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은 너무해
“꺅, 이게 뭐야!”
소파 위 담요를 걷어내자 진갈색 똥이 후드득 떨어졌다.
손끝이 얼어붙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휴지를 집어 들고, 조심스레 그것들을 모아 변기에 버렸다.
담요에 남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부리나케 세탁기로 향했다.
단비를 바라보니, 녀석은 그저 멀뚱히 앉아 있었다.
‘내가 뭘?’이라는 표정.
정말 모르는 건지, 혼날까 봐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건 언제 싼 거야?’
굳지 않은 모양새로 봐선 얼마 안 된 듯했다.
아마 내가 잠깐 한눈파는 사이, 단비는 똥폭탄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단비는 평소 배변훈련이 아주 잘된 아이였다.
놀다가도 후다닥 달려가 배변패드 위에 볼일을 보는 모습이 늘 대견했다.
그래서 그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그런 단비가 담요 위에 똥을 싸버리다니.
이건 분명 나에게 뭔가 대단한 불만이 있다는 신호다.
단비는 불만이 쌓이면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걸까 싶어 다그쳐봐도, 돌아오는 건 그저 멀뚱한 눈빛뿐이다.
보통 저럴 땐 “밥 줘”, “놀아줘”, “나 좀 봐줘.”
셋 중 하나다.
사람처럼 말을 못 하니, 감정을 몸으로 전한다.
아마 내가 요즘 뭔가에 너무 집중했나 보다.
단비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인데,
나의 무관심은 녀석에겐 배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도 종종 감정을 말이 아닌 몸으로 표현한다.
개는 말을 못 해서 그렇다 쳐도,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물건을 던지고, 주먹으로 무언가를 내려치며,
‘나 화났어’를 온몸으로 외친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우리는 흔히 말한다.
“개새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개는 악의가 없다.
배신당했다고 느껴도 물지 않고,
무시당했다고 느껴도 또 꼬리를 흔든다.
그런데 사람은, 이유 없는 분노를 휘두르고도
끝내 “악의는 없었다”라고 말한다.
차라리 단비의 똥이 더 낫다.
적어도 그건 꾸밈없는 마음의 흔적이다.
단비의 똥에는 계산도, 악의도 없다.
그저 솔직한 감정의 조각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개새끼’라 욕할 때
정작 개보다 못한 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발, 개새끼라고 욕하지 마세요.
그 말엔, 우리가 잃어버린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