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감정이 있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유기견 봉사를 다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녔었다.
대부분 중형견 이상의 진도 믹스 개들이었다.
그렇게 큰 개들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놀랐다.
나는 별생각 없이 다가가 이름을 불렀다.
“씩씩아~”
그 순간, 개는 소스라치게 놀라 구석으로 달아나 벌벌 떨었다.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아야, 살가운 부름에도 저토록 두려워할까.
그 폭력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나는 모순적인 장면을 보았다.
“개는 처맞으면서 키워야 된다”는 말을 내뱉은 그 입으로, 이내 개를 쓰다듬고 사료를 챙기고 산책시키는 사람.
유기견 봉사를 하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이 한 몸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양면성에 치가 떨렸다.
강아지에게도 분명 감정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단비를 키우며 이 아이의 눈빛을 통해 감정을 읽는다.
단비와 함께 살다 보니,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세상의 면면까지 귀 기울이게 된다.
진심 없이 대할 거라면, 봉사 현장에 서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들여다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명을 마주하는 일은 ‘좋은 사람’이라는 껍데기로는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