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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Apr 09. 2021

마치 일기처럼

[단비글] '일기'

부쩍 진전이 없는 글쓰기에 우울한 날이 많아졌다. 잘 썼다고 생각한 글이 혹평을 받은 날이면 더 그렇다. 글의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처지이지만, 단어·문장·문단 한 땀 한 땀에 힘을 준다. 대학원 교수님은 나의 글에서 내 인품을 살핀다. 힘이 잔뜩 들어간 필치, 각종 개념을 욱여넣은 문장과 문단을 노련하게 지적한다. 그 속에서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과 그럴싸하게 감춘 무식을 들춰낸다. 그러고는 말한다. “특히 너는 잘 쓰려고 하지 마라↘”


치부가 드러나니 내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나는 잘하려고 애쓰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교수님에게 따지듯 물었다. 글을 잘 쓰는 것이 좋은 기자의 조건 가운데 하나인데, 잘 쓰려는 욕심조차 갖지 말라는 것에 납득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글을 잘 쓰지 못해 마음 고생하는 나로선 너무 억울했다. 그러자 너털웃음을 보인 교수님이 말했다. “네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하게 써야 해. 그 느낌을 알아야 문체가 생기고 내재화가 되는 거다"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로는, 글 쓰는 게 단 하루도 마음 편하지 않았다. 모든 생활이 ‘글’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눈에 불을 켜고 글감을 찾았다. 번득이는 생각이 들면, 수첩부터 들었다. 몸과 마음은 미묘한 긴장상태였다. 일상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마주한 순간에 몰입하지 못하고, 글감의 쓸모만을 따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의 과장된 이야기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내 생각을 확신하지 못하게 되자, ‘마음 가는 대로’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쓰기에 지나친 목적의식을 담은 탓이다. 잔뜩 긴장한 글에서 독자는 나의 불안을 읽어냈다.


일기를 쓸 때는 마음이 항상 편안했다. 평범한 하루가 통으로 글감이었다. 맛집에 간 이야기를 썼고, 둘러본 풍경을 그려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썼고, 그 날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단 하루에 나의 모든 삶이 있었다. 기억이 증발하기 전에 그 생생함을 붙잡아 써냈다. 온전히 몰입한 하루를 글로 써내다 보니, 그 날에 재차 빠져들었다.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고, 나의 주변을 차분히 다시 살폈다. 내 마음을 오롯이 일기에 담았다.


일기는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글이다. 나의 하루를 솔직하게 담고 있다. 그런 하루 하루를 쌓은 일기장에는 진실한 삶이 있다. 편안한 글, 일기도 저널리스트의 글쓰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저널리즘은 오직 사실만을 다룬다. 사실을 과장하지 않고 축소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분수가 넘치지 않으며, 모자라지도 않는다. 마치 일기처럼 말이다. 매일 밤 일기장을 펼칠 때, 나는 내 삶과 세상에 가장 정직한 인간이 된다. 그 감각을 기억해 또 다른 글을 써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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