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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무 Feb 19. 2020

64 - 오늘의 <레베카>


지금까지 내가 본 뮤지컬 중에서 단 한 작품을 꼽으라면 분명 <레베카>였다. 라이선스(외국 원작을 국내에서 제작하는)와 국내 창작을 모두 포함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내 취향에 맞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몇 번을 보았지만, 옥주현 배우는 만나지 못했었다. 그녀의 노래야 공연 OST로 셀 수 없이 들었다. 다른 배우의 공연을 떠올리며 무대 위의 그녀를 상상해왔다. 예매 이후 두 달의 시간을 보낸 뒤 공연장을 향하는 길은 무척 설레었다.


서막이 오르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댄버스 부인’인 그녀가 저택 2층 발코니에 어두운 그림자로 첫 출연하는 순간, 몸에 소름이 세 번 정도 돋았다. 옥주현의 <레베카>는 확실히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


1938년 출간된 동명 소설, 1940년 히치콕의 영화화, 오스트리아 비엔나 초연은 2006년, 우리나라 초연은 2013년이었던 <레베카>. 라이선스 작품들이 그러하듯, 한국 관객에게 조금 어색할 수 있는 유럽의 시대적 배경과 다분히 극적이고 과장된 서사는 일단 접어두자. 오히려 이 작품은 남성 위주의 스토리가 넘쳐나는 시장에서 두 여성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국내 초연 때는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봐도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환상적인 음악은 여전했다. 아마도 처음 보는 이가 있다면 탄성을 자아낼만한 무대 연출도 최고다.

그런데 말입니다...


4년 만에 다시 본 <레베카> 역시 나를 찜찜하게 만드는 부분이 새롭게 보였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옛날 드라마와 영화에서 마주치는, 눈과 귀에 거슬리는 그런 것들이 극에 온전히 빠지는 걸 방해했다. 이전까지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어떤 것이, 이제는 자꾸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것.


내가 너무 예민해지는 게 아닐까. 그냥 넘겨도 무방한 것인데 나만 날카로운 걸까. 거듭 고민하면서도 어쨌든 전에 보았던 <레베카>와 지금 본 <레베카>는 달랐다. 아니, 내가 달라졌다. 고전이라는 건 시대가 변해도 남는 것일 텐데 내일의 <레베카>, 그 운명이 어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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