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거기 있는 작은 나에게
나는 쉽게 물건을 버리는 타입이다. 이사할 때나 계절맞이 대청소를 할 때는 물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어김없이 큰 종량제 쓰레기 봉지에다가 잘 쓰지 않은 물건을 과감하게 쓸어 담는다. 그리고 나면 마음의 짐을 좀 덜어내기라도 하는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렇게나 잘 버리는데 이상하리만치 내 일기장은 그 위기의 순간을 모두 넘기고 잘 살아남았다. 사실 더 잘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많은 분량은 무심결에 버렸고 아주 일부만 남아 아쉽다.
유난히 나에 대해 곱씹는 걸 좋아했다. 성장하여 부모에게서 독립하니 부모님이나 친척들에게서도 어린 나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게 되었다. 이제 어린 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나뿐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원할 때마다 만나고 실컷 그 상황에 젖어 있고 싶었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 속 풀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 날의 내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조용하고 의기소침한 내가 3D처럼 스르르 튀어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그때의 집, 학교, 주변 사람까지 모두 끌려 나왔다. 어른이 된 나는 그 세계 속에서 관객으로 때로는 조력자로 등장할 수 있었다. ‘그래 너 그때 힘들었구나, 기특했구나, 대견하구나, 그때, 네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놀란 사람은 너인데, 지금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너인데 그때 여건이 그러지 못해서 시간에 휩쓸리듯 지나가 버려서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내가 대신 사과해. 그런데도 그렇게 시간을 헤치고 살아 내가 되었다니 고마워. 내가 여기에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해줄 수 있어 좋았다.
나에게는 내 일기장을 펼치고 어린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종의 작은 굿판이었다. 생각으로 글로 풀어내고 내며 조금 개운해졌다. 굳이 무당 같은 중간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과거를 거슬러가는데 도움을 주는 일기장이 있었고 그것과 있으면 타임머신의 작동버튼처럼 스르륵 이동할 수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한 몇 가지의 방법을 지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종교로, 음악으로, 스포츠로, 예술로 몰입하고 즐거움을 얻고 또 깨달음을 얻는다. 그러면 한 꺼풀 벗겨진 새로운 내가 되어 힘껏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이 당신의 오래된 기억을 불러냈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미처 못다한 대화를 과거의 당신과 나누기를 바란다. 그 기억 속에서 마주한 어린 당신도 아주 기특하고, 대견하고,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