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재밌데.
남편이 카톡으로 보내왔다. 밑도 끝도 없이 F1이라니. 이런 청자를 배려하지 않은 말에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다시 ‘F1이 뭔데?’ 물으니 영화라고 했다. 자동차 경주 영화야. 시네마 지옥에도 호평했어. 같이 보는 유튜브 영화 코너에서 대게는 물고 뜯고 하는데 입을 모아 칭찬했다니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그 주 주말 오후에 영화관에 가서 관람했다. 정부에서 뿌린 영화쿠폰 덕인지 영화관 좌석이 만석이었다. 늦게 예매한 우리는 1열에서 고개를 뒤로 젖혀 봐야만 했다.
F1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도 재밌었다. 무식하게 요약하자면 티격태격하던 어리고 나이 많은 두 레이서가 결국 힘을 합쳐 경기에서 우승한다는 내용이다. 인터스텔라와 듄의 음악감독 한스 짐머와 레이싱 탑건의 감독, 그리고 배우 브래드피트가 힘을 합쳤으니 보기 전에도 끝났다고 했었다. 질주하는 레이싱카 안에 내가 앉아 있는 기분이 들면서 마치 뭔가를 때리고 부수고 하는 액션영화를 볼 때 같은 약간의 쾌감이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파괴의 본능 때문인지 뭔가 후련하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 사실 이건 다 밑밥이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따로 있다. 2시간 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내가 어떻게 잘 이겨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실은.. 실은. 브래드피트 보느라 잘 봤다. 연출이고 음악이고 다 제쳐두고 브래드피트가 너무 멋있었다. 60대 라는데 어떻게 그렇게 멋있을 수 있나. 목까지 지퍼로 채운 레이싱슈트도 멋있고, 숙소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상의 니트와 하의 면바지를 아이보리로 맞춰 입은 모습도 고급스럽고, 방에서 혼자 풋셥하는 모습도 달리기 하는 것도 악! 괴롭게도 멋있었다. 이것이 멋짐 한도초과인가.
스토리에 무관하게 갑자기 여자 테크니컬 디렉터와 러브라인으로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임지지 못할 사랑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는다며 눈길도 주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걸.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하여 나는 155분간의 영화를 보고 그대로 브래드피트에게 빠지고 만다.
나의 1990년대와 2000년대 충분히 그를 덕질하며 보낼 수 있었을 긴긴 시간을 외면하고, 어째서 2025년에 와서야 환갑을 넘긴 그럼에도 빛이 나는 그를 만나게 되었는가. 참 의아한 일이다. 과거의 나는 외모의 위력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껍데기뿐인 것을. 끌끌. 이런 마음이어서인지 애당초 잘생긴 남자는커녕 남자에도 관심이 없었다. 시대를 풍미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그냥 눈 두 개 코 하나 달린 서양남자일 뿐이었다. 여차저차 집에 와서 급히 브레드피트를 검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세계 1위 존잘남’이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세계가 인정한 미남이래잖아. 휴 다행이다.
그리하여 이번 주 나는 자체적으로 (개학도 가까워지고 하니 더욱 간절하게) 브래드피트 주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주간을 기념하여 그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2개라도 해치우고 싶은데 나도 나의 일정이 있으니 한 개 정도로 보는 중이다. 이 정도면 그쪽(브래드피트)에서도 이해해 주지 않을까 싶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세븐은 7대 죄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그건 그거고 나의 포인트는 브레드피트이기 때문의 그의 뽀샤시함과 열기왕성함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은퇴를 앞둔 형사 모건프린먼과 짝이 된 신참내기 형사역이었다. 깡패와 경찰의 중간쯤인 듯인 듯한 행동과 말도 귀여웠다. 표정연기 중 압권은 마지막 그 문제의 상자를 확인했을 때였다. 극도의 분노와 슬픔을 표현한다면 그런 얼굴이겠다 싶었다. 아.. 그 옛날 이런 수작을 찍었었다니. 내가 고1 때 매일 다꾸를 할 게 아니라 극장에 갔어야 했다.
같은 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이다. 아. 슬슬 데이비드 핀처는 브래드 피트를 그러니까. 그거 뭐라고 하나 페르소나라고 하던가? 나도 감독이 될 걸 그랬다.라는 생각을 한 3초쯤 한다. 2009년 작이니 그의 나이 45세. (그런데도 그렇게 눈부셨단 말인가) 러닝타임 166분. 이 감독은 나를 시험하려는 듯 러닝타임도 하나같이 길구나 싶다. 그럼에도 쿠팡플레이에서 플레이 버튼을 비장하게 누르고 작은 화면에 집중했다. 역시 포인트는 주인공 벤자민인 브레드피트이기 때문의 인물 위주로 감상한다. 쪼글쪼글한 상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이 어느 정도 노인일 때부터 그 잘생김이 드러나나 지켜보았다. 아. 한 70부터도 잘 생김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영화의 중후반에 가서야 30대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 멋짐에 갑자기 내 가슴이 죄여오는 것 같았다. 어느 미모의 배우를 상대배우로 둬도 브래드피트에 비해 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기울어진 내 마음 때문인가. 냉철한 이성의 눈 때문인가. 특히 벤저민의 외모 전성기에 요트를 타는 씬은 아프로디테가 밀리는 아도니스 같다고나 할까. 아.. 영화가 죽음과 삶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브래드피트의 외모변천사를 보는데 주력하고야 말았다.
남은 방학은 파이트클럽(1999), 조블랙의 사랑(1998)을 보며 그의 30대 중반을 감상해야 하고, 바스터즈:거친 녀석들(2009)을 보며 지금 내 동년배일 때의 모습도 곱씹어야 한다.
F1 더 무비를 보고 나오면서 60대의 브래드피트가 사귀자 하면 40대인 나는 수락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내가 창창인데 아무리 잘 나가는 브래드피트라도 말인지. 한데 찾아보니 현재 30대 초반의 연인과 잘 사귀고 있다고 해서 의문의 1패를 당하고 말았다. 아. 진짜 대시하면 유부녀의 이름으로 거절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