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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글방 May 08. 2021

눈을 보면 사막이 떠오르는 이유

[단비글] '발자국' ①

두 달 전 충북 제천에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개강날 아침, 기숙사 문을 열고 나가자 밤새 내린 눈이 쌓여 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낯선 캠퍼스에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위를 한참 헤매고 다녔다. 10분이면 갈 곳을 1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전방과 핸드폰 속 지도만 보다가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뒤를 돌아봤다. 숨을 고르며 이쪽 저쪽 마구잡이로 찍힌 발자국을 보고 있자니 10여 년 전 즐겨 읽던 시가 떠올랐다. 오스텅스 블루의 「사막」. 전문을 옮겨도 다섯 줄 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눈이 올 때면 종종 이 시를 떠올렸다. 사막과 눈은 평소엔 보이지 않던 발자국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사막이 없는 한국에서 발자국을 볼 수 있는 날은 눈이 올 때 뿐이라 눈이 「사막」의 매개가 됐다.


이 시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친구 문제로 속을 썩이던 시기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정말 잘 맞는 친구들을 만났다. 서로 집도 근처라서 시간을 맞춰 등교를 같이 했고 당연히 하교도 함께였다. 흔한 것도 아닌데 공교롭게 세 명의 성 씨가 같아서 'ㅇ 씨 3명'으로 불리곤 했다. 학교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그런데 2학년이 되고 각자 반이 갈렸다. 여전히 사이는 좋았지만 같은 반일 때보다는 거리가 생겼다. 반에서 새로 적응을 해야 했다. 두 친구는 새로 친구를 잘 사겼는데 나는 어려움을 겪었다. 6~7명으로 무리지어 다녔지만 그중에 마음이 맞는 친구는 없었다. 혼자만 겉도는 기분이 들었다. 같이 다녀도 외로웠다.


불안함과 외로움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무렵 '시'가 그런 존재였다. 국어 교과서에 소개된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계기였다. 시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꼈고 감정을 공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됐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시작으로 달마다 용돈을 모아 시집 한권을 샀다. 초반에는 주로 따뜻한 감성의 시집을 골랐다. 그 중 하나가 류시화 시인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하 '사랑하라')』이었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 서기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외국 시인들의 시를 엮은 책이었다. 「사막」도 거기에 실려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사랑하라-』를 '힐링 시집'이라고 홍보했다. 70여 편에 이르는 대부분의 시가 소개에 부합했다. 그런데 「사막」은 달랐다. 치유되는 느낌이 들진 않았는데 마음이 조금 아팠다. 그리고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자신이 만들어내는 발자국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려 했는지. 지금 그는 잘 지내고 있는지. 검색을 해봐도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오스텅스는 등단 시인도 아니었고, 「사막」이란 시는 파리 지하철 공사가 매년 공모하는 시 콩쿠르에서 당선된 작품이었다. 어쩌면 그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다는 사실이 이 시의 여운을 더욱 길게 남겼다.


궁금증을 해소한 건 그로부터 7년 뒤의 일이다. 「사막」을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류시화 시인이 SNS에 게시글을 올려 그 시를 시집에 싣게 된 경위를 전했다. 류 시인은 우연히 이 시를 알고 자신의 시집에 게재하고자 오스텅스를 수소문했다. 교통공단측으로부터 겨우 주소를 받은 그는 파리에 사는 화가 친구에게 방문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가 찾아가자 오스텅스는 시를 쓸 때 자신이 느낀 외로움이 '너무도(불어로는 si)'로는 부족하다며 감정을 오롯이 담지 못한 시를 게재할 순 없다고 했다.


완강하게 거절했던 오스텅스는 친구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물었고 그가 화가라고 답하자 자신도 그림을 그린다며 자화상을 보여줬다. 그림을 칭찬하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젊었을 때 어린 아들을 안고 웃는 사진과 첫사랑이 준 작은 그림 한 점 등 이것저것을 꺼내 보여줬다. 그러고는 시에 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사막」은 정신병원에서 쓴 시였다. 그녀는 첫사랑과 헤어진 충격으로 정신발작을 일으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러다 병이 호전되고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병은 그녀를 쉽사리 떠나지 않았고 결국 남편과는 이혼을 하게 됐지만, 몸이 불편한 그녀를 돌봐줄 이가 없어 전 남편과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다. 집 안에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가 있었고, 몇 안 되는 가구는 쇠사슬로 바닥에 고정돼 있었다. 발작이 일어나면 가구를 집어던지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오스텅스가 의자에서 일어났는데 키가 아주 작고 왜소했으며 30대인데도 등이 구부정하게 휜데다 걸을 때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고 한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 화가 친구가 가야겠다고 하자 그녀는 "시가 완벽하진 않지만 당신이 좋아졌다"며 시 실어도 좋다고 허락했다. 일화는 여기서 그쳤다. 많은 이야기가 생략됐지만 「사막」을 쓸 때 그의 고독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류시화 시인은 「사막」을 "'너무도’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될 만큼 고독의 밑바닥까지 간 사람이 간신히 일어나 쓴 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뒷걸음질로 걸어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이라도 보려는 건 눈물겨운 생의 의지"라고 했다. 끝으로 시인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얼마전 오스텅스와 연락이 닿아 통화를 했는데 밝은 목소리로 "새로 쓴 시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것이다. 위태로워 보였던 그가 잘 지내고 있는 듯해 일면식도 없는 사이임에도 안심했다.


그후 소복이 쌓인 눈에 찍힌 발자국을 보면 '눈물겨운 생의 의지'가 떠올랐고 희망이 차올랐다. 한때 생사를 걱정했던 오스텅스가 이제는 심연의 외로움을 이겨내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내게도 긍정의 메시지가 됐나보다. 지난 1년 반을 취업을 준비하며 보냈다. 쉬이 풀리지 않았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무얼 하며 산 건가' 자괴감을 느꼈다. 문장 하나 쓰기가 버거울 만큼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감히 나 같은 사람도 기자가 될 수 있을까 숱하게 고민하고 좌절하며 다른 일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결국엔 기자였다. 저널리즘 스쿨 원서를 쓰면서 되돌아 갈 곳은 없다며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이듬해 3월 때아닌 눈이 내려 발자국을 보다니,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의미일까.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 글을 좋아하는 시 구절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름밤」 中)


나의 지나온 생애도 기자라는 꿈을 향해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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