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비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글방 Apr 18. 2021

난 일기가 진짜 싫어

[단비글] '일기'

난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적이 없다. 언제나 누군가 옆에서 일기를 쓰라고 강요했다. 내가 일기 쓰는 모습을 지켜봤다. 일기는 부담이고 강압이었다. 누구나 강압적인 행동에는 불편함을 느끼듯 자연스럽게 일기는 ‘싫은 행동’이 돼버렸다.      


첫 일기는 방학 숙제였다. 어머니는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시키는 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전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나는 6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냈다. 저녁 7시가 되면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 숙제를 했다. 그 시간이 너무 싫었다. 앉아서 컴퓨터 게임이나 팽이 놀이를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것이라며 어린 나를 다그쳤다.    

 

일기를 내면 선생님은 한두 문장의 코멘트를 달아줬다. 단 한 번도 그녀들이 달아준 멘트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일기장을 펼치며 흘깃 지나간 적은 있었으나 주의 깊게 읽고 코멘트를 통해 선생님과 소통한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즈음에는 담임의 코멘트를 달갑지 않게 느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지 않았으면 일기를 안 써도 되는데”라고 생각했다. 일기와의 첫 만남이 영 별로였던 탓인지 중학교에 진학한 뒤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일기를 쓰지 않았다.     


두 번째로 쓴 일기는 ‘소나기’였다. 소중한 나의 병영 일기. 훈련소에서 전투복 등의 보급품을 보급하며 나눠준 일기장이었다. 낮에는 훈련을 받고 오후 8시 30분, 점호 시간이 되면 소나기 작성에 들어갔다. 여자 친구에게 보낼 편지도 못 쓰는 마당에 일기 따위나 쓰라고 하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훈련소를 수료하는 내내 조교가 눈앞에서 소나기 작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편지지를 꺼내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졌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얼마 못 가 여자 친구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 13살, 마지막으로 일기를 쓰고 10년 만에 다시 만난 일기는 역시나 달갑지 않은 녀석이었다.     


이렇게 일기 쓰기를 싫어하지만 일기를 쓰는 누군가를 만나면 나름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일기를 쓰는 행위지 일기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기는 오늘의 기억을 보관하는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지나고 나면 전부 추억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엄마에게 혼나면서 쓰던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 나보다 어린 조교에게 쫄아서 강제로 쓰던 소나기를 펼쳐보면 나름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난 여전히 일기 쓰기를 싫어한다. 그리고 앞으로 쓸 일도 없고 쓰지도 않을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