업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가, (광고동아리를 하며 막연히 광고회사에 가면 어떨까를 생각하긴 했지) 대학의 끄트머리에 집중적으로 고민하던 시기에 다다르게 되지.

넌, 매 순간 성실하게 임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긴 안목에서,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누군들 그 나이에 그렇게 잘할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됐던 인생은 어떤 면에서 우연과 필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원하는 전공과 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쁨과 영광도 어찌 보면 2-3년 잠깐이야. 결국은 자신이 가는 길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일 같다.

이후에도 넌 숱한 선택 속에 그 종착지는 교사가 될 터인데 그 과정과정이 또 너를 더 깊게 만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인생은 재미있는 부분이 많거든.

2000년대의 던다를 응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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