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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May 19. 2021

공룡발자국은 누구의 것인가

[단비글] '발자국' ④

나는 유년기를 거의 산속에서 보냈다. 관악산 자락에 집이 있어서, 문을 열고 나가면 산기슭이 코앞이었다. 관악산 능선을 우리 집 앞마당처럼 누비고 다녔다. 산속으로 자주 모험을 떠난다는 기분이었는데, 관악산 곳곳에 숨은 참호와 동굴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하루는 거대한 바위 위에 홈이 패인 자국을 발견하고는 잔뜩 흥분했다. ‘공룡발자국’이라는 생각에 온 동네 친구들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한동안 다른 발자국도 찾아보겠다며 산속을 이 잡듯이 쑤시고 다녔다. 물론 내가 발견한 흔적들이 공룡의 발자국은 아니었다.


고생물의 흔적을 연구하는 생흔학에서, 새로운 공룡을 발견하면 최초 발견자에게 이름을 붙일 기회가 주어진다. 1901년 발간된 <카네기 박물관 전기> 1권에서는 새로 발견한 공룡의 이름을 ‘디플로도쿠스 카네기(Diplodocus Canegii)’로 붙였다. 고생물학자 존 햇처(John B. Hatcher)가 박물관을 설립한 ‘앤드류 카네기’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카네기는 공룡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역사에 남긴 셈이 됐다.


하지만 새로운 공룡에게서 카네기의 이름만을 떠올리는 게 옳은 것일까? 희미한 발자국에서 공룡류를 분류해내고, 공룡의 자세와 걸음걸이, 행동 습성 등을 유추해내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다. 그 연구자의 수도 발견 현장에 따라 수십 명에 달한다. 공룡의 흔적을 지층에서 분리해야 하는 경우에는 작업 시간만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렇게 나온 연구 결과가 있어야지만, 우리는 수억 년 전 지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안에 들어간 수많은 이들의 품과 열정을, 카네기라는 이름이 품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뉴스는 누구의 것인가.’ 단독 보도한 뉴스가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 바이라인(글쓴이)을 건 기자가 크고 작은 명성을 얻는 경우가 있다. 이때 기자는 자신이 사회를 움직인다는 착각을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공명심에 눈이 멀어 기자라는 직업에서 이탈해버리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에 취해 ‘객관적인 전달자’라는 저널리즘의 책무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뉴스를 혼자 만들 수는 없다. 뉴스는 발굴 – 취재 – 보도 - 결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을 통해 평가받아야 하고, 이 모든 일은 기자가 혼자 해낼 수 없다. 취재원은 자신의 삶을 뉴스의 재료로 내어주고, 여러 직군의 동료들은 좋은 보도를 위해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그렇게 뉴스를 본 시민들은 웃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 마침내 뉴스는 사회를 이루는 지식 정보가 된다.


다행히도 공룡발자국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들은 아무 이름이나 붙이진 않는다고 한다. 대개 학계 작명 방식을 따라, 기존 고생물 분류에 편입시킨다. 국제적인 고생물학 연구에 기여하는 셈이다. 우리의 뉴스 보도는 사회 지식 정보에 기여하고 있을까. 일부는 자신이 보도한 뉴스를 개인의 치적으로 여기진 않은가. 자신의 유명세에 취해 저널리즘과는 멀어진 언론인을 보면,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기고 싶은 족적이 이름인지 선한 영향력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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