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시간여행] 프롤로그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by 던다

‘넌 어릴 때 넌 참 순했다. 넌 낙서를 할 때도 칸에 맞춰하는 아이였다. 넌 동네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쏘아대는 말에 한마디 반격을 못하고 당하는 아이였다. 넌 참 볼이 토실토실한 아이였다.’ 나의 어린 시절을 아는 어른들이 나에 대해 하는 얘기가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 진위가 궁금한데 확인할 길이 없다. 나의 주인은 나인데 정작 나는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내가 나라서 나를 밖에서 들여다보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린 시절의 일기장을 펼쳤다.


그 속에 아주 익숙하면서 조금 낯선 내가 있었다. 작고 귀엽고 소심한 아이가 부지런히 매일을 살고 있었다. 자라는데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자잘한 좌절과 상처, 나를 둘러싼 부모와 친척과 친구들, 어쩌다 등장하는 특별한 경험 등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독서라는 게 일종의 여행이라고 하더니, 일기장을 읽는 것이 바로 그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나는 지금도 매일 일기를 쓴다. 도리와 역할 속에 살다가 일기를 쓰며 오롯이 나를 마주할 수 있다. 그냥 나. 오욕칠정을 그대로 느끼는 나. 옛 일기장을 통해서도 어린 나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과거의 나이니 딱히 엄하게 훈육할 필요는 없었다. ‘마음 읽어주기’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그때의 나에게 한없이 다정할 수 있었다. 속상함을 표현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그때의 나를 토닥이며 말해볼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어린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힘겹게 입을 떼더니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나이의 말투, 그때의 목소리로 좋았던 일, 슬펐던 일을 줄줄줄줄 털어놓았다. 말이 없던 아이라 어른들이 생각과 감정도 없나 싶었겠지만 실은 작은 몸 안에 다 담고 있었다. 어른인 나는 ‘그랬구나, 속상했구나. 즐거웠구나. 그런데 그거 알아? 좀 더 자라면 지금이랑은 말도 못 하게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말하고 싶은 것도 딱딱 말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나씩 하는 그런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한 번 치켜뜨더니 속으로 미소 짓는 듯했다.


미처 나누지 못한 대화를 마음껏 나누고 돌아오니 기분이 개운했다. 찢어진 마음 한구석을 봉합하고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일기라는 나의 기록물 한 조각과 지금의 나의 감상, 그리고 어린 나에게 해주고 싶은 지금의 나의 조언을 한 편의 짧은 글로 썼다. 한 편 한 편 읽어 내려가며 과거의 자신을 만나 그때의 자신에게 못다 한 이야기를 실컷 해주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쓴다. 지금의 일기가 시답잖게 느껴져도 훗날 나만의 기록물이 되어 지금의 나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역사가 그러하듯 나의 일기도 현재를 살기도 하지만 나의 미래를 또 나의 과거를 지키기도 한다.


202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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